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3. 7. 08:55

폴란드에 살았을 때 지인 한 분이 폴란드 사람이 아니였다. 대학에 유학와서 눌러앉아 수십년을 살았다. 주변 폴란드 사람들은 외국인인 이 분이 폴란드어를 자기들보다 훨씬 더 잘 한다고 칭찬했다. 이처럼 외국인이 현지인의 모국어를 더 잘 하는 경우도 있다.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격증은 갖추지 못했다. 모국어가 한국어이고, 대학원 졸업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채용이 되었다. 그렇다고 외국어 언어학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대학교에서 국제어 에스페란토 석사 학위을 받았고, 여러 나라에서 에스페란토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읽고 쓰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라고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어가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외국어가 어디 있을까..... 한국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 비슷한 요소를 찾아서 가르칠 때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

예를 들면
서울(e), 부산(e)
에는 장소격 조사이다. 
리투아니아어에도 e가 장소격 조사다. 
Kaunas -> Kaune, Palanga -> Palangoje, Jurbarkas -> Jurbarke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주격조사 이(받침 유)/가(받침 무)를 가르쳤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질문했다. 이 학생은 주격조사 이/가 외에 '나는 학생이다'에서처럼  주어로 사용되는 보조사 는/은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학생이다"와 "나는 학생이다"는 리투아니아로 동일하게 "Aš esu studentas"로 번역된다.

"한국어는 아주 어려워요. -는 언제, -가는 언제 사용하나요?"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한국어를 반세기 동안 사용하고 있지만, 한번도 은과 가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황에 따라 저절로 나오는 대로 하기 말한다.

"정말 좋고 재미난 질문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서 분석해봅시다."


여러 문장을 칠판에 써보았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했다. "개는 옵니다"라는 표현에서는 다른 대상, 즉 고양이와 대조하는 경우이고, "개가 옵니다"라는 표현에서는 오다라는 행위의 주체가 '개'라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보다 더 확실한 지식을 습득했다. 짧게 정리하면, '이/가'는 주격조사로 동사 행위의 주체를 나타낸다. '은/는'는 보조사로 보통 대조에 많이 사용된다. 주어와 같은 종류의 다른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 가운데 어느 특정한 하나의 대상을 언급한다. 또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에서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 설명할 때 쓰인다. 

아, 이래서 "가르침이 배움이다"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한 이래서 어느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현지인보다 그 언어를 더 잘 알 수 있다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어제 한국어 수업은 "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한 학생에게 감사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