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내었지만 도저히 사량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건축물을 흔히 불가사의라 부른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7대 불가사의가 있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대피라미드, 바빌론 공중 정원, 알렉산드리아 등대,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 마우솔로스 영묘, 올림피아 제우스 상, 로도스 거상이다.
*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스톤헨지, 콜로세움, 카타콤베, 만리장성, 영곡탑, 하기야 소피아, 피사탑이다.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기적이 발표되었다. 이는 마추픽추,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만리장성, 타지마할, 요르단 페트라, 로마 콜로세움이다.
근래 들어 사춘기에 막 접어든 딸아이는 8번째 불가사의 기적을 말한다. 무엇일까? 학교에서 혹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요가일래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오~~~ 8번째 기적!!!"
"딸아, 네가 말하는 8번째 기적은 도대체 뭐지?"
"아빠, 궁금하지?"
"당연하지. 뭔데?"
"바로 집이야!!!"
"이잉~~~"
"어떻게 집이 기적이 될 수 있니?"
"집은 정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고 싶은 기적 같은 곳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참 좋네. 그래 이 기적 같은 집에서 기적 같은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아빠,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이 정말 기적이다. 그렇지?"
"넓고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이렇게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은 네 말대로 기적이다."
학교 수업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한 가족이 함께 하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존재가 집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이렇게 생각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딸아이의 이런 생각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운영한 지 벌써 만 7년이 되었다. 이 블로그의 한 부류를 차지하는 아버지와 딸아이 이야기의 주인공 요가일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 다 자라나? 휴~"하던 시절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는 "벌써~ 소녀가 되었네!. 사춘기를 잘 넘겨야할텐데"라는 때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는 시간이 빨리 가면 참 좋겠다라고 바랬는데 지나고 나니 세월은 역시 빨랐다. 이제 6년을 더 학교 다닌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언니처럼 외국에 공부하러 가면 함께 지낼 시간도 사실 그렇게 많지가 않다.
지난 여름 종종 큰소리로 대꾸하기에 한번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이유없이 대꾸하면 안 되잖아!"
"나도 알아. 선생님이 우리가 그런 나이에 있다고 해서."
"그래도 아빠가 늘 마음이 예뻐야 된다고 네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쳤는데 이런 때 그 덕을 좀 보자."
"나도 알아. 아마 이런 날이 빨리 지나가면 괜찮을거야."
더 이상 나무랄 수가 없었다.
9월 1일 요가일래는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먼저 유럽 리투아니아의 중학교 수업시간표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1주일 수업시간은 총 31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1주일 수업시간이 22시간이다. 6년 후 11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가장 수업시간(5시간)이 많은 과목은 국어인 리투아니아어다. 이어서 영어와 수학이 각각 4시간이다. 역사, 생물, 지리, 러시아어, 체육, 작업이 각각 두 시간이다. 물리, 미술, 음악, 신앙, 정보기술, 학급시간이 각각 1시간이다. 역시 여기도 국영수가 최우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담임선생님과 조회는 매일 열리지 않고 월요일 딱 1시간이다.
그렇다면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생활에서 확~ 변한 것은 무엇일까?
9월 1일 개학한 날 밤 다음날 학교에 가기 위해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딸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부모님이 일어나야 돼?" (즉 일어나서 깨우고 아침밥을 챙겨줘야 돼나?)
"아니.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어. 내가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그냥 부모님은 계속 자세요. 내가 혼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서 먹고 학교에 갈거야."
"정말 그래도 돼?"
"정말이야. 이제부턴 내가 한다. 나도 이제 스스로 해야 할 나이잖아."
"그래. 그 결심을 존중한다."
그 후 며칠 동안 정말 딸아이는 스스로 잘 했다. 어느 날 아침 9시경 일어나 침대에서 뒤척이면서 '오늘도 학교에 잘 가겠지'하고 속으로 딸아이를 칭찬했다. 한참 후 일어나 세수하고 거실로 가는데 딸아이의 방문에 닫혀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열어보았더니 딸아이가 여전히 쿨쿨 자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학교에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욕심에 자명종 시계를 6시 반에 맞추어놓았다. 일어났지만 3개월 여름방학에 여전히 익숙해져 있는 몸을 쉽게 일으켜세울 수가 없었다.
침실에 있는 아내에게 살짝 와서 상황을 설명하면서 야단을 치지 말자고 했다. 이번을 계기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후 요가일래는 휴대폰 자명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으로 맞춰놓았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이렇게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후에 음악학교로 출근하는 아내는 보통 늦게 잔다. 거의 집에서 일하는 나도 늦게 잔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 중 누가 먼저 일어나야 했다.
