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5. 10. 22:26

코로나바이러스로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후로 오랫동안 지방에 있는 처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다행이 인터넷시대라서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수시로 메신저 등을 통해 장모님과 소통했다. 5월 첫째 주 일요일 어머니날을 맞이하여 4개월만에 2박 3일로 처가를 다녀왔다.

처갓집 방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작은 별장을 겸한 텃밭에 가보기다. 이 텃밭에 어떤 식물들이 이맘때 자라고 있는지에 대해는 관련글에서 읽을 수 있다.   


보통 텃밭은 온실이 있다. 모종을 키우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추위에 약한 채소를 키운다. 북유럽 리투아니아 텃밭 온실에서 주로 키우는 채소는 토마토, 상추, 고추 등이다. 당근, 오이, 호박, 감자,마늘, 양파, 양배추, 붉은사탕무 등은 밭에서 키운다. 


온실에서 빼곡히 자라고 있는 채소가 시선을 끌었다. 양배추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양배추를 곧 바로 밭에서 씨를 뿌려 키우는 줄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온실에서 먼저 모종으로 키운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장모님은 양배추 모종에 물을 듬뿍 주신다.  


그리고는 양배추 모종을 골라내신다.
"이 모종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일 시장에서 가서 팔아야지."
"한 포기에 값을 얼마나 부르시나요?"
"사람 봐가면서 불러야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더 부르고 
좀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덜 부르고...
좀 따지지 않을 사람 같으면 더 부르고
좀 따질 사람 같으면 덜 부르고...

"정말 그렇게 하실 것인가요?" 순진하게 여쭤봤다.
"시장가격에 팔아야지."
"모종 한 포기에 얼마하나요?"
"약 10센트(132원) 정도. 열 포기로 한 묶음을 만들어 팔지."
"그러면 한 묶음에 1유로(1320원)..."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가져와 우리 밭에 심어야지."


물을 주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쉽게 모종을 뽑기 위해서다.
뽑은 열 포기를 합쳐서 흙으로 뿌리를 감싼다.  


이어서 밑부분을 비닐로 덮고 묶는다.


여든 살을 향해 가시는 장모님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실 형편인데도 근면의 모범을 보이신다.  


이날 다섯 묶음을 만들어 다음날 아침 시장에 가서 다 파셨다. 
수입이 5유로다. 이 돈으로 빵 서너 개를 살 수 있고 혹은 우유 3리터를 살 수 있다.
빌뉴스 구시가지 식당에서 마시는 맥주 500cc 한 잔 값이다.


돈으로 따지면 굳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평소 몸에 익숙해진 부지런한 삶의 방식 때문에 하는 것일 것이다. 이 부지런함의 만에 하나라도 닮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20. 5. 8. 18:53

북유럽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에 살고 있는데 보통 두 달에 한 번꼴로 지방 도시에 있는 처가를 방문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명절인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필수적으로 처가를 다녀온다. 올해 부활절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활절를 기해 전국 이동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3월 16일부터 실시된 격리 조치가 4월 28일부터 2단계로 완화되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어머니날을 기리기 위해 처가를 방문했다. 리투아니아는 어버이날이 없다.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고 6월 첫째주 일요일이 아버지날이다. 어머니날은 자녀들이 어머니를 찾아뵙고 알뜰히 챙기지만 아버지날은 건너뛰기 일쑤다.

어머니날 선물로 아내는 좋아하는 치즈케익을 집에서 직접 구워 가져갔다. 유럽에 널리 분포되어 자라는 블랙커런트(black currant) 열매로 "엄마에게"(mamai)라는 글자까지 장식했다.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장모님 댁에 도착하자마자 시선을 강타하는 것은 뜰을 가득 메운 각양각색의 꽃들이었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서 자연 속 봄철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리투아니아 보통 사람들의 정원과 텃밭(다차, 주말농장, 별장텃밭)에서 만난 식물들을 아래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잔디밭을 가득 수놓은 데이지꽃이다.    


