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9. 7. 21. 08:41

70개국 2천명, 통역 없는 국제회의 가능할까? 한마디로 가능하다. 오는 7월 25일에서 8월 1일까지 전세계 70여개국에서 2000여명이 폴란드 북동지방의 중심도시인 비얄리스토크에 모인다. 한국에서도 20여명이 온다. 바로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들이 만나는 국제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따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스페란토대회는 모든 회의와 강연, 공연, 관광 등이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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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스페란토대회 개막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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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얄리스토크는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1859-1917)가 태어난 곳이다. 올해는 그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멘호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비얄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에스페란토가 정말 언어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세계대회는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가장 큰 통로 역할을 한다. 불가리아의 농부, 인도의 맹인, 브라질의 대학교수, 리투아니아의 앳된 소녀, 영국의 구순 할아버지,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통역 없이 진행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으면, 세계 공통어야말로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 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라고 자멘호프는 1905년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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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지속되는 이 대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대회대학은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 교수들이 나와 천문학, 인문학, 언어학, 문학, 수학, 정보학, 민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강의를 한다. 작가, 방송인, 기자, 법률가, 교직자, 자연치료사, 채식주의자, 고양이애호가, 과학자, 무국적주의자 등 많은 에스페란토 단체들이 분과회의를 가진다. 이러한 학술 및 회의 프로그램 외에도‘민족의 밤’을 통해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국가인 폴란드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 노래공연, 악기연주회, 연극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관광도 열린다. 어린이 세계대회도 병행에서 열린다.

전세계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고전음악이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험프리 톰킨 박사는 한 기자회견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들이 추정하는 것보다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닌 레나토 코르세티 박사는 “최근 들어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의 우월적 지위에서 파생된 언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2007년 미국 사명위기언어연구소는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 7000여개 중 소수 민족 언어들이 2주에 한 개 꼴로 사라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세계 인구의 80%가 사용 빈도가 높은 언어 83개, 세계 인구의 0.2%가 3500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27개국으로 공식어가 23개에 이른다. 통번역에 소용되는 비용은 연간 무려 13억 달러에 달한다.

정치·경제·통화 분야에서 통합을 이뤄가는 유럽연합은 언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지배적인 언어인 영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로 합의를 이끌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등장하는 대안이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가 발표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민족간 반목과 혐오감은 여전하고, 강한 민족의 언어는 약한 민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에스페란토가 영어를 비롯한 특정 민족어의 우월주의를 넘어서는 공식적 대안으로 인정받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에스페란토가 유럽연합의 언어로, 나아가 세계 인류의 공통언어가 되어 말이 같은 자국민간 모국어를 사용해 이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서로 말이 다른 민족간 에스페란토를 사용해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제94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열린 원불교 분과모임 영상

초유스는 오는 7월 25일 통역 없는 세상으로 인류평화를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폴란드 비얄리스토크 현장을 찾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블로그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취재 방송한 YTN TV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