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1. 10. 6. 08:09

리투아니아 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사람이 미성년자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려면 부모 한 쪽의 동의서를 공증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사항이 폐지되어 동의서가 없어도 된다. 이제 얼마 후 딸아이와 둘이서만 한국에 간다. 아내의 동의서 없이도 리투아니아를 출국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있다.

내 여권에 미성년자 딸아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면 걱정이 없다. 문제는 딸아이의 국적은 리투아니아, 내 국적은 한국이다. 또한 여권상 딸아이의 성(姓)과 나의 성이 다르다. 이렇게 여권상 완전히 아버지와 딸이 남남이다. 가족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표면상 근거는 얼굴이 닮았다는 것과 둘이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태어나자 국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리투아니아가 생활 터전이니 리투아니아 국적을 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리투아니아는 이중 국적에 관대하지 않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이 절실했다. 리투아니아에는 폴란드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을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한 방법으로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서가 없어도 되지만 행여나 제3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의서와 공증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아내는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종종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도망을 가버리는 경우이다. 동의서는 도망가는 쪽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남은 쪽에는 그야말로 후회막급을 안겨준다.

공증사무실에 가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언제까지 동의서를 유효하게 할 것인데?"라고 아내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로 해야지. 당신 한국 가서 안돌아오면 어떻게 해?"
"지금껏 같이 살았으면 믿어야지. 그리고 다음에 딸아이와 또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잖아."
"기간은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장소는 한국으로 국한해서 동의서를 작성할 거야."
"알았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아내의 근심에 불을 더 짚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증사무실에 도착하자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문서를 작성하는 직원이 물었다.

"기간은 언제까지 할까요?"
"딸아이가 (18세) 성년이 될 때까지 해주세요."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어느 나라로 가든지 상관이 없도록 해주세요."

아내에게 왜 조금 전과 180도 다른 결정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당신을 믿잖아!"

 
동의서를 확인해보았다. 핵심 내용은 "미성년자인 나의 딸이 성년이 될 때까지 동행인 최대석과 함께 어느 나라에도 가는 것에 동의한다"이다. 아내에게는 딸이라는 것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표현이 전혀 없다. 아버지라는 단어 대신에 동행인이 들어가 있다. 아무리 정형적인 문구이지만 기분이 섭섭했다. "동행인 최대석"보다야 "아버지 최대석"이가 훨씬 더 친근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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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문화가정에서는 이런 복잡한 문제가 있군요.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리투아니아에서는 국적에 대해서 그럴만도 하겠네요.
    우리도 광복 이후에 지금까지도 국적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니까요.

    동의서에 아버지, 어머니, 동행인, 보호자, 후견인 .. 뭐 이런 다양한 선택란을 만들고
    해당 사항에 동그라미를 할 수 있게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데...
    리투아니아 정부에 건의해 보세요. ^^

    2011.10.06 08: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11.10.06 17:36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부산까지 갈 수 있을 지는 확답을 못하겠네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2011.10.07 19:09 신고 [ ADDR : EDIT/ DEL ]
  3. zeitgeist

    좀 여쭙고 싶은데요...

    부인 분은 결혼하시기 전 성을 결혼후 바꾸시지 않은 것인가요? 그런데 발음을 보면 결혼한 "쵸이"인 것 같은데...

    아니면 리투아니아 법은 부모가 한쪽이 리투아니아 인이면 리투아니아의 성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요?
    예전에 리투아니아 성에 관하여 글을 읽었는데 결혼한 여자는 iene로 끝나고 미혼의 여자는 te로 끝난다고. 최대석씨의 성의 영문 이 Choi 인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어떻게 되나요? chojus 는 에스퍼란토말로 choi라는 것 같은데 좀 많이 궁금해 지네요.

    저도 외국에 살고 아이를 낳으면 어느 국적으로 할까 고민을 하고 누구 성을 따를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나라는 법으로 성을 따르지 되도 않은 나라라서 제가 아들을 낳으면 스미스가 아니어도 John Smith로 지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최대석씨도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2011.10.07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내는 제 성을 따라 성을 변경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중 어느 한 쪽의 성을 따를 수 있습니다. chojus는 choi의 리투아니아어식 표현입니다. 딸아이와 아내가 모두 choi 성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살고 있는 나라의 관행에 따르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chojus를 근거를 해서 아내는 cojiene, 딸은 cojute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1.10.07 09:05 신고 [ ADDR : EDIT/ DEL ]
    • zeitgeist

      아 감사합니다.

      이제 글의 내용이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아이의 성이 Choi인데 리투아니아 어 식으로 되어서 가족 3분의 성이 다 다르게 표현이 되었던 것이군요. 영미권이나 서구권 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겠군요. 서류를 보았을 때 리투아니아어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choi 와 cojiene은 완벽하게 다른 성이니까요.

      그런데 딸아이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동행자로 표현이 되셨다니 섭섭했을 것이고, 두번째는 리투아니아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전혀 같은 성이라는 것을 눈치 못챌 것에 대해서도 서운 했을 것 같아요.

      저도 외국에서 자리를 잡을 것이면(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에) 현지화 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정체성이나 아이덴티티 문제를 국적/姓 문제로 연관시키면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모를 때가 많아요. 아이를 낳고 나서 생각할 것 같아요.

      가끔식 들러서 글 열심히 읽고 있으니까, 리투아니아에 대해서 많이 알려 주세요.

      그리고 몇 달 전에 YTN에서 한번 뵌적이 있는데 고향이 경상북도이신가봐요.

      2011.10.07 17:46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