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에 해당되는 글 253건

  1. 2012.08.06 초딩 딸 400컷 사진으로 만화영화 놀이 4
  2. 2012.07.20 10살 딸이 흥부전을 베껴쓰는 데 걸린 시간은? 5
  3. 2012.06.25 초딩 딸이 오븐으로 구운 과자 금방 동나 3
  4. 2012.06.24 상상력 부추기는 딸이 준 아버지 생신 카드 1
  5. 2012.05.07 지지 않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한 초딩 딸 1
  6. 2012.05.02 추억의 먹거리, 솜사탕이 소금맛이래 1
  7. 2012.04.25 교복 도입 반대하는 초딩 딸아이의 이유는 1
  8. 2012.04.20 초딩 딸의 첫 영어 시에 속물 냄새가 물씬? 1
  9. 2012.03.03 한복 입고 외국 TV 노래 경연하는 요가일래 33
  10. 2012.01.30 고무처럼 유연한 몸동작 흉내내는 초등 딸 5
  11. 2012.01.17 한글이 아주 예뻐 - 정말 행복해 3
  12. 2012.01.14 초딩딸 문자 본 아내 '마치 우리 부모님 같아' 5
  13. 2012.01.03 외국 사는 한국 아이들의 대야 속 가위 바위 보
  14. 2012.01.01 한 해 마감 달력에 그림 그리는 딸아이 2
  15. 2011.12.29 볼링놀이로 심심함을 달래는 딸아이
  16. 2011.12.28 강아지 인형에 목도리 뜨게질해준 초딩 딸 1
  17. 2011.12.19 공연 전날 짧은 한복으로 갈등에 빠진 우리 가족 7
  18. 2011.12.13 초딩4 딸아이 처음으로 자기 요리 해먹다 1
  19. 2011.12.02 달걀 후라이에 설탕을 뿌린 멍청한 아빠 2
  20. 2011.11.29 이제서야 깨달은 서양란 키우기 물 절약법
  21. 2011.11.28 짠내나는 훈제 소시지가 제일 맛있어 2
  22. 2011.11.25 크면 한국 여자들처럼 살고 싶다는 딸의 꿈 5
  23. 2011.11.23 힘자랑하는 듯한 딸아이 결국은 눈썰매 1
  24. 2011.11.19 0살에서 10살까지 150초 영상 딸에게 선물 29
  25. 2011.11.14 한국 모텔 입구에 쳐진 커튼에 의아한 딸아이
  26. 2011.10.30 10살 생일 선물을 미리 사달라는 딸의 까닭 4
  27. 2011.10.27 화장지에 화장지 이야기를 창작한 딸아이
  28. 2011.10.25 바느질하는 딸아이, 대견하면서도 섭섭 8
  29. 2011.10.22 쉿! 조용히 해! 내가 자고 있잖아! 2
  30. 2011.10.11 학교에서의 딸 전화에 먼저 가슴 쿵덩쿵덩 2
요가일래2012. 8. 6. 04:17

리투아니아 여름방학은 길고 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가 방학이다. 이렇게 긴 방학도 이제 한 달도 남겨놓지 않고 있다. 

방학 내내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지 말라", "컴퓨터 사용시간을 꼭 지켜라"라는 아내의 부탁 말이 매일 귀에 들린다. 딸아이가 컴퓨터를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이다. 대부분 딸아이는 한국에 잠시 가 있는 한국인 친구와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 대화를 하면서 같이 게임을 즐겨한다. 컴퓨터 외에 텔레비전을 두 시간 시청할 수 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딸아이는 책을 읽거나 인형 등을 가지고 논다. 어느 날 딸아이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부탁했다. 그리고 거실 문을 닫더니 혼자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나중에 부르겠다고 했다. 

딸아이가 식구들을 모두 불렀다. 딸아이는 카메라에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한 편의 만화영화를 보는 듯했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은 400여장이나 되었다. 한 동작 찍고, 인형을 옮기고, 또 한 동작 찍고 옮기기를 반복했다.   