데이지는 쌍떡잎식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라틴어로 데이지는 bellis perennis다. bellis는 "아름답다" 그리고 perennis는 "여러해살이 식물"을 뜻한다. 홍자색 꽃망울이 서서히 하얀색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답다.


고산돌냉이꽃(alpine rockcress, arabis alpina) 또는 산돌냉이꽃이다.


옴팔로데스베르나꽃(omphalodes verna) 또는 푸른눈메리꽃(blue-eyed Mary)이다. 옴팔로데스는 그리스어로 배꼽을 의미하는데 열매의 모양이 배꼽과 닮은 것에서 유래한다. Verna는 '봄철, 봄'을 뜻하는 라틴어 'ver'에서 나왔다.


무스카리꽃(muscari) 또는 포도히아신스꽃(grape hyancinth)이다. 알뿌리 형태의 구근식물로 포도알처럼 생긴 말끔한 청색 꽃송이들이 향긋한 향을 뿜어낸다. 


팬지꽃(pansy) 또는 삼색제비꽃(viola tricolor)이다. 마치 미소짓는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봄의 여왕으로 불리는 튤립꽃이다. 강렬한 붉은색 립스틱을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사과꽃이 곧 터지려고 한다. 


아직은 부드러운 작약 줄기가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두 종류의 체리나무 즉 벚나무다. 아직 꽃이 활짝 피지 않은 왼쪽 벚나무에는 신버찌가 열리고 하얀색 꽃이 핀 오른쪽 벚나무에는 단버찌가 열린다. 흔히 체리로 불리는 대부분이 바로 후자다. 전자를 신버찌 벚나무, 후자를 단버찌 벚나무라 부르고 싶다.


신버찌 벚꽃도 이제 막 피려고 한다.


단버찌 벚꽃은 곧 질 것이다. 일찍 핀 만큼 단버찌 수확이 더 빠르다. 단버찌는 당도가 높아서 날로 먹거나 통조림을 만들어 먹는다. 이에 반해 신버찌는 주로 잼을 만들어 먹는다. 


단독주택 뜰은 잔디밭과 채소밭으로 나눠져 있다. 아직 비어 있는 왼쪽 부분은 곧 양배추와 오이가 심어질 것이다. 오른쪽 부분은 딸기와 마늘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딸기 사이에 마늘을 심어놓았다. 장모님 텃밭을 제외하고는 아직 유럽에서는 이렇게 하는 텃밭을 본 적이 없다.

왜 장모님은 오래 전부터 딸기 사이에 마늘을 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경험상 마늘을 같이 심어놓으면 병충해가 감소되기 때문이다.


뜰에 핀 꽃을 구경하는 동안 장모님표 쿠겔리스(kugelis)가 구워지고 있었다. 이 감자 음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투아니아 음식 중 하나다[관련글: 유럽인 장모의 사위 대접 음식].    


이제는 보통 사람들의 텃밭(러시아어로 다차, dacha)에는 이맘때(4월 하순에서 5월 초순) 어떤 식물들이 자라고 있을까를 알아보자. 우선 텃밭은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던 옛날 소련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이별장이다. 리투아니아어로는 sodas인데 이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보통 소규모 집과 채소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주말이나 여름철 휴가를 즐기고 또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채소를 재배한다. 보통 면적은 600제곱미터 즉 180평 정도다. 예전에는 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소밭으로 활용했으나 지금은 일부를 잔디밭으로 조성해 편하게 쉴 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텃밭에 빠질 수 없는 과일나무 중 하나가 사과나무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는 여러 사과나무가 자란다. 사과나무 밑에는 노란색과 빨간색 튤립꽃이 피어나 있고 이것이 지고나면 작약꽃이 피어오른다.   


노란색 민들레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도로미쿰꽃(doronicum orientale, leopard's bane)이다. 해바리기꽃을 연상시킨다. 


