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나리아 제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 서쪽 대서양에 위치해 있는 카나리아 제도는 주요 섬 7개(라팔마, 테네리페, 라고메라, 엘이에로, 그란카나리아,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에는 먼저 란사로테(Lanzarote)를 방문했다. 푸에르토델카르멘(Puerto del Carmen, 푸에르토 델 카르멘)에서 묵으면서 해변산책, 해수욕 그리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아내에게 관광회사를 통해 전일관광(

Grand Tour

)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일광욕을 좋아하는 아내는 마지 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 숙소 바로 앞까지 관광버스가 온다. 먼저 몇몇 도시를 들러서 예약한 손님들을 태운다. 해변도시를 벗어나 내륙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록 땅은 더욱 척박하다.

종종 이렇게 가꾸어진 푸른 식물들을 만나면 웬지 기분이 상큼해지고 눈이 즐거워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저 화산재 밑에 숨어 있을까...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구경한 첫 번째 장소가 엘골포(El Golfo)다. 작은 어촌이다. 이름 그대로 조그마한 만이 형성되어 있다. 좀 더 왼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녹색 석호가 있다. 단체관광이라 그기까지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반대쪽 산기슭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18세기 화산 분화로 뜨거운 용암이 바다로 흘려들어갈 때 차가운 조류가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작품이다.

 

다음 행선지는 1895년 시작된 염전(Salinas de Janubio)이다. 석호의 바닷물을 초기엔 풍차, 지금은 전기펌프로 끌어올려 자연 증발시켜 소금을 만든다. 연 2,000-15,000 소금을 생산한다. 검은색 화산석 둘레에 쌓여 있는 소금의 하얀색이 더욱 하얗게 보인다. 여기가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염전이다.

오늘 투어의 최고 명소 중 하나인 티만파야(Timanfaya)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여러 색깔의 토양, 크고 작은 분화구, 기암괴석, 완만하게 경사진 산 그리고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지형이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행성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달이나 화성이 아니라 국립공원 박물관 주차장이다. 여기서는 낙타타기 선택관광을 할 수 있다. 두 줄로 쭉 앉아 있는 낙탁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낙타는 란사로테에서 농사와 운송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가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미리 예약할 필요가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현장에서 지불하면 된다. 낙타타기는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마치 산을 넘어가는 대상의 행렬을 보는 듯하다. 우리 가족은 천성적으로 동물을 이용해 하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찾아간 곳은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카나리아 제도의 주민들이 어떻게 낙타를 활용했는 지를 잘 전시하고 있다. 단봉낙타등에 여러 도구를 얹어서 때론 교통 수단으로 때론 운송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래 사진 속 초록색 물건은 낙타안장이다. 낙타등 위에 얹어서 양쪽으로 각각 한 명이 탄다.      

다시 관광버스는 꾸불꾸불한 아스파트길을 따라 이동한다. 특히 아스팔트 길 밖으로 나가서 걷는 것은 금지다. 용암 위 걷기는 화산 물질에 해를 끼치거나 지의류(화산석에 자라는 유기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밑에 동굴이 있을 수 있는 얇은 용암 표면을 걷는 것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전일관광의 최고 백미는 티만파야 국립공원 안에 있는 불의 산(Montañas del Fuego)이다. 공원 입장료는 성인 12유로다. 사람들이 빙 둘러 모여 무엇인가를 내려다 보고 있다. 무슨 일일까? 

공원 직원이 긴 철봉 끝에 나뭇가지 뭉치를 매달아 바위 틈 사이로 밀어넣자 곧 불이 활활 타오른다. 그냥 구덩이로 보이지만 실상은 불구덩이다. 

이제는 직원이 물 한 동이를 쇠구멍에 부어 넣자 조금 후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수증기가 치솟는다. 화산 지열이 아직도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하 13미터 깊이에 온도가 섭시 100-600도이다. 티만파야에서 마지막 화산 분화는 1824년에 일어났다. 

이곳에 자리잡은 엘디아블로(El Diablo) 레스토랑의 화덕은 정말 환상적이다. 요리 연료비가 0원이다. 지하 10미터에서 올라는 약 300도의 지열로 음식을 요리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이 또한 란사로테 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공간으로 변모시킨 스페인 예술가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의 작품이다.     

개별여행이라면 이 레스토랑에서 꼭 식사를 해보고 싶은데 단체여행이라 미리 정해진 식당이 다른 곳에 있다. 아쉽고 아쉽다. 저 화산지열로 구운 요리를 맛보는 기회가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길 바란다. 

동정녀의 망토(Manto de la Virgen)로 불린다. 붉은색이 금방이라도 이글거리는 용암을 뿜어낼 기세다. 이런 신기하고 기이한 형상을 지닌 바위를 여기저기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스팔트 길 옆 용암벽이 버스보다 더 높다. 휴, 다행히 식은 용암이다. 그래도 두려움이 검은 용암벽을 따라 눈 안으로 들어온다.  