딸아이는 카메라 메모리칩에 지우지 말고 보관하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재미난 사진 만화영화 놀이를 그냥 컴퓨터에만 사진으로 보관하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딸아이가 카메라에서 연속으로 보여준 사진 동영상을 직접 컴퓨터에서 작업을 해보았다.  
 

지루한 방학, 길고 긴 하루를 이렇게 400컷 사진을 찍어 만화영화를 만들어본 초딩 딸아이가 기특해보였다. 그렇다고 컴퓨터 사용시간을 세 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7. 20. 06:14

유럽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자라는 요가일래(10살)는 모태에서부터 아빠와는 철처히 한국어로만 말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말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한국어를 읽고 쓰는 능력도 점점 갖춰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당장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경에 살고 있지 않으므로 딸아이는 그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도 한국말을 읽고 쓸 수가 있어야 돼."
"아빠, 나 한국말 잘 하잖아. 필요없어."
"아니, 말하기가 아니라 읽기와 쓰기야."
"우리는 리투아니아에 살잖아."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 수도 있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공부하면 좋잖아." 
"해볼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이야기는 뭔데?"
"흥부와 놀부지."
"그렇다면 흥부와 놀부 책을 읽으면서 글자를 베껴써보자."
"알았어." 
"억지로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을 때 해. 끝내면 아빠가 선물을 줄게."
" 뭔데?"
"네가 미리 알아버리면 의욕이 사라지니까 말 안 할거야." 


이렇게 요가일래는 2012년 1월 16일 흥부전 책을 베껴쓰기를 시작했다. 딸아이가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느낄 때 가끔씩 흥부전 읽고 쓰기를 권했다. 정말 끝까지 해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요가일래는 마침내 6월 27일 "그 뒤로 놀부는 착한 사람이 되어 흥부와 오순도순 의좋게 살았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다 베껴썼다. 10살 딸아이가 처음 시작한 후 만 5개월이 지났다.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책 다섯 쪽 분량 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강요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룬 성과였다.

"아빠, 이렇게 다 써고나니 내가 한국어를 더 잘 하는 것 같아."
"그래. 바로 그런 자신감을 너에게 주는 거야.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책을 베껴쓰자."
"재미있네."
"무슨 책을 선택할까? "네가 좋아하는 신데렐라 책은 어때?"
"양이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해볼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6. 25. 10:47

며칠 전 집 안에 같이 있던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척이 없었다. 무엇을 하기에? 궁금했다. 얼마 후 부엌에 가보니 잠잠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열심히 과자를 오븐에서 굽는 일을 혼자 하고 있었다.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것도 대견한데 이렇게 직접 과자를 만들다니...... 아빠의 기쁨은 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딸아이가 굽은 과자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바삭바삭한 것이 아빠의 시원한 맥주 안주로도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2. 6. 24. 08:02

일전에 한 리투아니아인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탁자 위해 놓여있는 엽서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딸이 아버지 생신에 보낸 축하 카드라고 했다. 그런데 가운데 뚫려 있는 구멍으로 보이는 그림에 의하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 생신에는 적합하지 않는 듯한 축하 카드로 보였다. 대체 무슨 내용을 전하려고 이런 카드를 선물했을까 궁금했다. 첫 면을 넘겨보았다.


내용인즉 "이 생신 축하 카드가 확실히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건배해요!"

 
엉덩이가 얼굴 부위로 반전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에게 상상과 웃음을 주는 딸의 카드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5. 7. 09:11

우리나라는 어버이날이 5월 8일로 확정되어 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해마다 변한다. 부모 모두를 기념하는 날은 없고 어머니날과 아버지날로 분리되어 있다. 어머니날은 5월 첫째주 일요일, 아버지날은 6월 첫째주 일요일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10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다가왔다.

"아빠, 침실 열쇠 어디 있어?"
"침실 열쇠는 없는데. 왜?"
"내일이 어머니날인데 내가 선물을 몰래 준비할 거야. 엄마도 침실에 못들어오도록 해줘."

이렇게 요가일래는 저녁 내내 부모 방출입을 금지시키면서 무엇인가 만들고 있었다. 어제 일요일 딸아이책가방에서 숨겨놓은 선물을 꺼내 엄마에게 선물했다.