데이지꽃이다. 꽃잎의 하얀색이 홍자색을 조금씩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단버찌 벚나무 두 그루다. 기둥 하반부가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약품을 첨가한 석회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벌레 등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둘째로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껍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셋째로 부드러운 껍질이 쉽게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매년 이른 봄에 한 번만 칠한다. 이랑에는 10일 전에 감자를 심었다.


블랙커런트(black currant) 나무다. 까치밥나무과의 낙엽성 관목이다. 위에 언급한 치즈케익 위에 있는 열매가 바로 이 블랙커런트 열매다. 

항산화제인 안토시아닌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열매다. 열매가 까맣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진한 보라색이다. 맛은 새콤달콤하고 향은 진하다. 술을 담그기도 한다.  


레드커런트(redcurrant) 나무다. 이것도 까치밥나무과의 낙엽성 관목이다. 꽃이 황록색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개미 한 마리가 식사 중이다. 

7월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하다. 열매는 날로 먹기도 하고 콤포트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파가 벌써 무성하게 자랐다. 


텃밭에 거의 필수적으로 있는 온실이다. 모종을 키우기도 하고 추운 날씨에 상대적으로 약한 토마토, 고추, 상추 등을 키운다. 


온실내 오른쪽은 양배추 모종이 자라고 왼쪽은 드문드문 토마토가 자라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홍당무 등이 자라고 있다. 모종을 옮겨심은 후 이 온실은 대부분 토마토로 가득 찬다.  


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맑은 연두색 상추를 보자마자 봄철에 제맛인 상추쌈이 떠오른다.   


텃밭 가장자리에 산딸기아속 라즈베리(rasberry)가 자라고 있다.  


마늘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마늘을 요리에 자주 사용한다. 장모님은 매년 마늘 수확 후 마늘주를 만들어 선물한다.


이렇게 텃밭도 둘러보았다. 새록새록 피어오르거나 자라나는 새생명을 보니 코로나바이러스로 닫혀 있던 눈과 마음이 환하게 열린 듯했다. 장모댁을 떠나기 전 장모님이 요리한 음식이다. 

이 음식 이름은 양배추말이다. 돼지고기와 밥 그리고 양념을 해서 데친 양배추잎으로 둘러감은 후 토마토소스에 푹 끓인 것이다. 뜨끈뜨끈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감자와 양배추는 바로 위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짐칸에는 감자 한 포대가 실려 있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8. 5. 28. 16:04

아파트에 사는 주변 친구들은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보통 600 평방미터 넓이의 텃밭이 있다. 
소련 시대를 거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방 도시에 살다가 빌뉴스로 이사를 와서 우리 집은 그런 텃밭이 없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텃밭을 가진 친구들이 부럽다.
오후 5시나 6시에 퇴근해도 일몰까지는 아직 서너 시간이나 남아 있어
텃밭에 채소를 키우기에는 시간이 넉넉하다. 

올해는 우리 집 아파트 발코니에 화분 채소 키우기를 해보자고 했다. 
묵은 흙은 버리고 새 흙을 구입해 기다란 화분 네 개를 다 채웠다.
 
먼저 감자를 한번 심어봤다.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다.
부엌 찬장 속에 묵은 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기에 반으로 쪼개서 화분에 심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짙은 초록색이 돋아났다.
최근 하얀 감자꽃까지 피어났다.


좁은 화분이라서 위로만 자라는 듯하다.

과연 화분 속에 감자가 열릴 지 궁금하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가져온 들깨씨앗도 

도깨비 보호 아래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비록 삼겹살 구워먹을 때 한 잎 한 잎 그 생명을 마치겠지만...





상추도 잘 자라고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상추다.



지난해 파슬리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이렇게 아내는 매일 아침 채소 한움큼을 수확한다.

두 식구 아침 식사용으로 충분하다.