"당신이 내일 일찍 일어나 딸아이 등교를 도와줘!"라고 서로에게 미루지 않게 되었다.
이제 곧 만 13살이 되는 딸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부모 도움없이 등교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자립심이 지속되어 만 18세 성인이 되면 정말 스스로 세상살기에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이틀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학교 가려고 하는 데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아직 고열은 없지만, 혹시 시간이 지나면 생길 수도 있어서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목요일 아침에도 기침했다.
"오늘은 학교에 가도 되잖아?"
"자연과목 시험이 있어 안 갈래. 어제 학교에 안 갔으니 준비가 안 되었어."
"그래도 가야지."
"엄마가 안 가도 된다고 말했어."
목요일 저녁에도 간간히 기침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지?"
"안 걸거야."
"왜?
"금요일이잖아."
딸아이가 가벼운 감기 증상인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감기로부터 완쾌돼야 한다. 4월 13일 노래경연으로 텔레비전 출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으니 실팔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딸아이
몸이 아파도 혼이 날까봐, 아니면 적어도 개근상이라도 타야지 하는 욕심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모두 합쳐 6년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아빠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유럽에 살다보니 자녀에게 부모의 생각이나 의도를 강요하지 않게 되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아뭏든 요즘 여기 아이들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약간 기침한다고 학교에 안 가도 누가 그렇게 나무라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공부 못 한다고 부모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듣는다거나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것 자체가 여기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래는 중국 학교 교실을 담은 영상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매질하는 모습이다.
이 영상을 본 우리 집 식구 반응이다.
"어떻게 선생님이 저렇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지?!"
"정말 잔인하다."
"나중에 선생님 팔이 엄청 아플텐데..."
아래는 중국 학교 교실과는 완전히 딴판인 러시아 학교 교실을 담은 영상이다.
학생이 나이든 선생님의 머리에 쓰레기통을 뒤집어 씌운다.
이 영상을 본 우리 집 식구 반응이다.
"참으로 러시아스럽다."
"존중이라고는 티클만큼도 없다."
"차라리 중국 교실이 더 좋다."
중국 교실만 보여주면 잔인함에 분노하게 되고, 러시아 교실을 보여주면 훈육매질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선생과 학생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존중이 완전히 마비된 사회를 이 러시아 교실에서 보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가끔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초등학교 4년까지는 일체의 지식교육을 하지 말고,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덕목을 기르는 인성교육만 했으면 좋겠다.
또 한 주말이 지나갔다. 이번 주말 유럽 리투아니아 전역 날씨는 여기 현지인들 표현대로 "개같은" 날씨였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강풍이 불고, 해가 났다. 해가 쨍쨍해 밖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자 이내 눈이 쏟아졌다. 바람이 없어 산책가고자 하면 금방 강풍이 불어서 가로수가 휘청거렸다. 이런 날씨에 상책은 그냥 집에 있는 것이다.
* 이번 주말 서양란 뒤 하얀 구름이 어느 순간 몰려와 하얀 눈을 뿌렸다
주말에 식구 셋이서 모두가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아무런 기척없이 여러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은 주말에 학교 숙제가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물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오래하면 부모의 조언이 따른다. 딸아이가 무엇을 하나 살펴보니 열심히 실로 팔찌를 짜고 있었다.
"지금 뭐하니?"
"언니 생일에 줄 팔찌 선물을 만들고 있어."
"안 어려워?"
"쉬워."
"어떻게 배웠니?"
"유튜브에서."
"허리 아플테니 쉬면서 해."
"언니 거 끝나면 엄마 거 만들고, 그리고 아빠 거도 하나 만들어줄게."
"그래? 수호신으로 모셔야겠네."
"이제 팔찌 사달라고 조르지 말고 이렇게 직접 만들어 사용하면 좋겠다."
"당연하지."
* 실팔찌 모두가 직접 짠 것이다
이렇게 주말에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 실로 팔찌를 짜면서 시간을 보내는 딸아이가 부럽다. 한편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인터넷이 없던 옛날 옛적에 베를 짜는 선조들의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근래에 들어와 학교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의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 남아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놓아두다가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수요일 저녁에 한마디했다.
"앞으로는 음악학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한 시간 정도 늦게 돌아오는 것을 허락한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노는 것도 정말 중요해. 엄마가 이해해줘야지."
"그래도 안 돼. 숙제도 해야 되고, 음악학교에도 가야 되고."
아내의 결정이 쉽게 이해된다. 자녀들이 학교에 남아서 놀다보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사춘기에 점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목요일이었다. 어머니의 결정을 하루도 안 돼서 잊어버렸는지 딸아이가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3시까지 돌아와야 했다. 딸아이는 3시 조금 후에 돌아오겠다는 문자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시침은 점점 4시로 향해는데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걱정이 되어서 쪽지를 보냈다.