표지에서부터 벌써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선물일 것이라는 냄새가 풍겼다. 금빛 포장지로 아주 야무지게 포장을 했다. 과연 무엇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혹시 빛좋은 개살구는 아닐까......'


파손이 쉽게 되지 않도록 비닐포장지로 한 번 더 쌌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선물은 예쁜 장미꽃 한 송이였다. 


아내도 감동먹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내 자신도 감동먹었다. 곧 시들어버릴 생생한 장미꽃보다도 영원히 지지 않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한 딸아이가 기특했다. 아버지날 딸아이는 어떤 선물을 준비할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5. 2. 06:33

5월 1일은 국제 근로자의 날(노동절)이다. 이날은 리투아니아도 공휴일이다. 과거 소련 시대 이날은 가장 성대한 공휴일 중 하나였다. 모든 노동자들이 시내 광장에 모여 웅장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 현지인 친구와 '노동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에서 일일이 참가를 확인했고, 이날 참가하지 않았다면 승진나 대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라고 친구가 당시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저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는 날로 여긴다. 학교가지 않은 날이라 초등 4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는 한국인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서 놀 것이 없었는지 느닷없이 산책을 가자고 했다.

"아빠, 우리 빙기스 공원에 놀러가자."

평소에는 아빠가 가자고 해도 잘 응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가자고 하니 당연히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 일어섰다.

"그런데 아빠가 꼭 지갑을 가지고 가야돼!"
"왜?"
"우리에게 솜사탕 사줘!"
 
평소에 있어야 할 자리에 솜사탕 가게가 없었다.

"우리가 괜히 공원에 왔네."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다른 자리에 솜사탕 가게가 발견했다. 솜사탕을 먹으려고 40분을 걸어왔으니 그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 누구나 어렸을 때 유원지나 학교 앞에서 사먹곤 했던 먹거리 중 하나가 솜사탕이다. 추억의 먹거리이다. 솜처럼 생긴 것을 손으로 뜯어 입에 넣자마자 달콤하게 사르르 녹아버리는 솜사탕!!!
 

아빠와 40년 격차를 둔 요가일래도 이 솜사탕 맛에 푹 빠져 있다. 

"솜싸탕 맛있어?"
"맛있어!"
"무슨 맛이야?"
"소금맛!!!"

소금이 맛있다고 부모 몰래 먹어오던 딸에게 솜사탕은 소금만큼이나 정말 맛있을 것 같다. 물론 순간적으로 설탕과 소금을 혼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혀만 통과하면 소금이든 설탕이든 위에게는 아무런 맛도 아닐 것이다. 솜사탕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40년 전 옛 시절이 떠올랐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4. 25. 05:45

이번주 우리집 식탁의 대화 중 하나가 교복이었다. 학교가 학부모에게 보내온 질문지 때문이었다. 

1) 바사나비츄스 중학교에 교복 도입을 동의합니까?
    예, 학교 홈페이지에 제시된 교복을 2012년 9월 1일부터 도입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도입에는 동의하지만, 제시된 교복에 동의하지 않거나 2012년 9월 1일부터 도입에는 반대합니다.
    아니요, 가까운 년도에 교복을 도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2) 선택한 핵심적인 이유를 적으세요. 
3) 자녀의 학급을 적으세요.
4) 부모님 이름을 적으세요.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리투아니아 학제는 초등학교 4학년, 중등학교 4학년, 고등학교 4학년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마치고 오는 9월부터 중학교에서 입학하게 된다. 중학교는 학교의 얼굴인 모든 학생이 똑바르고 단정하도록 교복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 학교가 도입하고자 하는 교복 시안: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리투아니아는 학교가 교복 도입을 스스로 결정한다. 근래에 들어와 교복을 도입하는 학교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다녔다. 교복과 자유복 둘 다 장단점이 있겠다.

"너희 반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찬성하는 아이도 있고, 반대하는 아이도 있어." 