아침 저녁으로 규칙적으로 물을 주는 것도 하나의 일이지만
솔찬한 채소량에 아내는 흐뭇해 한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7. 5. 3. 05:59

얼마 전 아내가 흙없이도 작은 양파를 기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바로 톱밥이나 휴지 등을 아파트에서 작은 양파를 쉽게 기를 수가 있다. 딱 2년 전 우리 가족과 2년 4개월을 같이 산 햄스터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은 톱밥을 이용해 양파를 길러보기로 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1. 물을 팔팔 끓여 톱밥에 붓는다 (일종의 소독 효과도 겸한다) 

2. 양파 윗부분을 자른다

3. 비닐봉지에 물기가 약간 촉촉한 톱밥을 넣는다

4. 그 위에 양파를 꾹 눌러 놓는다

5. 비닐봉지 안으로 입김을 불어넣는다

6. 비닐봉지를 밀봉한다



아래는 10일 지난 후 모습이다. 양파 줄기가 비닐봉지 윗부분에 닿으면 비닐봉지를 열어놓는다. 간간히 톱밥에 물을 뿌린다.



아래는 19일이 지난 후의 양파줄기 모습이다. 적은 양이지만 식탁에 오를 채소가 부엌 창가에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함과 기쁨을 준다. 


아래는 작은 양파를 기르는 법을 알려준 동영상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5. 4. 8. 06:42

유럽 리투아니아 월요일도 부활절 휴가일이다. 일년에 의무적으로 처가집을 방문하는 날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성탄절이고 다른 한 번은 부활절이다. 학교는 주말을 합쳐 10일 동안 방학이다. 올해도 어김 없이 부활절 날씨는 기대밖이었다.
 
부활절 전날만 하더라도 대체로 맑은 날씨에 영상 10도의 따뜻한 날씨였다. 그런데 부활절를 기해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눈까지 쏟아졌다. 짧은 시간일망정이지 서너 시간 이렇게 내렸다면 적설량이 꽤 되었을 것이다. 

* 올해도 부활절 아침에 눈이 내렸다


부엌 창가 너머 쏟아지는 눈을 보는 동안 초록색 양파 줄기가 눈길을 끌었다. 겨울철 부엌 창가를 꾸며주는 마치 훌륭한 분재처럼 보였다. 겨울철 부엌 창가에 앙파를 키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키우는 양파는 관상용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아주 요긴하다. 이 양파 줄기를 흔히 사용하는 데에는 아침식사이다. 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훈제 고기를 얹고, 그리고 그 위에 이 양파 줄기를 얹는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장모님 집 양파는 윗부분이 잘려져 있다. 보통 컵에 물을 담고 양파를 얹어 키우는데 장모님은 도시락컵라면을 닮은 플라스틱통에 흙을 담아 양파를 키우신다. 궁금증이 발동해 여쭈어보니 직접 방법을 보여주시면서 일려주셨다.

* 양파 윗부분을 잘라내고 심는다


간단하다. 
양파의 1/4에 해당하는 윗부분을 잘라낸다.
껍질을 벗긴다.
양파 뿌리 부분을 다듬는다.
흙에 심는다.


"왜 윗부분을 자르시나요?"
"이유는 간단하다. 줄기가 더 빨리 위로 올라오고, 굵다."
"컵물에 키우는 것보다 흙에 키우는 것의 차이는?"
"흙에 키우는 것이 더 빨리 자라고 줄기 또한 굵다."


종종 양파를 물컵에 키웠다. 그런데 한 번도 이렇게 양파 윗부분을 잘라내고 키워본 적이 없었다. 경험상 더 빨리 자라고 굵다고 하니 다음 번 양파를 키울 때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다. 이렇게 유럽인 장모님의 생활 경험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2. 17. 07:33

이곳 북동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겨울철이 되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하나 있다. 바로 동지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해가 조금씩 조금씩 탈출하기 때문이다. 

요즘 해는 아침 8시 36분에 뜨고, 오후 3시 52분에 진다.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대부분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어제 미술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저녁 8시에 끝냈다. 가로등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둡다. 그래서 아내와 나 둘 중 한 사람이 미술학교까지 데리려 가야 한다. 