답은 이렇다:
내가 빨리 올게. 혼내지마. 친구를 혼내줬어. 엄마한데 내가 그렇게 늦게 왔는거 말하지마.
보통 한국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머니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깥 양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회초리를 들고 훈계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어제 목요일 한국어 수업시간에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무서워했나? 어머니를 무서워했나?"
한결같은 대답은 "어머니를 무서워했다."였다.
"대체로 유럽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무서워할까?"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그냥 대대로 ㅎㅎㅎ."
유럽 아이들이 부모가 혼내는 방법 중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허리띠로 엉덩이 맞기다.
자, 왜 딸아이는 목요일 늦었을까?
친구를 혼내주느라 늦었다고 했다. 여기서 혼내주다는 설득하다가 맞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근래 서로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딸(A)을 포함해서 셋(A, B, C)이다. 그런데 B가 C에게 삐져서 사이가 좋지 않다. B는 딸에게 더 이상 C와 같이 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수업이 다 끝난 후 학교에 남아서 B를 설득했다.
"결과는?"
"친구(B)가 조금 좋아졌어. 내일 학교에 가서 더 말해야 돼. 그런데 내가 오늘 늦었으니 내일(금요일)은 내가 놀지 않고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올게."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두 번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생활지도 선생님이 어느 학생이 담배를 피웠을까를 조사하고 있었다. 답은 누가 바로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가이다. 각 반을 돌면서 누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탐문 조사를 했다. 그 조사 대상에 딸아이가 걸렸다. 같은 반에 누군가 딸아이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학교 화장실을 꺼리는 딸아이인데 이 날 학교 화장실을 사용했다. 이에 딸아이는 생활지도 선생님에게 불러서 입냄새를 맡게 했다. 결과는 딸아이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 사진출처 [facebook.com]
2. 우린 다 사람이잖아
딸아이는 최근 들어 한 해 저학년생인 5학년생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이 이상하게 딸아이를 쳐다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반 친구들과 놀아야지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노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요가일래 [사진출처 facebook,com]
딸아이의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반 친구들이 이상해."
"왜?"
"학년이 다르다고 해서 친구가 도리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어. 우리는 사람이니까 친구가 될 수 있어야 돼."
"그래 지위나 연령, 피부, 종교, 민족, 신념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부담없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반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네가 지금처럼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친구하도록 해. 이유는 네 말처럼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니까."
이날 따라 딸아이의 "우린 다 사람이잖아"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얽매여 가장 큰 근본인 "우리 모두 사람이잖아"를 망각한 경우가 참으로 흔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과제와 성적, 가정통지문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선생님이 시험성적을 채점해 컴퓨터에 결과를 입력하는 즉시 집에서 가만히 앉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딸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며칠 전 딸아이가 학교에 있는데 지리 성적을 앱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최하점이었다. 잘못 기재가 된 듯했다. 왜냐하면 지리 시험을 대비해 시험 전날 늦도록까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에 딸아이로부터 문자쪽지가 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혼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상황을 설명하고자 했다.
딸아이가 설명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시험지에 있는 지도와 바다를 표시하는 숫자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시험지를 보지 않았으니 선뜻 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온 후에 다시 상의하자고 했다.
그런데 딸아이의 문자쪽지에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번역하면 이렇다.
"엄마를 사랑해. Y.o.l.o. 인생은 한 번이야. 우린 한 번만 살아."
이에 대한 엄마의 답이다.
"그러니까 우린 노력해!!!"
시험에서 최하점을 받고도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은 한 번이야"라고 답하는 12살 딸아이가 외계에서 온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좋지 않은 시험 성적 결과가 나왔을 때 선생님과 부모에게 가슴 조아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학급 성적이 낮아서 반 전체가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밀대로 매를 맞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가 시험지를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딸아이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비판의 화살은 작고 희미한 세계 지도를 가지고 시험을 보게 한 지리 선생님을 향했다. 당장 지리 선생님에게 전화해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우리 부부는 재시험이 안 된다면 교장 선생님에게 항의할 태세였다.
선생님을 나무라지 마
"선생님을 나무라지 마. 정말 좋은 선생님이야."
"네가 재시험에 동의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선생님에게 한번 말해봐."
"내가 학생이니까, 내가 해결해볼 게. 선생님에게 다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지를 물어볼 거야.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니까 안 좋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아."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지리 선생님하고 얘기해봤어? 다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준데?"
"그렇게 하기로 했어."
"네가 어떻게 말했는데?"
"지도가 희미하다 말하지 않았어."
"그럼, 어떻게 말했어?"
"내가 지도를 잘 볼 수 없어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다시 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했어."
