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1. 11. 19. 10:52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10년 주기의 생일을 중시하고 성대히 치른다. 물론 아이들은 매년 오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유는 선물과 북쩍거리는 잔치 분위기 때문이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11월 5일 만 10살이 되었다. 리투아니아가 아니라 한국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당시 엄마는 리투아니아 집에 있었고, 아빠는 서울에서 연수 중이라 제대로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다. 

딸아이는 미리 생일 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탁했다[관련글: 10살 생일 선물을 미리 사달라는 딸의 까닭]. 집에 있는 캠코더와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 기능 휴대폰 등을 장황하게 열거하면서 이 선물이 적합하지 않음을 내심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만 10살이니 사진 찍히기보다는 사진 찍기를 더 좋아할 나이에 이른 것 같았다. 주저했지만 결국 딸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사주었다.

▲ 얼마 전 덕숭궁에 찍은 사진. 꿈을 그리는 모습이라면서 딸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11월 8일 한국에서 빌뉴스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시차 적응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해오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서 찍은 1000여장의 사진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생애 첫 10주년을 맞은 딸에게 디지털 카메라 한 대만 달랑 선물한 것은 웬지 허전해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찍은 딸아이의 사진을 정리해서 동영상을 만들어 선물하면 어떨까?

디지털 카메라로 출생에서 10살이 되기까지 쭉 찍은 딸아이의 사진이 5000여장이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이 많은 사진들 중 딸아이의 성장 과정을 잘 나타내주는 사진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연도로 분류하고 각 연도마다 사진 30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당신, 소중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약속한 번역일을 해야지. 지금 제 정신이야."
"오늘이면 사진 정리를 다 끝낼 수 있을 같아."


이렇게 오늘1주일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아내의 질책에 귀를 막고 고집을 부리면서 해냈다. 동영상 속 배경 음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되었다. 딸아이가 부른 저작권이 없는 리투아니아 민요를 넣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썩 어울리지가 않았다.

아빠가 딸에게 정성을 쏟아 만들어주는 선물인데 엄마가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는 않겠지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아내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10년간 엄선된 사진을 모아 만든 동영상을 아내가 보더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감동을 받은 듯했다. 잠시 후 피아노로 가서 요가일래를 위해 지은 자신의 옛날 곡을 치기 시작했다. 동영상에 맞춰서 즉석 편곡을 해보았다. 아내는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면서 손을 내저었지만, 배경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dlfjg부모 합작 선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캠코더로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하고 있는 동안 딸아이는 아빠가 정리한 사진을 혼자 보고 싶어했다. 녹음을 마치고 내 책상으로 돌아와보니 사진을 보고 있었야 할 딸이 없었다. 방으로 가니 딸아이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우니?"
"이제 더 자라고 싶지 않아. 사진을 보니 어린 시절이 아주 좋았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울지마. 자라도 재미나고 좋은 일들이 더 많이 너를 기다릴 거야."


10살 딸아이가 동영상을 보더니 행복하고 아름다운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음에 울게 되었다. 딸에게 기쁨을 주고자 만든 동영상이 오히려 울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언젠가 330장으로 된 10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행복감을 느낄 것으로 믿는다. 딸아이는 지금 곤히 잠자고 있다.


"딸아, 첫 10년의 삶은 이렇게 아빠가 정리해주었으니 앞으로 이어서 올 매 10년은 네가 정리하길 바란다. 아빠가 지어준 네 이름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해가 되어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