어제는 겨울답지 않게 벌써 봄이 왔음을 착각시키는 비가 내렸다. 

"아빠, 나를 데리려 와줘서 참 고마워~"
"그래."
"지금 눈이 와야 하는데 비가 오니까 이상하다. 그렇지?"
"그래 지금은 해양성기후 때문이다. 너, 며칠 전에 가르쳐 준 한국말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 기억해?"
"그럼."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숙제를 마치고 양배추 날 것을 반으로 잘라 방으로 가져갔다.


"양배추는 왜?"
"책 읽으면서 먹으려고."
"양배추가 맛있어?"
"정말 맛있어. 한번 씹어봐. 사탕만큼 달아."
"거짓말."
"아니야, 입에서 많이 씹어봐."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딸아이의 독서 중 간식이 양배추라...ㅎㅎㅎ


아내에게 물어봤다.

"당신도 어렸을 때 양배추를 저렇게 먹었어?"
"먹었지만 그렇게 자주는 아니."

긴긴 밤 책을 읽으면서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딸아이를 보니 시골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컴컴한 밤에 가위바위보 시합을 해서 진 사람이 뒷밭에 묻어놓은 차가운 무를 꺼내 왔다. 그리고 형제들이 이예기 저예기 하면서 겨울밤을 보냈다. 

도심에 살면서도 감자튀김 과자 등을 먹지 않고 날양배추 잎을 하나하나 벗겨 먹는 딸아이 덕분에 잠시나마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해본다.

요가일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최근 성당에서 공연한 노래 동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7. 14. 08:10

서양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마늘 냄새 나는 민족으로 여긴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서양 사람들은 마늘을 전혀 먹지 않을까? 유럽에서 25여년 동안 살면서 마늘을 의도적으로 먹지 않는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음식에 간을 할 때 마늘을 사용한다. 웬만한 집 부엌에는 마늘과 양파가 늘 준비되어 있다. 하루 중 마늘과 양파가 든 음식은 주로 더 이상 외출을 하지 않을 때 먹는다. 마늘은 특히 겨울에 많이 소비된다. 감기 증세를 느끼면 깐 생마늘을 이겨서 빵 위에 발라서 먹는다. 

텃밭에 심는 대표적인 채소 중 하나가 바로 마늘이다. 일전에 리투아니아 지방도시 쿠르세네이에 살고 있는 장모님 텃밭을 둘러보았다. 적지 않은 양의 마늘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특히 음자리표처럼 생긴 마늘쫑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에서 즐겨 먹던 마늘쫑 짱아찌가 불현듯 떠올랐다. 여기 사람들은 마늘쫑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마늘 줄기과 함께 그냥 버린다. 꾸불꾸불 자란 것을 보니 이미 제철은 지난 듯했지만, 그래도 한번 짱아찌를 담그보자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마늘쫑을 뽑아서 말끔하게 씻었다. 짱아찌 요리법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아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을 만들다보면 늘 유럽인 아내와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리법에 정확한 양의 측정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요리법에 따르면
마늘쫑 2단에 간장 3컵, 소금 1컵......

"2단의 정확한 무게는?
컵의 정확한 양은?
소금 1컵이라면 짜서 먹을 수 없을 텐데 정말 1컵이냐?"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아내의 따지기가 귀찮을 정도로 이어진다.   

"맛이 없으면 나만 먹을 테니 그냥 해보자!"로 매듭 짓는다.
 
이번에 마늘쫑 짱아찌를 담그면서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유리병을 소독하는 데 끓는 물을 붓는다. 막바로 부으면 유리병이 쉽게 깨어진다. 그래서 쇠숟가락을 넣은 후에 물을 붓는다.


