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1. 5. 18. 05:54

밤 10시경이면 초등학교 딸아이 요가일래가 잠을 잘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잠자기 전 아직도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준다. 어젯 저녁은 여러 가지 일로 몹시 바빴다. 밤 10시가 되자 어김 없이 딸아이는 내 방으로 왔다.

"나를 사랑하는 아빠!"
"왜?"
"책 읽어줄래?"

바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아빠"라는 말이 세상 만사를 제쳐 놓게 했다.

"무슨 책을 읽어줄래?"
"네가 선택해. 자주 읽지 않은 책을 선택해."
"홍길동 이야기 아니면 엄지 공주?"
"쪽수가 적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바쁜 아빠에게는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엄지 공주, 내일은 홍길동 이야기. 알았지?"

이렇게 동화책을 선택하고 딸아이 침대로 갔다.

"아빠, 그런데 나 인형하고 안잘래."
"왜?"
"그러니까 내가 꿈을 꾸었는데 인형도 말을 할 수 있어."
"인형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
"그럼 있지."

딸아이는 인형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례 1
"옛날 시골에 갈 때 내가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함께 나란히 앉아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보니 남자 인형은 누워 있고, 여자 인형은 조금 서서 있었어." 

사례 2
"발코니에 인형이 창문 밖을 보게 해놓았어. 내가 부엌에 가서 음료수를 가져왔는데 인형이 밖을 보지 않고 안쪽으로 보고 있었어."

"그럼, 인형이 말한다고 해서 왜 인형을 안고 안자려고 해?"
"인형이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 내가 잘 수 없잖아."
"인형은 참 신기하다. 네가 잘 때 말하고, 네가 안볼 때 움직이고...."
"정말 그러네."

인형이 유정물(有情物)이라고 믿고 있는 딸아이가 너무 순진해보였지만, 굳이 무정물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지 않았다. 엄지 공지 동화책을 다 읽었을 때 딸아이는 인형 없이 벌써 고히 잠들어 있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