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2. 10. 9. 04:52

가을이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초딩 5학년생 딸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여름철이라면 한바탕 비가 쏴 내리다가도 이내 해가 방긋한다. 굵직하게 내리는 비를 창문 밖으로 보면서 전화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이런 경우 종종 누나나 형이 우산을 들고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전화 소리가 울렸다.

"아빠, 비가 와."
"알았어. 학교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우산 가지고 금방 갈게."

이렇게 해서 800미터 떨어진 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현관문 창문으로 보니 딸아이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면서 놀고 있었다. 한참을 방관자처럼 지켜보았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후에야 딸아이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비가 거의 안 오네. 아빠가 올 필요가 없어졌네."
"그래도 아빠가 올 땐 비가 많이 내렸지. 가방 이리 줘. 내가 들고 갈게."
"안 돼. 내가 들어야 돼."
"가방이 너무 무겁다. 아빠가 들고 간다!"
"아빠, 우기지 마. 내가 학생이야!"

이런 선택에서는 누군가 양보해야 한다. "내가 학생이야!"라는 말에 부녀(父女)의 실랑이는 끝났다.

아빠의 믿음직한 존재를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맞아. 군인은 총, 기자는 펜, 학생은 책가방을 들어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집으로 향했다.


그친 듯한 비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봐, 아빠가 오길 잘 했지?"
"고마워."

아무리 생각해도 딸아이의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집에 가서 네 책가방이 얼마나 무거운 지 한번 무게를 재어봐야겠다."

* 책가방를 메고 잰 무게(왼쪽), 책가방 없이 잰 무게(오른쪽): 책가방 무게는 4kg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아이는 정말 자신의 책가방이 무거운 지를 알았다는 듯이 책가방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무거워?"
"아니, 괜찮아."

책가방을 멘 한 쪽 어깨가 축 쳐지는 듯했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다. 비 덕분에 모처럼 아빠와 딸이 정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