진공유리병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1달간 한번 기다려보련다. 조금이라도 먹을 만하다보면 다행스럽다. 괜히 공력만 쏟았다는 핀잔을 듣지 않길 바랄 뿐이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2. 5. 10. 05:22

우리 집 아파트 발코니는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겨울철에는 별다른 쓸모가 없지만, 여름철에는 우리 집의 사랑방이자 일광욕장, 딸아이의 놀이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물론 화초도 자란다. 

해를 달리해서 화분에 딸기도 키워보고, 토마토도 키워보고, 오이도 심어보았지만 한정된 공간에 얻을 수 있는 양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저 심심풀이와 관상용이었다. 이번 봄 아내가 페트병을 이용한 채소가꾸기를 인터넷에서 읽어본 후 우리도 파를 심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직접 페트병을 이용해 파를 심어봤다.  


1. 페트병을 준비한다.
2. 가스불에 칼을 달구어 파을 심을 수 있도록 자른다. 세 부분만 자르고 밑에 부분은 자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 마주 보는 두 면에 각각 9개와 5개의 공간을 마련한다. 이렇게 하면 모두 28개의 파를 심을 수 있다.
3. 흙을 담는다. 페트병 입구가 좁아서 흙을 넣기가 힘든다. 마분지 등을 이용해 흙을 넣으면 된다.
4. 파를 심는다.

5월 1일 심어놓은 파(왼쪽)가 5월 9일 현재 자라고 있는 파(오른쪽)를 비교한 사진이다.


아래는 1.5리터 페트병과 길쭉한 플라스틱 화분(77cm x 15cm)에 자라고 있는 파를 비교한 사진이다. 페트병에는 현재 파 24개가 자라고 있고, 길쭐한 화분에는 현재 13개가 자라고 있다.


만약 페트병 5개라면 파 100개가 자랄 수 있겠다. 이 방법으로 부지런히 한다면 주말농장에 가서 심는 파 양만큼이나 아파트 발코니나 방에서도 손쉽게 파를 키울 수 있겠다. 우리 집 발코니에 심어놓은 파 덕분에 요즘 매일 싱싱한 파를 먹는다.


겨드랑이 땀냄새 제거 비결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8. 5. 19. 06:48

일요일 아침 비를 동반한 번개와 천둥이 올해 처음으로 지나갔다. 고대 리투아니아인들은 천둥을 남성의 힘으로 간주했고, 천둥으로 하늘(아버지, 남성)과 땅(어머니, 여성)이 서로 결합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첫 천둥이 치고 난 후 여자들은 밭으로 가서 뒹굴면서 풍작을 기원했다고 한다.

오후 들어 날이 개이자 식구들은 일전에 다 못한 씨앗심기를 하려 친척집 텃밭으로 갔다. 지난 번 씨를 뿌린 들깨가 제일 궁금했다. 가보니 들깨 싹이 촘촘히 밖으로 나와 있었다. 고랑을 그렇게 깊지 않게 파서 심었는데도 불고하고 이렇게 싹이 잘 나서 좋았다. 풍작이 벌써 기대된다.

오늘은 강낭콩과 오이 씨앗을 심었다. 친척인 빌마가 먼저 오이 씨앗을 심을 고랑을 깊숙이 파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씨앗을 심는 일이 고랑을 파는 일보다 쉬운 데 왜 아무런 말없이 여자가 팔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랑을 파겠다고 하니 옆에 있던 아내가 끼어들었다. 지난 번 양파 씨앗을 여자들이 심었으니, 오늘은 남자들이 오이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몇 해 전 시골 텃밭에서 양파와 오이 씨앗을 심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덩치가 가장 큰 여자 친척이 혼자 양파 씨앗을 다 심었다.

당시 이유를 물은 즉 양파가 그것처럼 크게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오이 씨앗을 심어야 하는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 리투아니아 남자들은 속옷을 입지 않고 오이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심지어 오이 씨앗을 다 심고난 후 남자들을 그 오이 밭에 눕도록 까지 했다고 한다. 이 모두 풍작을 위한 의식이다. 오늘 심은 오이가 얼마나 많이 크게 자랄까 벌써 궁금해진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