딸아이가 전해준 한 아이의 부정적인 반응이다.
'교복을 도입하면 우리 집은 부도나. 우리 집은 50만원밖에 없는데 내 교복 사느라 10만원, 언니 교복 사느라 10만원! 정말 우리 집은 부도야!'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교복 도입을 반대해."
"왜?"
"모두가 다 똑 같으면 재미 없잖아. 그리고 '와, 너 정말 예쁜 옷을 입었네'라는 말을 친구에게 해줄 수가 없잖아!"

"그럼,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지금까지 했던 대로 했으면 좋겠다. 교복이 있으면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교 갈 때마다 네가 직접 옷을 고른다면 옷과 색깔에 대한 선별력을 키울 수도 있고, 또한 옷을 통한 자기표현력도 키울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둘 다 좋은데 다수결에 따르고 싶다."
"아빠도 반대, 나도 반대. 우리 집은 반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4. 20. 05:10

딸아이 요가일래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리투아니아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외국어를 가르친다. 대부분 외국어로 영어를 선택한다. 요가일래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 만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틀어주었다. 그 덕분에 요가일래는 교과목에서 영어를 제일 좋아한다. 

며칠 전 딸아이는 자신이 직접 지은 영어 시라면 종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were를 wore로 잘못 표기했지만 나름대로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리투아니아어 시가 운을 중시하기 때문에 영어로 쓴 첫 시에 운()을 찾느라 고생했을 법했다.
mine - side
pounds - sounds
money - honey

"아빠, 건데 이 시는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쓴 시야!"
"그런데 pound는 무슨 뜻이지? pound는 영국 돈이잖아."
"여기서 pound는 심장이 쿵쿵거리는 거야."
"정말? 아빠가 인터넷 사전을 찾아봐야겠다." 

I thought you were mine, 
But you weren’t my side… 

My heart just pounds, 
When your voice sounds… 

I’ll give you all my money, 
If you will be my honey…

직역하면 이렇다.

네가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내 편이 아니였어

너 목소리가 날 때
내 심장은 두근거려

네가 내 자기가 되어준다면
내 돈을 다 네게 줄게

아무리 남자라 생각하고 시을 지었다고 하지만 세속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 돈에 혹할 수 있는 여자......

너무 일찍 속물적인 가치관으로 10살 딸아이가 빠져들어간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불러 대화를 해보았다.

"만약 남자가 돈을 다 주면 네가 그 남자를 좋아할 거야?"
"좋지. 하지만 먼저 마음에 와닿아야지."
"그런데 왜 시에는 '네가 내 자기가 되어준다면 내 돈을 다 네게 줄게'라고 했니?"
"honey에 맞는 단어를 찾다보니까 money가 됐어."
"이잉~~~ 뭐라꼬!!!"

딸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가치관을 들먹이면서 심각하게 딸아이의 시를 분석하려고 한 내 자신이 우스워보였다. 기회 되면 딸아이에게 시집을 사서 선물해야겠다. 

* 한복 입고 외국 TV 노래 경연하는 요가일래 응원 투표하기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3. 3. 08:16

"한국 동요 노을 리투아니아 전국 대회 본선행" 글에서 요가일래(10살)가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TV 노래 경연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한국 노래 노을을 본선 노래로 지정했지만,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후 리투아니아 노래 "Boruž,boružėle"(무당벌레)를 최종적으로 지정해주었다. 아쉬웠지만,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노래 대회이니 시청자들에게 전혀 생소한 한국어 노래보다는 리투아니아어 노래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점에는 충분히 이해된다.

노을 노래면 색동 한복이 딱 어울릴 것 같아서 때 마침 지인을 통해서 색동 한복을 구했다. 하지만 최종 지정곡이 바뀌자 의상이 이젠 제일 고민이었다. "어떤 드레스를 무대복으로 입혀야 하나?"를 두고 아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인들의 조언을 얻어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럽식 드레스를 서너 벌 준비했다.