지도가 희미한 것을 탓하지 않고 지도를 잘 보지 못한 자기를 탓하는 딸아이가 기특했다. 나쁜 성적에 기죽지 않고 부모 참견 없이 재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재시험 기회를 제공한 선생님도 멋지다. "시험 성적에 연연하지 말라"라고 가르치지만, 뜻하지 않게 최하점을 맞은 딸아이를 보니 안타까웠다.
학교 입구까지 손잡고 등교시켜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자녀를 키우면서 접하는 이런 물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저절로 해결된다.
딸아이는 만 12살로 한국으로 치면 곧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3월에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리투아니아는 초등학교가 4년제라서 중학교 2년생이다.
최근까지 매주 금요일은 딸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챙겨 주고 학교에 보내는 일을 맡았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서너 시간 잔 후에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질문이다.
"너는 언제 커서 스스로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나?"
"아빠도 힘들지? 아직 내가 어리니까 아빠가 도와줘야지."
"빨리 스스로 혼자 아침밥 챙겨 먹고 갈 수 있도록 하면 참 좋겠다."
"그래도 아빠가 깨워주고 아침밥을 준비해주면 좋잖아."
드디어 때가 왔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딸아이는 꼭 3일째 이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아직 일주일이 채 안 된 지난 목요일 시차병으로 자명종없이 새벽에 일어났다. 일어나니 다섯시였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감기에 완쾌된 몸이 아직 아니지만 하루 일을 시작했다.
6시 20분 누군가 방문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다. 딸아이가 교복을 입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영처럼 보였다. 딸아이는 아침 7시 10분경 깨워야 일어난다.
"네가 웬일이야?"
"아, 이제 혼자 일찍 일어나기로 했어."
"그래? 잘 했다. 씻고, 스스로 아침밥을 준비해봐라."
"알았어."
딸아이 아침밥은 사실 간단하다. 빵 두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뜨거운 물에 코코아와 우유를 타는 것이다.
* '부모님, 이제 아침 늦게까지 편히 주무세요. 제가 알아서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난 12년 동안 딸아이는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다.
한국 부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유럽인 자녀들은 이렇게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큰딸 마르티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챙겨 먹고 등교했다.
아, 이렇게 해서 난생 처음 작은딸 요가일래는 2014년 2월 6일 스스로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로 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자명종을 맞춰놓고 딸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챙기는 일에서 마침내 해방된 셈이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잘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금요일 학교 수업을 마친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 친구 셋이서 시내 중심가에서 약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대형백화점으로 놀러갔다. 갈 때는 시내버스로 이동했고, 올 때는 일행 중 한 명의 어머니가 태워주었다. 이날 저녁 무렵 밖에서 손님을 만나 식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와니 거실에서 매니큐어 냄새가 났다.
"오늘 뭐 샀니?"
"이거 매니큐어 샀어."
"아빠가 벌써 여러 번 말했잖아. 손톱, 발톱도 숨을 쉬니까 매니큐어 바르지 마라고."
"알아. 이건 그냥 놀이야."
"그래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쁘면 아빠도 기뻐야지. 나는 매니큐어 놀이하면 기뻐."
"너는 기쁘지만, 아빠는 안 기뻐. 아빠가 안 기쁜 일을 네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빠 생각이다. 아빠가 여자가 아니니까 여자 마음을 몰라."
"아빠가 어른이니까 어른 하는 말을 좀 알아들으면 좋겠다."
"알았어. 지울게.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나무라지 마. 그냥 놀이야."
"그래. 너는 아직 어리니까 이런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마라."
"우리 반 여자들은 반 이상이 벌써 입술 화장, 눈 화장 하고 학교에 와."
"너는 아직 그렇게 하지 마."
"알았어."
여자가 아니니까 vs 어른이니까
"아빠는 여자가 아니니까 여자 마음을 몰라"라는 딸아이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딸아이를 키우는 동안 앞으로도 딸의 '여자가 아니니까' 주장과 아빠의 '어른이니까' 주장이 자주 충돌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럽인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식당에 가지 않는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값이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것보다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식당에서 한 끼 먹는 비용으로 집에서는 여러 끼를 해먹을 수 있다고 계산하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종종 우리 가족은 식당에 간다. 이 경우가 바로 딸아이 요가일래가 노래 공연을 만족스럽게 한 때이다. 이때 우리 가족은 요가일래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는 날이다.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하나 같이 스마트폰를 사용했다. 구형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아내는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남편과 딸에게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식당에 왔으면 서로 얼굴 마주보면 대화를 해야지. 이럴려면 뭐하려고 식당에 왔나? 그만 집에 가자."
"시켜놓은 음식은 먹고 가야지."
