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8. 12. 1. 04:35

이제 한국에는 김장철이다. 이곳 리투아니아 빌뉴스도 겨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씨로 접어 들었다. 기온이 낮이나 밤이나 영하다. 어제 저녁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윗층에 사는 이웃이 느닷없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잠깐 방문해도 될까?"
"물론."

이웃은 70대 중반의 할머니다. 아내가 문을 열고 맞이하니 할머니는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내 할머니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내가 만든 김치야. 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 우즈베키스탄인데 그곳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 한국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해. 시장에 가면 여러 한국 음식을 쉽게 구입할 수가 있었어. 나도 김치 등을 사먹었는데 리투아니아로 이사를 온 후부터는 지난 수십년 동안 김치를 먹을 수가 없어 참 아쉬웠어. 그런데 며칠 전 잡지에서 김치 요리법을 읽게 되었지. 옛날 즐겨 먹은 김치가 떠올라서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어. 어디 한번 맛 좀 봐줘."
"평가해 줄 남편이 지금 집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덴테..."
"김치를 무엇으로 만드는 지 알아? 바로 중국 배추야!!!"

이 말에 아내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유럽인 아내는 오래 전부터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기 때문에 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참고로 유럽 사람들은 우리의 배추를 "중국 혹은 북경 배추"라 부른다. 우리는 유럽의 배추를 "양배추"라 부른다. 

이웃 할머니는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와서 김치를 만들어 보았다는 자부심을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김치에 강황을 넣었다고 강조했다. 강황은 맵고 쓴 맛을 내며 노란색을 지니고 있다. 카레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그 김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아내가 냉장고에서 할머니가 만든 김치를 꺼냈다.

* 이웃집 유럽인 할머니가 평생 처음 담근 김치 

"앗, 백김치네!!! 고춧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매운 맛을 내기 위해 강황을 넣어겠구나. 그래도 붉은 색을 내기 위해 붉은 고추를 썰어서 넣었네. 볍씨처럼 생긴 저것은 뭐지?"
"크미나스(kmynas)라고 하는데 에스페란토로는 카르비오(karvio), 영어로는 캐러웨이(caraway)다." 검색해보니 캐러웨이는 미나리과의 초분 식물로 열매는 치즈, 술, 빵, 제약 등에 쓰인다. 

할머니가 만든 김치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약간 맵고 시큼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갈 즈음 아내가 말했다. 
"며칠 전에 남편이 한국에서 공수해온 김치가 있다."

누군가 그릇에 음식 등을 가져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은 그냥 빈그릇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발코니로 가서 김치 한 포기를 그릇에 담아 주었다.

"우와, 정말 한국 김치를 이렇게 먹을 수 있다니!!! 우리 남편이 정말 좋아하겠다."


평생 처음 담근 김치를 한국인에게 맛 보여 주려고 왔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직접 만든 김치를 맛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사실 주변에 알게 모르게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현지 유럽인들이 여러 있다. 포도주 평가사가 있듯이 언젠가 세계 곳곳에 김치 평가사라는 직업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