경연일을 며칠 앞두고 친척 한 사람이 리투아니아에서 아주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의 조언을 얻어보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사례할 지가 걱정이었지만,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TV 출연 꿈을 이룬 딸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자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드레스와 한복을 함께 가져갔다. 두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고민거리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뭐라고 조언했나?"
"한복이 최고다고 했어."
"왜 그렇게 생각해?"
"'본선에 올라온 참가자들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실력은 다 엇비슷하다. 뭔가 독특한 것으로 시청자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요가일래에게는 한복이 적격이다.'라고 말했어. 요가일래에게 '너의 무당벌레는 한복을 통해서 한국에서 리투아니아로 온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주었어."
"우와~ 정말 대단한 디자이너네."


이렇게 해서 비록 리투아니아 노래를 부르지만 한복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2월 26일 방송 촬영(3월 3일 현지 시각 오후 2시 방영)에서 요가일래가 노래를 다 부르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데 사회자가 달려와 대본없이 즉흥 인터뷰를 했다.

"여기 무당벌레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비만 보이네요. 입고 있는 이 아름다운 옷에 대해 말해주세요."
"이 치마는 한국의 전통 치마입니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몰라요. 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한국은 멋진 나라예요. 리투아니아보다 더 따뜻하고,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매년 한국에 가요."
"언제 저도 초대해주세요."
"물론이지요."
"약속은 약속입니다. 감사합니다." 


* TV 방송 스튜디오에서 촬영

이렇게 한복 덕분에 인터뷰를 통해서 리투아니아 전국에 한복과 한국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2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생방송으로 5월 중순까지 본선 TV 노래 경연 대회가 열린다. 심사위원들은 매회 참가자를 평가해 최종적으로 입상자를 선발한다. 이들은 리투아니아 오페라 대극장에서 최종 노래 공연을 한다. 이 공연에는 심사위원들이 뽑은 참가자들과 리투아니아 국내외 누리꾼들로부터 가장 많은 투표를 얻은 사람 1명이 참가한다.

* 결과: 아쉽게도 요가일래는 이번 행사에 최종 입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2년 후에 다시 열린 행사에 또 도전해야겠지요. 그 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 30. 06:30

1월 15일 "리투아니아 재능꾼 2011"을 선발하는 최종전이 열렸다. 올해가 세 번째이다. 영예의 1등은 성악을 부른 마리뉴스 페트라우스카스가 차지했다. 1등 상금은 만유로(약 천5백만원)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가장 응원한 곡예사 루타 키베리테는 아쉽게도 3등에 거쳤다. 

고무처럼 유연한 몸동작으로 해보인 루타는 두 발로 화살로 쏘아 풍선을 터트리리는 인상적인 묘기를 펼쳐보였다. 

루타의 묘기를 본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자신도 뭔가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딸아이의 유연한 몸동작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누가 가르쳐주었니?"
"아니."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있니?"
"그냥 할 수 있지 뭐."



혹시나 다리가 아프다고 할까봐 우리 부부는 묘기를 보이는 딸아이에게 "안 돼! 그만 해!"를 외쳤다.
 
* 최근글: CNN 사이트에 소개된 한국의 절경지 50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 17. 07:47

지난 일요일 갑자기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가 새로운 공책을 가지고 아빠에게 다가왔다.

"아빠, 우리 한글 공부하자!"
"좋지~~~"
"무엇을 쓸까? 한글 철자를 한번 쓰보자. 아빠가 ㄱ, ㄴ, 아, 야를 쓰면 내가 다 만들어볼게." 

딸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하고는 항상 한국어만 사용한다.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읽고 쓰는 데에는 많이 서툴다. 

언어교육에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 쵀대한 도와주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고 있다.

어제 월요일 딸아이는 하루 종일 바쁘게 보냈다. 학교에서 3교시 수업만 마치고 조퇴했다. 발레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잠자기 전 "아참, 오늘 한글 공부을 잊었네."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 무엇을 하면 될까?"
"네가 좋아하는 한국 동화가 뭐지?"
"그야 흥부와 놀부 이야기지."
"그럼, 흥부와 놀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쓰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네."

이렇게 딸아이는 책쓰기를 시작했다. 

"아빠, 오늘은 피곤하니까. 한 줄만 쓰고 잘게."
"그래라."

▲ 자발적으로 한글 읽기와 쓰기 공부를 시작한 딸아이 글씨   

얼마 후 딸아이는 아빠 방으로 왔다.