듣고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가족이 오붓하게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런 정겨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아내가 제안 하나를 했다.
"앞으로 식당에 가기 전 이렇게 하자. 식당에 있는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자."
일전에 인터넷에서 접한 사진이 떠올랐다.
"우리는 와이파이가 없어요. 서로 대화하세요."
앞으로는 우리 가족의 경우에서처럼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만큼이나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식당도 인기를 얻을 법하다.
12월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식구는 바로 딸아이 요가일래다. 음악학교 공연 때문이다. 벌써 이번 달만해도 네 차례나 노래 공연했다.
13일 금요일 음악학교 전체 연말 연주회가 열렸다. 다양한 전공 학생들 중 선발 경연을 통해 무대에 올린다. 올해 요가일래는 플루트, 피아노, 북, 실로폰의 반주에 따라 한국 동요 "반달"을 불렀다. 반주하는 학생들이 어려서 서로 맞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은 많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마디했다.
"오늘은 서로 좀 잘 안 맞은 것 같더라. 네 목소리도 좀 약하고......"
"알아. 웬지 알아?"
"오늘이 2013년 12월 13일금요일이라서 그래. 하하하."
다음날 토요일 이번에는 가톨릭 성당에서 열린 공연회에서 또 다시 한국 동요 "반달"을 불렀다.
변성기에 있다는 딸아이
별탈없이 잘 넘겨서 고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길 바란다. 딸아이가 다음에 부를 한국 노래를 이번 주말에 인터넷과 노래책에서 찾아보았으나 리투아니아인 아내 마음을 확 사로잡는 노래를 찾지 못했다.
블로그를 통해 익히 알려졌듯이 딸아이 요가일래는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전공하고 있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 같이 "가수"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노래 연습에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고 있다.
"왜 열심히 안 하니?"
"나 변성기야."
변성기라는 말에 선생님도 우리도 크게 재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학교이니 노래 경연 대회가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는 좀 나은 성적을 원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다.
2년마다 리투아니아에는 가장 권위있는 전국 학생 노래 경연 대회(다이누 다이넬레, Dainų dainelė, 직역하면 '노래 중 한 곡')가 개최된다. 2012년 이어 2014년 봄에 열린다. 이번 12월에는 이 대회 본선 진출자를 뽑기 위해서 두 차례 경연이 열렸다.
1단계: 학내 경선
2단계: 시별 경선
3단계: 도별 경선
4단계: 전국 경선 (TV 생중계)
5단계: 최종입상자 공연 (국립 오페라 극장)
즉 학내 경선과 시별 경선이 끝났다. 12월 7일 시별 경선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요가일래도 참가했다. 11살부터 14살까지 연령대에 속한다. 막 12살이 된 터라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과 겨루기에는 사실 버겹다. 목소리가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본선까지는 마이크 없이 노래해야 한다.
세 곡을 준비했다. 리투아니아 노래 1곡, 한국 노래 1곡, 스웨덴 영어 노래 1곡. 경연 규정은 가급적 리투아니아어 노래를 추천한다. 이번에는 워낙 참가자가 많아서 3곡에서 2곡으로 줄었다. 요가일래는 한국 노래 반달, 스웨덴 랩소디를 선택했다.
들어보니 무난하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대회장 밖으로 나온 딸아이는 표정이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내가 노래하는 데 모두 미소를 띄었어. 나 또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나 이길거야."
"그래. 자신감이 중요하지. 노래를 잘 부르니까 좋잖아.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라."
하지만 속으로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이번 단계에서 떨어지면 딸아이가 받을 충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잘 했다. 하지만 경쟁이 너무 심하고, 또 네가 변성기고, 노래도 리투아니아어가 아니고 한국어와 영어이니까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일요일 늦은 저녁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요가일래가 2단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서 3단계에 오르게 되었다"라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내가 합격한 것이 반달 노래 때문일까? 스웨덴 랩소디 때문일까?"
"만약 반달이라면 3단계에서 표정이 더 풍부하게 노래를 해야겠다."
이렇게 말한 후 요가일래는 유튜브를 통해 이선희가 부르는 반달 노래에 따라 열심히 표정과 손짓을 연습했다. 한편 요가일래는 오는 금요일 학교 전체 연말 연주회에서 한복을 입고 반달 노래를 부른다. 이번 결과로 무엇보다도 노래를 더 잘해야겠다라는 동기를 다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사람마다 습관이 다르다. 도서를 구입하면 속표지에 이름과 구입날자를 적는다. 혹시나 분실할 때 누구에게 돌려줘야 할 지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도 담겨져 있다. 뒷표지에는 완독한 날짜를 적어놓는다.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여름에 가족으로부터 스마트폰을 선물받았다. 스마트폰은 값이 비싸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정보가 소중하다. 누구나 이를 분실하지 않으려고 주의하지만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만약을 위해 나도 내 명함을 스마트폰 뒷면에 끼어놓았다.
