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7. 17. 07:40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특히 우리 집은 다문화가정이라 굳이 김치 없이도 살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 집 냉장고엔 거의 늘 김치를 담은 항아리나 플라스틱통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김치가 떨어질 무렵 김치맛에 빠져 있는 유럽인 아내가 김치를 만들자고 성화를 부렸다. 

초기엔 김치 만드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소금에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배춧잎마다 양념을 바르는 일체의 과정을 혼자서 해야 했다. 김치 만들기에 다소 게으름을 피우자 아내는 "그러면 양념은 내가 준비하고 나머지만 당신이 좀 해"라면서 거들기 시작했다.

우리 식구가 먹을 김치만 만드는 때보다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을 김치를 만드는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배추 여러 포기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는 데 제법 시간과 수고가 든다. 아직까지 이 일은 내가 한다.   


무, 양파, 마늘, 당근, 생강 등으로 김치양념을 만드는 일은 이제 아내가 맡아서 한다.    


올해 들어서 그동안 김치 만들기에 항상 방관자였던 고등학교 3학년 딸 요가일래가 어느 날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있는데 끼어들었다.


"아빠 내가 한번 해봐도 돼?"
"이거 하고 나면 손가락에 양념이 스며들어서 매운 맛이 있을 거야."
"괜찮아. 나도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직접 한번 해볼래."
"그럼 해봐."    


이렇게 해보더니 그후부터 김치를 담글 때마다 양념 바르기는 요가일래가 전담하고 있다. 특히 요가일래는 밥에다가 김치만으로 만족스럽게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이렇게 식구 세 명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니 김치 담그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귀찮아서 다음으로 미루는 일도 없게 되었다. 하나 더 좋은 점은 협력해서 만들어놓은 김치 맛이 각자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누구 하나 선듯 "왜 이렇게 맛없게 담갔니?"라는 투정이 사라졌다. 

아래는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아이유의 한낮의 꿈>을 부르는 요가일래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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