"아빠, 한글이 아주 예뻐. 그리고 아빠가 한국인이라서 내가 정말 정말 행복해. 내가 한국말을 공부하니까 아빠도 행복하지?"
"그럼, 아빠도 하늘만큼 행복하다."
"그런데 엄마에겐 말하지 마!" 
(아빠 나라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 리투아니아인 엄마가 듣기에 거북할 것 같다고 딸아이가 지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전혀 그러하지 않은데 말이다.) 

아직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딸아이가 정말 흥부와 놀부 책을 끝까지 베껴 쓴다면 깜짝 선물을 주어야겠다.

* 최근글: CNN 사이트에 소개된 한국의 절경지 50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 14. 06:54

연초를 맞아 12일 저녁 리투아니아 현지인 에스페란토 사용자들과 모임이 있었다. 한 겨울인데 굵은 비가 쭈룩쭈룩 내렸다. 두꺼운 옷만 아니였다면 쉽게 여름으로 착각시킬 날씨였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정말 모처럼 만나고 또한 모임 활성화를 위해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달갑지 날씨에도 가기로 아내와 같이 결정했다. 일반적인 모임이 다 그렇듯이 각자 마실 술과 먹을 음식을 가져왔다. 둘러앉은 책상 위에 놓으니 제법 먹고 마실 만한 양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어둡고 비내리는 밤 혼자 집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간간히 떠올랐다. 그래서 아내는 불안하지 않고 잘 있는지 문자쪽지를 보냈다.

 
딸애: "숙제하고 있어."
아내: "(숙제가) 어려우면 연필로 해" (즉 아내가 돌아와 정답이면 연필 위에 만년필로 쓸 수 있도록)
딸애: "그렇게 하고 있어. 어렵지 않지만 (연필로 쓰고 있어). (내 걱정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올 때 조심만 해. 아주 심하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가 이 문자쪽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요가일래가 마치 우리 부모인 것처럼 쪽지를 보냈어."
"정말이네. 우리가 요가일래의 부모인지 아니면 요가일래의 자식인지 헷갈리네."

옛날 같으면 무서워서 혼자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생떼를 부렸을 법하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밤에 외출한 부모가 돌아올 때 조심하라고 문자쪽지까지 보낼 정도로 훌쩍 커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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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2. 1. 3. 06:45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지인의 가족이 연말 휴가를 맞아 빌뉴스 우리 집을 방문했다. 초등학생 4학년 딸아이 요가일래와 비슷한 또래 아이가 있어 요가일래가 무척 즐겨워하고 있다.
 

▲ 연말을 맞아 서로 만난 세 아이들
 
 
새해 첫날 낮에 또래 여자 아이 셋이서 인근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영상 1도의 날씨였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포근한 겨울 날씨이다. 하지만 이들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장갑을 낀 손이 추위로 따끔따끔하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미지근한 물을 대야에 받아서 손을 담그고 있어라고 했다. 조금 후 욕실에서 "가위 바위 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을 담그고 있어라고 했는대 대체 이들이 무엇을 하기에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이팟을 켜고 욕실로 들어가보았다. 


아이들은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렇게 무엇인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이 "가위 바위 보" 노래를 부르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이 기특해보었다.

비록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을 잊지 말고 지금처럼 그대로 살아가길 이들에게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1. 1. 08:01

12월 31일 낮 내 방 소파에 2012년 달력이 놓여있었다. 하루 종일 아내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이렇게 새해를 맞는다]

"이 달력이 왜 여기 있지?"라고 아내가 물었다.
"내가 안그랬는데. 요가일래가 했는 것 같은데."

며칠 전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2012년 한국 달력은 없어?"
"아직 아무한테서 받지 못했는데."

딸아이는 이렇게 한 해 마감으로 집안에 걸려있는 2011년 달력을 떼어냈다. 