어느날 아내가 이를 보더니 한마디했다.
"정말 보기 안 좋다. (고급스러운) 스마트폰에 (큼직한) 명함이 정말 안 어울린다. 유치하다. 없애!"
옆에 있던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도 반응했다.
"엄마는 참. 이건 정말 좋은 생각이야. 누가 발견하면 쉽게 찾아줄 수 있잖아. 아빠는 천재야!"
스마트폰에 끼어놓은 명함에 아내와 딸은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민주주의 표 대결로 2 대 1이니 명함을 그대로 끼어놓자."
최근 딸아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너 뭐하니?"
"꼬리표를 만들고 있어."
"왜 만드는데?"
"혹시 잃어버리면 누가 찾아줄 수 있잖아.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아. 내가 혼자야."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아파트 입구에서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렀다. 보통 이 소리에에 우리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딸아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린다. 발걸음이 빠르면 딸아이가 기분이 좋고, 발걸음이 느리면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린다.
그런데 어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늦었다. 계단으로 올라오면서 친구에게 문자 쪽지를 보냈다고 했다. 딸아이가 학교에 있는 오전에 벌써 인터넷으로 영어 시험성적 결과를 알게 되었다.
"축하해. 영어는 만점(10점)을 받았더라."
"고마워. 그런데 지리는 9점을 받았어. 괜찮아. 9점도 좋아."
"그래.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지리를 잘했어. 너도 잘할 거야. 조그만 더 힘내. 아빠가 뭐 해줄까? 라면?"
"라면? 정말로?"
라면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다. 라면이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자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딸아이는 좋아하면서도 정말 아빠가 해줄까라고 물음표를 달았다.
보통 라면 한 봉지를 끓이면 물을 조금 넉넉하게 해서 딸에게 듬뿍 주고 찌꺼기는 내가 밥을 말아서 먹곤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배고플 것 같아서 끓인 라면 전부 다 그릇에 담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도 먹어야지."
"아니야. 난 됐어."
"아빠도 먹고 싶잖아."
"아니야. 오늘은 네가 다 먹어."
"아니야, 내가 이렇게 들어줄게."
"아니야, 됐어. 네가 다 먹을 수 있잖아."
"아니야, 아빠도 먹어야지."
"아니야, 네가 다 먹어."
이렇게 몇 차례 서로 우기다가 결국은 딸아이가 졌다.
"사실은 내가 다 먹을 수 있는데 아빠도 먹고 싶으니까 내가 주고 싶었어."
"그래. 항상 내가 조금 덜 먹어라도 남을 배려하는 예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
"아빠가 늘 마음이 예뻐야 된다고 말했잖아."
"그렇지. 나중에는 내 마음이 예쁘다는 것마저도 잊어야 돼."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은 딸아이 왈: "아빠, 나 다 먹었어.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
우리 집 상주 식구는 세 사람이다. 그런데 세 사람이 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주말뿐이다. 직장과 학교 등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아침 7시 10분에 일어나 40분에 학교에 간다. 금요일을 제외하고 아내가 일어나서 아침 식사와 차를 준비한다. 딸아아는 6시간 혹은 7시간 수업을 마치고 보통 오후 2시나 3시쯤 집에 돌아온다.
아내는 월, 수, 목 오후 1시에 직장으로 가서 오후 7시에 돌아온다.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 대학교 한국어 강의를 빼고는 대부분 집에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 점심을 챙기고 음악학교로 보내는 일은 내 몫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아무리 다른 일로 바쁘더라도 주말에는 식탁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이번 일요일 식탁에 앉았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빠, 왜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아?"
"당연하지. 아빠가 한국 사람이니까."
"그거 말고. 다른 것?"
"뭘까?"
"한번 봐. 내가 어떻게 앉아있는 지."
딸아이는 학교에서도 유일하게 이렇게 앉는다고 말했다. 이 앉는 자세가 바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주고 한국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두 다리를 의자에 놓고 한 쪽 다리를 올려서 앉는 것이다. 그 다리의 무릎에 팔꿈치를 얹는 자세이다.
"왜 그 자세가 한국 사람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있을 때 많이 봤어.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그러면 네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또 증명해봐."
"난 김치도 먹고, 라면도 정말 좋아하고, 미역국, 김밥. 불고기, 배, 대추, 감, 석류 등을 잘 먹잖아."
"그건 한국 사람이 아니라도 잘 먹을 수 있잖아."
"아니야, 내 친구들은 못 먹어."
