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도 자국어를 지켜온 리투아니아인들의 자부심…국가위원회에서 러시아어 잔재 청산과 외래어의 토착화 작업을 맡아 해 

▣ 빌뉴스=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1990년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리투아니아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옛 소련에 속해 있었음에도 리투아니아인들이 일상에서 러시아어 대신 자국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리투아니아어의 오래된 역사에서 비롯된다.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의 흔적이… 

프랑스의 언어학자 메예(1866~1936)는 “고대 인도유럽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알고 싶으면, 리투아니아에 가서 촌부들의 말을 들어보라”라고 말한 바 있다. “리투아니아의 촌부가 인도 카슈미르의 촌부를 만나면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에선 국가적 차원에서 러시아어 잔재 청산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REUTERS/ NEWSIS/ PAWEL KOPCZYNSKI)

리투아니아어가 고대 인도인의 산스크리트어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투아니아어가 고대 인도유럽어에 가장 가까운 언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실제로 단어와 문장 구성에 산스크리트와 공통점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는 리투아니아어는 많은 언어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외에도 리투아니아어엔 라틴어의 요소도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네로 황제의 폭정을 피해 로마에서 탈출한 귀족이라는 설이 전해오고 있는 만큼 라틴어와의 연관성도 많다. 

리투아니아어 철자는 32개로 구성돼 있고, 이 중 모음이 12개, 자음이 20개이다. 동사는 남성과 여성에 따라, 그리고 단수와 복수에 따라 어미가 변화한다. 명사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재밌는 것은 음양으로 구별하면 한국인들에게 강인함을 뜻하는 해는 남성이, 포근함을 뜻하는 달은 여성이 되어야겠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은 온 생명의 근원인 해를 여성으로 보고, 달을 남성으로 본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은즉 남성들은 밤에만 살짝 와서 놀다가 가버리는 달과 같기 때문이란다. 

리투아니아어는 명사와 형용사가 단수냐 복수냐에 따라 어미가 각각 다르다. 인칭과 시제에 따라 동사 어미가 복잡하게 달라진다. 강세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전혀 다른 표현의 통속어가 많다. “동거하다”의 통속어는 “헌 천을 함께 놓다”이고, “왜 화내니?”의 통속어는 “왜 거품이 되어가니?”, “(매로, 손으로) 맞을래?”의 통속어는 “전등에 맞을래?”이다. 리투아니아어의 이중부정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이다. 남성들이 독한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명사가 여성형이고, 여성들이 포도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명사가 남성형이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리투아니아어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일은 ‘리투아니아어 국가위원회’가 맡아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방송 아나운서와 언론매체 기자들의 언어를 심사하고 교정하는 한편 리투아니아어 문장 구조를 망쳐놓은 러시아어 잔재를 청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외래어를 리투아니아어로 바꾸는 작업도 도맡는다. 이를테면 초기에 프린트기를 ‘프린테리스’, 스폰서를 ‘스폰소류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순수 리투아니아어인 ‘스파우스딘투바스’, ‘레메야스’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맥도널드에서 파는 햄버거라는 단어는 ‘고기가 들어간 빵’이란 뜻인 ‘메사이니스’라는 리투아니아어 단어로 이미 바뀌었다. 

거품이 되어가는 건 화난 증거? 

리투아니아인들은 오랫동안 폴란드의 영향과 러시아(소련)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자기 민족어를 지켜온 것에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뒤 러시아어 대신 거세게 밀려오는 영어의 영향력을 리투아니아어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630호 2006년 10월 1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