가족여행2019. 10. 13. 05:46

모스크바 여행 중 가볼 만 거리 중 하나가 아르바트(arbat) 거리다. 아르바트라는 거리명을 처음 들었을 때 '마시는 차'가 떠올랐다. 왜냐하면 리투아니아어로 '마시는 차'가 아르바타(arbata)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나 찻집과 관련이 깊은 거리로 짐작 되었다. 

내 짐작은 틀렸다. 아르바트는 모스크바 성 밖에 있는 마을 즉 교외를 뜻하는 아랍어 arbad, 또는 수레를 뜻하는 타타르어 arba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 옛날 각지에서 온 상공인들이 모스크바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은 상점, 식당, 동상 등이 즐비해 여행객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붐비는 문화와 예술 거리다. 15세기에 형성된 구 아르바트 거리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신 아르바트 거리가 있다. 

9월 초순 폴란드인 친구 라덱과 함께 이 아르바트 거리를 산책했다. 3호선 스몰렌스카야 역에서 내렸다. 이 거리에 살고 있는 지인을 역 앞에서 만나서 쉽게 아르바트 거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마주치는 거리가 구 아르바트 거리다.    


보행자 전용인 이 거리에 들어서자 거리 가운데 자작나무와 설치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자작나무를 보니 "아,  러시아에 와 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이 거리 전체가 이런 조경물로 꾸며져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빠져 나오니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넓은 산책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보니 동상 하나가 눈에 확 띈다. 2012년 푸시킨 서거 175주년을 맞아 세운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과 그의 아내 나탈랴 곤차로바(1812-1863) 동상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시를 쓴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어진다.  


동상 맞은편에 있는 2층 건물이 푸시킨 기념 집이다. 1831년 1월 23일에서 5월 15일까지 푸시킨은 이 집에 있는 아파트를 빌려 부인과 살았다. 1986년 개관된 이 집은 1층이 푸시킨과 모스크바 주제로 2층이 푸시킨 기념물로 전시되어 있다. 거리에 파는 저 LOVE 그림이 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결투로 생을 마감한 푸시킨이 더 선명하게 각인된다.  


왼쪽 건물에는 1919년에서 1933년까지 아나톨리 리바코프가 살았다는 동판이 걸려 있다. 그는 이 거리를 배경으로 쓴 "아르바트의 아이들" 작품으로 유명하다. 함께 간 라덱은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건물 내에 있는 지인 집에서 커피까지 마셨으니 언젠가 꼭 한번 읽어 봐야겠다. 


군데군데 거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주고 있다. 


불라트 오쿠자바(Bulat_Okudzhava, 1924-1997) 동상이다. 아버지는 조지아인으로 소련 공산당에 의해 사형당했고 어머니는 아르메니아인으로 1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1950년대부터 작사와 작곡을 겸하는 가수로 활동했고 200여곡의 노래를 남겼다. 러시아 음유시가의 개척자로 불린다.  


잠시 거리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해 본다.  


잠시 쉬는 동안 물로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모스크바 거리가 참 깨끗해. 왜 그럴까?"
"저기 봐. 물청소를 하잖아!"
"맞아. 저것이 정답이다."



오전이라 아직은 거리가 다소 한산하다.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산재해 있다. 역시 유명 관광 거리이구나... 


러시아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알리는 게시판이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르바트 시작점 쪽에서 끝점 쪽으로 바라보는 거리 모습이다.  


저 건물 앞에 간이화장실이 있고 그 뒤에 길쭉한 건물이 하나 있다. 


이 벽은 최벽(Stena Tsoya)으로 불린다. 깨끗한 아르바트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수많은 낙서들로 가득 차 있다.  



바로 빅토르 최(초이, 1962-1990)를 추모하는 낙서들이다. 소련의 록 가수로 지금도 러시아에사 가장 인기 있는 자수 중 한 명이다.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리를 올봄에 찾아가 봤다. 사망지는 라트비아 투쿰스(Tukums) 근처 한적한 시골 도로 옆에 있다. 빅토르 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곳곳에 거리 악사나 가수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 850주년을 맞아 1997년 세운 분수대다. 푸치니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등장하는 "투란도트 공주" 조각상이 돋보인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아르바트 거리 시작점 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저 멀리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슴 전체를 가득 덮고 있는 훈장들을 보니 필시 영웅이겠구나!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게오르기 주코프(1896-1974) 장군이다. 국립 역사 박물관 앞에 말 위에 탄 위풍당당한 주인공도 바로 이 사람이다. 레닌과 스탈린외에도 주코프도 있구나!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건물에 칠한 화사한 색이 멀지 않아 가을 단풍이 물들어감을 알리는 듯하다.


유료 간이 화장실은 찾기는 쉽지만 그 생김새는 예술 거리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투박하기 그지 없다.  


어느덧 우리는 아르바트 전철역에서 내려서 이 거리로 들어올 수 있는 시작점까지 다다랐다.


남아 있는 것이 시간뿐이라면서 우리는 아르바트 대로까지 둘러보기로 한다.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다. 고층 아파트 건물 여기저기 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의외다. 북위 55도 45분에 위치한 모스크바에 에어컨이 필요없을 듯하다. 북위 54도 68분에 위치한 빌뉴스 우리 집엔 선풍기도 필요없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현지인은 웃으면서 "모스크바 사람들은 참을성이 부족해 1년에 이틀만 더워도 에어컨을 설치한다."라고 답한다.


신 아르바트 대로 인도는 나를 놀라게 한다. 인도가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고 보행자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걷느라 지친 우리는 양말까지 벗고 비스듬히 편하게 누워 힘을 충전시켜 본다. 


긴의자까지 마련되어 사람을 기다리거나 잠시 쉴 수도 있다. 신 아르바트 대로를 산책하고 있으니 서울로 7017 공중공원이 떠오른다[라벤더 향 피어오르는 서울로 왜 since 7017일까].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었다. 아르바트 대로 인도가 이런 공원 모습으로 꾸며져 있는 것에 러시아 변화를 다시 한번 새삼 느낀다. 


신 아르바트 대로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걸어가니 롯데 백화점과 롯데 호텔이 나온다. 조금 더 걸으면 마천루 스탈린 7자매 중 하나인 러시아 외부성 건물을 만난다. 지하도를 통해 반대편으로 나와 아지무트 호텔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건물은 27층 172미터로 1951년 완성되었다. 스탈린 7자매는 스탈린이 스탈린식 고딕 양식으로 모스크바를 재건하려는 데서 세운 대표적인 고층 건물을 말한다. 


신구 아르바트 거리를 다 둘러보고 우리는 보로딘스키 다리(Borodinsky Bridge)까지 산책을 계속한다. 다리 건너 오른쪽에 스탈린 7자매 중 하나인 34층 우크라이나 호텔이 보인다. 


다리 왼쪽 넘어 저 멀리 스탈린 7자매 중 가장 높은 모스크바국립대학교(MGU)이 보인다. 195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가 240미터이다. 


이 다리를 건너 계속 가다보면 키옙스카야 지하철 역이 나온다. 이 역은 우크라이나 전통예술 양식으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어 구경해볼만하다. 마치 지하궁전에 온 듯하다. 


아래는 이날 우리가 한 도보여행 동선이다.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는 구 아르바트 거리, 활기찬 인파를 만날 수 있는 신 아르바트 대로 그리고 7자매 중 세 건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브로딘스키 다리를 건너 키옙스카야 지하철역까지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동선을 추천한다. 

이상은 초유스 모스크바 여행기 6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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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