내려다 보이는 것이 엘디아블로 식당이 있는 불의 산 시설물이다.     

단체로 먹는 점심식사다. 푸짐하고 맛있다.

만차블랑카(Mancha Blanca)에 있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1730-1736년 화산 분화로 용암이 마을을 향해 흘러내려 왔다. 이때 주민들이 고통의 성모 마리아 상을 이웃 마을 티나조(Tinajo)의 산 로케(San Roque) 성당에서 빌려서 기도 행진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용암이 식어서 멈췄다. 이 자리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기적을 일으킨 성모 마리에 감사하기 위해 성당을 건립했다.    

이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란사로테의 주요 포도주 산지인 라게리아(La Geria)다. 란사로테는 아주 특이하게 포도농사를 짓는 곳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화산으로 황폐화된 극한 토양에서 포도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회색빛의 산정상 가까이까지 반원형 돌벽이 빼곡히 쌓여 있다. 1730년대 화산 분화가 있기 전까지 란사로테는 농업이 번성한 섬이었다. 연속으로 일어난 화산 분화로 인해 땅 위에는 재와 자갈의 두꺼운 층이 형성되었다. 
처음에 농민들은 이것을 재앙으로 봤지만 영양소가 풍부한 화산 토양이 특정 작물을 재배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스펀지같은 성질이 있어 물을 빨리 흡수하고 오랫동안 수분을 보존한다. 재는 일종의 절연체 역할을 해서 비록 공기 온도가 오르내리더라도 토양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화산 분화 후의 란사로테는 포토재배에 아주 적합하게 되었다. 포도는 화산재 토양에서 잘 자라고 완만하게 높아지는 경사면은 포도나무에 이상적이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포도가 필요한 반복적인 냉온 변화를 준다. 낮에는 따뜻하고 거의 늘 맑고, 밤에는 춥다. 온도 차이는 포도가 산도(추운 밤)와 단맛(따뜻하고 맑은 낮) 둘 다 발전시키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주된 문제 하나가 있다. 바로 바람이다. 한결같이 대서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는 윈드서핑이나 카이트서핑에는 최고다. 하지만 어린 포도나무를 흔들어 넘어뜨리거나 뿌리채 뽑아 버릴 수 있다. 농민들은 그 해결책으로 화산 토양에 넓고 얕은 구멍을 파서 어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주변에 돌을 쌓아 반원형 바람막이 벽을 만들었다. 
벽의 높이와 구멍의 깊이가 매우 중요하다. 어린 포도나무가 그림자에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햇빛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한 화산 토양으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얕아야 한다. 포도농장마다 이런 구멍과 벽이 수천 개나 된다. 한 그루마다 바람막이 벽이 필요하니 얼마나 많은 노고와 정성이 깃들어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포도주 시음을 한다. 포도주 전문가 아니라 그 맛을 묘시하기가 힘든다. 황폐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특이한 포도재배법을 찾아낸 란사로테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뜻으로 우리도 포도주 2병을 구입한다. 다시 버스는 북쪽을 향해 달린다. 절벽 위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여러 시간 동안 사람을 제외한 움직이는 생물체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마른 나무줄기와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한다.   

싱싱한 초록색 잎과 분홍색 꽃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그동안 재빛색 화산석에 찌들어 있는 내 눈을 잠시나마 정화시켜 준다.

저 아래 계곡에 있는 하얀색 도시가 아리아(Haría)다. 발 밑은 급강하 천길 낭떠러지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예민한 사람은 전일관광을 떠나기 전 멀미약을 복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제는 완전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화산 사막을 벗어나 마치 비옥한 옥토를 지나는 것 같다. 아리아는 "야자수 천 그루 계곡"라 불린다. 이곳에는 카나리아 제도 자생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전일관광의 또 다른 백미다. 세사르 만리케가 심혈을 쏟아 조성한 자메오스델아구아(Jameos del Agua) 화산 동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크라운 화산 분화에 의해 생성된 용암 동굴에 있다. 동굴의 총길이는 6킬로미터이고 이중 1.5킬로미터 정도가 해수면 아래에 위치해 있다. 지하소금호수, 레스토랑, 정원, 비취색 연못, 박물관, 관람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생태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바닷가재(squat lobster)들의 서식지다.

용암 동굴의 지붕이 무너진 자리에 오아시스를 만들어 놓았다. 시커먼 용암으로 둘러싸인 하얀색 연못가와 비취색 연못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 숙소 앞까지 관광버스가 태워 준다. 돌아오니 아름다운 노을이 반긴다.

 

포도농장에서 구입해온 포도주를 마시면서 란사로테 일주관광을 되돌아본다."오늘 관광 만족해?"라고 아내에게 묻는다."오늘 당신 말 듣기를 정말 잘 했다. 자, 위하여!"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4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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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