"이 달력 버릴까?"라고 아내가 물었다.
"아까운데."
"그러면 뭐하는 데 사용하지?"
"포장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말했지만 포장지 용도로는 좀 궁색하다. 그 옛날 특별한 포장지가 없었을 때 달력은 유용했겠지만 이 달력 포장지를 요즈음 전용 포장지에 견줄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지난해 달력을 딱지나 책보호지로 많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요가일래, 지난해 달력을 쓰레기통에 버릴까? 아니면 네가 무엇으로 사용할래?"
"버리지 말고 그냥 놓둬. 내게 생각이 있어."

조금 후 딸아이는 물감으로 그림그리기 완벽한 준비를 하고 나타냈다. 달력의 마지막장인 12월을 뜯어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림그리기 놀이를 했다. 


버릴 달력 이면지에 딸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딸아이가 잠시나마 정성을 쏟아 그림을 그렸으니 이젠 이 이면지를 함부로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딸아이는 지난해 달력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셈이다.

지난해 "초유스의 동유럽"을 방문하시고 성원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용의 해 2012년을 맞아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한 한 해로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 최근글: 수도꼭지에 끼어놓은 이 고무마개의 정체는?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2. 29. 08:00

유럽 학교는 겨울방학이 따로 없다. 대신 여름방학이 거의 3개월이다. 일반적인 겨울방학 대신 짧은 방학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맞은 방학이다.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12월 22일에서 1월 8일까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제 겨우 일주일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딸아이는 몹시 심심해한다. 비록 하루 4-5시간 수업을 받지만 학교가 아이들의 생활에 차지는 몫이 얼마나 큰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사나 학부모나 사회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하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어젯밤 심심함을 못이긴 딸아이는 집안에 있는 모든 플라스틱병을 모아서 볼링놀이를 했다.


이참에 볼링장에 가족나들이를 가볼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는 않을 듯하다. 아내도 나도 볼링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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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12. 28. 10:36

이번 크리스마스에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언니 남자친구로부터 작은 강아지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어제 딸아이는 많은 시간을 이 강아지 인형하고 놀았다. 저녁이 되자 딸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엄마한테 뜨게질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너 지금 뭐하니?"
"목도리 만들고 있어."
"누구 줄려고?"
"강아지 인형에게 입힐려고."
"우와~ 강아지 인형이 아빠보다 낫네. 나한테 한번 뜨게질해줘봐..."
"아빠는 크니까 만들기가 어렵지."
 

이렇게 딸아이는 두 시간 정도 뜨게질에 정성을 쏟아서 목도리를 완성했다. 꾹 참고 한올한올 뜨게질하는 초딩 딸아이가 대견스러워보였다.
 

딸아이가 뜨게질한 목도리를 입고 있는 강아지를 보니 비록 무정물(無情物)이지만 참 행복해보였다. 이렇게 뜨게질 실력을 쌓고 쌓아 크면 아빠에게도 뜨게질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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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12. 19. 07:45

연말이다. 한국에서는 망년 모임으로 바쁘게 보낼 것 같다. 주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학교 교사인 아내와 음악학교에서 다니는 딸아이 요가일래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일년 중 12월이 제일 바쁘다. 연주회와 공연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음악학교 1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음악회가 열렸다. 전공별로 엄선해서 악기 연주와 노래 공연이 있었다. 개인과 단체 모두 26개 팀이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합창단, 앙상블, 개인으로 세 차례나 출연했다. 출연마다 의상이 달랐다. 합창단과 앙상블은 단체이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 Itsy Bitsy Teenie Weenie Yellow Polka Dot Bikini 

이번 음악회 주제는 크리스마스를 기해 각국의 노래나 연주곡으로 떠나보는 세계 여행이었다. 출연자는 그 나라 음악에 맞는 의상을 입었다. 요가일래는 말할 필요없이 한국을 맡았다. 노래는 동요 "노을"이었고, 특히 이번 반주는 피아노가 아니라 리투아니아 전통 악기 캉클레스가 맡기로 했다.

