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0. 10. 1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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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았을 때 배꼽잔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배꼽잔치라는 말은 산모와 아기를 연결시켜주던 탯줄을 잘라 아이에게 배꼽을 만들어준 데서 유래한다.

아기 출생을 이유로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즐기는 날이다. 대개 아내는 산후 조리를 위해 아이와 함께 병원에 있고, 남편이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술자리를 마련한다. 보통 이날은 초대받은 사람은 선물을 하지 않고 초대자가 술을 대접한다.

첫 잔은 출산하느라 고생한 아내를 위해
두 번째 잔은 아빠가 된 친구를 위해
마지막 잔은 태어난 아기의 건강을 기워하는 건배를 한다.

인생에서 아주 뜻 깊은 축하 자리이니 어찌 이 세 잔으로 끝을 내겠는가!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 고조 기타 등등에 대한 감사 건배를 한다. 모두가 곤드레 만드레가 된다.
 
리투아니아에는 배꼽잔치라는 말은 없지만 출산일이나 다음날 친척이 모여 축하주를 마신다. 어제가 바로 출생을 기념하는 축하자리에 다녀왔다. 처남 아들이 득남을 했다. 몸무게가 4킬로그램을 가진 아들을 순산했다. 아내는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스러워했다. 이날 선물은 아기가 아니라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케익과 샴페인을 사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달력에는 그날마다 사람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보통 이 이름따라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처남의 손자가 태어난 날의 이름은 왕 민다우가스(Karalis Mindaugas)였다. 민다우가스는 13세기 리투아니아 최초로 왕으로 즉위한 사람이다. 아내는 큰 고민 없이 "왕 민다우가스"로 이름지어진 샴페인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지닌 케익을 샀다.
 
처남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이날만큼은 축하주를 한 잔해야겠다면서 승용차 대신 전기버스로 가자고 했다. 폴란드 배꼽잔치의 건배처럼 연이어지는 조상들의 이름에 술잔 수는 늘어만 갔다. 처남 부부는 40대 후반인데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아들 둘 다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다. 이날 모임에서 처남은 26년 전 아들 출생에 관해 추억 한 토막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꽃을 훔쳐 출산해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선물했다."
"뭐라고? 꽃을 훔쳐서?"
"낮에 예쁜 꽃이 있는 정원을 보아두었다가 어두워질 때 훔쳤지."
"아니, 왜 출산한 아내에게 훔친 꽃을 선물했니?"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그때는 모두들 그렇게 많이 했지."

옆에 있던 아내가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소련시대에는 지금처럼 꽃매매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개인이 상거래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에 꽃을 내다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뜰이나 텃밭에 꽃재배를 해서 자급자족해야 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꽃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비밀리에 꽃을 구입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처남은 친구와 함께 슬쩍 남의 꽃을 꺾어 아내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한국의 수박 서리 같은 처남의 꽃 서리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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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