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08. 3. 12. 08:02

3월 10일은 월요일이었고, 어제 11일은 리투아니아가 1990년 3월 11일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로 국경일이다. 리투아니아엔 이렇게 근무일이 휴일 사이에 끼면 그 전이나 후 토요일에 일을 하고 이날은 쉰다. 이번에도 이 연휴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떠났다.

지난 10일 여섯 살인 딸 요가일래와 함께 집에 있었다. 햇볕이 쨍쨍한 아침부터 딸아이는 요즈음 푹 빠진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밖으로 가자고 졸라댔다. 번역한 것을 급하게 편집해야 하므로 가까스로 딸을 달래서 평소 좋아하는 인터넷 학습 사이트에서 공부하게 했다.

오후가 되자, 딸아이의 성화는 극에 달했다. 결국 컴퓨터를 끄고 함께 산책을 나섰다. 시멘트벽돌로 덮인 광장에서 딸아이는 온갖 자세를 취해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하면서 혹은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반면에 하다가 중단한 일이 늘 내 뇌리에 남아 있었고, 딸아이에게 "이제 그만 집에 갈까?"라고 묻는 횟수가 늘어갔다. 하지만 딸아이는 결정적인 한 방으로 내 조급심을 순간이나마 잠재웠다.
 
"아빠, 우리가 산책가려고 할 때 컴퓨터가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 친구야, 내가 이젠 피곤하니까, 쉬어야겠어. 너도 밖에 나가서 놀다와. 나중에 너를 기쁘게 맞이할게.

가져간 카메라로 시멘트벽돌 사이에 쏟아 오른 새싹을 찍기도 하고, 막 움트는 잎사귀를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딸아이는 누군가 최근에 꺾어버린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기면서 놀기도 하면서 롤러스케이트를 계속 탔다.   

"딸아, 이젠 집에 갈까?"
"아빠, 컴퓨터 친구가 아직 우릴 부르지 않잖아!"
"그래, 네가 가끔 귀를 쫑긋해서 컴퓨터가 우리를 부르는지 잘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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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딸아이는 그저 컴퓨터와 자신의 대화를 꾸며냈지만, 나에겐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바로 컴퓨터 아닌가!  손가락이 아플 때, 눈이 피곤할 때, 밥을 먹을 때, 잘 때 등을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늘 사용하고 있다.

20여년을 컴퓨터와 함께 하면서 컴퓨터를 친구로 대한 적이 없는 듯하다. 단지 전기를  꽂아 작동을 시켜 내가 사용하는 기계로만 대했다. "컴퓨터야, 너 이제 피곤하니. 우리 같이 쉬자!"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꾸며낸 이야기처럼 이젠 컴퓨터를 친구로 삼아 무작정 혹사를 시키지 말아야겠다. 모니터 글자만 쳐다보지 말고, 책상 아래 묵묵히 일하고 있는 컴퓨터 친구를 가끔씩 내려다보면서 안녕을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딸아이가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지 않게 하는 법을 하나 더 알았다.
"딸아, 컴퓨터 친구가 피곤하니 좀 쉬게 하는 것이 좋겠어!"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