"네가 스스로 한국 사람이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좋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말을 할 수 있잖아. 앞으로는 말뿐만 아니라 글도 알아야 돼. 오늘은 반드시 한국어 책을 베껴쓴다. 알았지?"
"예, 아버님. 사랑해요."
비록 한국에 살지 않고 또한 반쪽이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렇게 자신이 왜 한국 사람인 점을 스스로 찾아내고 확인해보는 딸아이가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아래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옛시청 건물에서 딸아이가 한국의 가을 노래 - 노을을 부르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벌써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이제 첫눈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 11월 5일 딸아이가 만 12살이 되었다. 같은 띠를 만나는 뜻깊은 생일이라 다른 해와는 좀 다르게 축하해주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들뿐만 아니라 같은 도시에 사는 일가 친척도 초대하기로 했다. 보통 생일 행사는 선물과 친구 초대였다.
딸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아내는 역할 분담을 제안했다. 나는 12개의 풍선을 불어서 거실에 주렁주렁 매다는 것이었다. 공기를 넣는 도구가 있어서 힘은 덜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학교에 돌아온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저 풍선 누가 매달었어?"
"내가."
"정말 고개 아파겠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면서 풍선 12개를 매다는 일이 딸아이에겐 아주 어려운 일로 비쳐졌다. 바닥에서 풍선을 실로 묶어서 걸기만 했는데 말이다.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 ㅎㅎㅎ
자, 그럼 아내의 일은 무엇이었을까?
딸아이의 침대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인형들을 모두 올려놓았다. 딸아이는 자기가 애주중지 사용하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인형들을 상자 세 개에 다 담아놓았다.
아내는 딸아이가 이제 12살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더욱 인형하고 놀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상자에서 인형 모두를 꺼내 전시했다. 마치 인형들이 그 동안 놀아준 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동시에 생일을 축하케했다. 앞에는 긴 풍선을 놓았다. 풍선에는 한국어. 리투아니아어, 영어, 에스페란토 4개 언어로 "생일 축하해요"라고 썼다.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 방에 들어온 딸아이의 반응은 그야말로 환상적었다. 엄마의 깜짝 축하에 기분이 최고였다.
풍선을 불어 매달고, 미역국을 끓이고, 여러 음식을 요리하고, 손님들을 접대하는 데 하루 종일을 보냈다. 특히 아내의 인형 축하 발상은 최고였다. 인형들이 축하하면서 "이젠 어린 시절은 안녕!"이라는 암시를 하는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딸아이는 행복한 생일을 보냈을 것이라 믿는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날인 11월 22일이 오면 꼭 만 6년이다. 종종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딸아이는 내일이면 만 12살이 된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생일이니 선물이 필요하다. 선물를 주는 일은 쉽지만, 선물을 선택하는 일은 참 어렵다.
어느 정도로 해야 적당하고, 무슨 선물을 해야 받는 사람이 좋아할까......
딸아이 친구들은 지난 주말 "무슨 선물을 원하니?"라고 문자로 딸에게물어왔다. 이에 딸아이는 "딱히 필요한 것은 없지만, 네 마음이 원하는대로 해."라고 답했다.
며칠 전 대학생인 큰딸 친구가 생일을 맞았다. 두 친구가 축하하기 위해 기발한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가 곧 프랑스 파리로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상자 표면에 색종이로 프랑스 국기를 장식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치즈, 프랑스를 상징하는 바게트빵과 프랑스산 포도주를 넣었다. 재치있는 이들의 선물 선택에 우리 식구들은 박수를 보냈다.
자, 이제 그렇다면 딸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까? 1년 중 딸아이가 부모로부터 선물을 기다리는 날은 딱 두 날이다. 성탄절과 생일이다. 성탄절에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원하는 선물을 편지로 부탁한다. 생일에는 미리 가지고 싶은 물건을 부모에게 부탁한다.
"올해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니?"
"당연히 스마트폰이지."
"너무 비싸잖아. 왜 스마트폰이데?"
"화면이 크고, 인터넷도 할 수 있고, 또 아빠에게 한글로 쪽지도 보낼 수 있고......"
"이유가 참 많다. 학급 친구들도 가지고 있나?"
"있지. 많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어."
"나중에 사면 안 될까?"
"한 해라도 빨리 카카오톡으로 아빠하고 한글로 쪽지 보내기를 하고 싶어."
모태부터 지금까지 딸아이와는 한국어로 대화한다. 가끔 보내는 문자도 로마자를 이용해 한국어로 주고 받는다. 그런데 영~ 엉망이다.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래는 딸아이와 최근 주고 받은 문자 쪽지이다.
한국어 철자에 맞게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데랄라 좀 써 오늘은."
