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0. 4.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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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니 특히 건성으로 듣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새벽까지 일하다가 어제 아침에도 비몽사몽간이었다.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부엌에서 아내가 뭐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가일래가 10시 45분 학교 앞 모임에 차질 없도록 도와주어라는 부탁이었다.

아빠보다 먼저 일어난 요가일래에게도 아내는 "너가 만나는 시간을 잘 아니까 아빠한테 데려달라고 해."라고 말한 후 일 때문에 외출했다. 아내가 나간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요가일래는 빨리 학교로 가자고 아빠를 재촉했다. 아내가 말한 시간을 건성으로 듣고 기억한 터라 요가일래가 정확하게 알 것이라고 믿고 시간을 보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요가일래 학교는 4월 15일 고등학교 졸업시험장이라 임시 휴일이었다. 담임 학교 선생님은 학급단체로 보볼링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 요가일래에 따르면 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지금 9시 30분인데 요가일래외에는 아무도 없어.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은 참 바보다. 10시 45분이지, 어떻게 9시 30분이야! 그렇게 여러 번 말했는데 기억을 못하다니!"


이어서 요가일래에게 아빠가 한 소리했다.
"봐! 네가 재촉해 빨리 왔더니 아빠가 엄마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되잖아! 어떻게 할 거니?"
"여기서 그냥 기다릴 거야.'
"여기서 1시간 15분 동안이나 혼자 기다린다는 말이야!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아침 은행에 갈 일이 있었고, 또 한국에서 소포가 와있다는 우체국 통지서를 가지고 있었다. 두 일을 모두  해도 시간이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가일래는 그래도 있을 것이라고 버텼다. 한국에서 온 소포가 아빠 블로그의 어느 독자가 딸에게 보낸 선물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로 간신히 설득했다.

은행일을 마치고 우체국에서 무게가 7.4kg 소포를 받아들었다. 이 무거운 소포를 들고 학교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힘들 것 같았다. 집에 갔다놓고 학교로 가기로 했다. 그때 시각이 아침 10시 10분이었다. 소포의 내용물이 궁금했지만 나중에 온 가족이 같이 열어보기로 했다.

다시 학교로 가는 길에 소포 선물로 싱글벙글한 요가일래에게 말했다.
"뜻하지 않게 선물까지 받았으니 너가 동요 '노을'을 잘 불러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했다.

마침 반대편에서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긴 아가씨 한 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면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런 미소에 무표정으로 답하기는 어색해서 아빠도 미소로 대했다. 아가씨가 막 지나가자 요가일래는 아빠를 향해 들고 있던 신발봉지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아빠, 내가 아빠를 때릴 거야!"
"왜?"
"엄마를 사랑해야지!"(지나가는 여자에게 미소짓는 것만으로 요가일래는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를 사랑해야지?"
"할아버지."
"그리고 또 누구를?"
"할머니."
"그리고?"
"이젠 됐어."
"그럼, 요가일래를 안 사랑해도 돼?"
"아마도."(토라졌네. "아빠가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지?"라고 평소 물으면 딸은 '나지!"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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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엄마를 사랑해야지!"라고 말한 요가일래

이렇게 요가일래를 학교 앞까지 다시 데려다주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있는 찰나에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이제 (10시 30분) 요가일래를 데리고 학교에 가도 돼."
"벌써 데려다 주고 왔는데."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시간을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을 못해?.........." (또 따지네......)

이렇게 따지거나 잔소리가 시작되면 우이독경으로 대하지만 마음 속에는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야지"라는 딸아이 요가일래의 말이 떠오른다.

* 최근글: 미지인의 한국 소포 선물에 울컥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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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