"어디에 있어?"
"일어났니? 우리가 리나 묘에 있다."
"내가 집에 혼자 있어?"
"아니. 빌류스도 있지."
"아~. 빨리 집에 와."
"알았다. 물고기 먹어라. 그런데 조심. 뼈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또 잘거야. 안녕."
물론 횟수는 많지 않겠지만, 편하게 한글로 쪽지를 보내고 싶다는 딸아이의 말에 "아, 그래 이제는 사줘야겠네."라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딸아이가 얼마나 정확하게 한글로 문자를 쓸 지 궁금하다. 스마트폰 덕분에 딸아이가 말하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쓰는 한국어에도 조금씩 익숙하게 되길 바란다.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딸에게 점심을 챙겨주고 음악학교로 보내는 일은 내가 맡은 일이다. 아내는 딸보다 몇 시간 전에 음악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 아내는 신신당부했다.
"제발, 딸에게 오늘은 일반학교 교복을 입지 말고 음악학교로 오라고 해."
"왜?"
"지금까지 계속 일반학교, 음악학교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은 교복만 입으니까 별로 안 좋잖아."
"알았어."
오후 2시에 집에 와야 할 딸은 3시가 돼도 오지 않았다. 빨리 오라고 하자 그제서야 친구집에서 왔다. 1시간 후에 음악학교로 가야 했다. 지금껏 딸아이는 음악학교에 가는 날엔 교복을 벗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아무 말도 미리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 교복 말고 다른 옷을 입고 음악학교에 오라고 엄마가 말했어."
"알았어."
"그런데 평상복을 입지 말고 음악학교에 갈 옷을 입으면 더 좋잖아."
"아직 또 다시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해. 아빠, 걱정하지마."
30분이 지난 후 아파트 입구에서 숫자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우리 식구외에 아주 가까운 친척 둘뿐이다. 이 시간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내뿐이었다. 학생이 오지 않아 잠시 집으로 온 듯했다.
"딸아, 엄마가 온 것 같으니 현관문을 열어줘라."
자기 방에 있던 작은딸은 아무런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둘이서 서로 대화를 할 법한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손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손님은 다름아닌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딸이었다.
어제 늦은 밤까지만 해도 교환학생으로 갈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대해 아내와 함께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깜짝 출현이 제일 좋은 선물 그 자체였다. 작은딸은 이미 한 달 전에 언니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언니를 기다렸던 것이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그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인내심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벌써 음악학교에 갈 시간이다. 빨리 가야지."
"언니가 왔는데 어떻게 내가 학교에 갈 수가 있나? 아빠는 생각을 좀 해라. 노래 선생님에게 오늘 결석한다고 어제 쪽지 보냈어."
"뭐라고?"
"오늘 언니가 집에 오는데 갈 수가 없다고. 엄마를 놀래려고 하니 만약 엄마가 선생님에게 전화하면 내가 머리 아파서 수업에 못 온다고 꼭 전해달라고."
"그래?! 언니가 무슨 선물했니?"
"안 물어봤어. 안 물을 거야. 선물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난 언니를 사랑해."
"그래,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아내를 놀래는 일이다. 딸 둘은 엄마의 표정을 담기 위해 동영상 촬영을 위해 카메라까지 방에 설치했다. 큰딸이 부엌에 있을까, 아니면 작은딸 방에 있을까 둘이서 상의하더니 연출하기에 편한 작은딸 방을 선택했다. 퇴근해서 집에 막 도착한 엄마를 어떻게 제일 먼저 방으로 유인할 방법을 작은딸이 궁리했다.
엄마가 직장 동료인 노래 선생님에게 작은딸이 수업에 참가할 수 없다고 전화하자 선생님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드디어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맡은 일은 카메라를 작동하고 살짝 빠지는 것이었다. 작은딸이 현관문에서 엄마를 맞았다. 곧장 욕실에 가 손을 씻으려는 엄마를 가로막았다.
"엄마, 이제 내 머리가 안 아파. 그런데 내 방에 옷장이 넘어져 방이 엉망진창이야. 빨리 한번 보고 도와줘야 돼. 내가 할 수 없어."
이렇게 작은딸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기쁨의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돌이 되어 버렸다. 어젯밤까지 이번 짧은 방학에는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워서 빌뉴스 집으로 오지 못하겠다고 한 딸이 눈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기뻐서 그만 눈물까지 흘렸다.
언니 사랑에 푹 빠져 음악학교에 가지 않은 작은딸의 꾀병도 쉽게 이해가 되었고, 모두에게 순간 엔돌핀이 팍팍 치솟았다. 큰딸의 예고없는 깜짝 방문으로 끈끈한 가족애를 식구 모두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