한국 노래에 리투아니아 악기 반주라 사람들이 벌써부터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의상이다. 분위기상 한복이 적격이다. 그런데 딱 맞는 한복이 없다. 지난 5월 개량 한복을 입고 "노을"을 부른 적이 있었다[관련글: 유럽 중앙에 울려퍼진 한국 동요 - 노을]. 그때도 옷이 작아서 입힐까 말까 크게 고민했다. 다행히 소매 길이는 아직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이번에는 일단 이 개량 한복을 제외시켰다. 지인의 딸이 입었던 한복이 떠올랐다. 하지만 커버린 요가일래에게 소매도 짧고, 치마도 짧았다. 이 옷을 입은 요가일래의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릴 경우 악성댓글이 나올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 리투아니아 전통악기 캉클레스 반주에 따라 한국 노래 "노을"을 부르는 요가일래 

"이번엔 한복 말고 다른 옷을 입히는 것이 좋겠다."
"안돼. 반주가 리투아니아 전통 악기라 사람들이 한국적인 옷을 훨씬 더 기대할 거야."
"그런데 옷이 작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소매를 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옷 수선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아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한복을 입히고자 했다. 그런데 아내도 다른 연주회를 준비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공연 전날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소매 끝자락을 뜯었다. 그렇더니 소매가 더 길어졌다.

"어때?"
"길어졌지만 소매 밖에 그려진 꽃무늬가 소매 안으로 들어가버렸잖아. 안 예뻐!"
"사람들이 멀리서 보는 데 알아채지 못할 거야.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소매가 짧다고 해서 소매를 길게 했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나?"
라며 아내가 언성을 높였다.

옆에 있던 딸 마르티나가 의견을 말했다.
"한국 사람들한테는 확실하게 소매도 짧고, 치마도 짧게 보이지만 한복을 처음 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것이 오히려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일 거야. 무엇보다도 한복이니 시선을 잡을 거야. 있는 그대로 입히는 것이 지금은 최선이다."

이 의견에 우리 가족 모두는 수긍했고, 아내는 뜯어낸 소매를 다시 원위치로 깁어야 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반드시 한복 한 벌 사!""
"금새 커버리는 데 소용이 있을까......"


옷을 세 차례나 갈아입는 수고를 했지만 이날 요가일래 한국 노래 공연은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기꺼이 딸아이를 좋아하는 피자집으로 데려갔다.


아내 왈: "요가일래 선생님이 다음에는 한국 민요을 부탁했어. 각 민족 노래 시합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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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12. 13. 08:20

지난 주말을 기해 초등 4학년생 딸아이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가 생겼다. 일요일 부엌에 가니 딸아이가 감자를 깍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 불안했다. 언제 날카로운 칼날이 감자가 아니라 딸아이의 손가락으로 향할 지 심히 걱정되었다.

"아빠가 해줄까?"
"아니야. 이제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꼭 해야 돼. 친구들은 벌써 직접 요리할 수 있다고 말했어."

분위기를 살피니 도움을 받아드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 손가락 다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
"알았어."

얼마 후 다시 부엌에 가니 이제는 감자를 직접 후라이팬에 굽고 있었다. 그리고 우유와 함게 맛있게 감자을 먹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음식을 달라고 늘 요구하던 딸아이가 이렇게 난생 처음 감자를 혼자 직접 요리해서 먹기 시작했다. 딸 개인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이제야 부모의 요리 의무가 조금씩 줄어들게 되는구나......

어제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녁 무렵 노래공연을 다녀온 후 딸아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물었다.

"아빠, 달걀 후라이 먹고 싶어?"
"물론이지. 너도 먹고 싶으면 아빠가 해줄게."
"아니야. 아빠는 계속 일하고 있어."
"뭐, 네가 하겠다고?"
"당연하지."
"정말 할 수 있어?"
"한번 봐!!!"

딸아이는 달걀 후라이에 생오이를 반듯하게 짤라서 저녁을 차려주었다. 혼자 자기 음식을 해먹는 것조차 기특한데 이렇게 아빠에게 음식까지 해주니 그야말로 감동 자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 "우리 딸 언제 클까?"를 주문처럼 외우던 때가 떠오른다. 이제 조금씩 양육의 짐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앞으로 딸아이의 요리 메뉴가 더욱 다양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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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1. 12. 2. 08:41

아내가 교사이다. 일단 외견으로 보면 한국의 교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하다. 더군다나 일반학교 교사가 아니라 음악학교 교사이다. 자기 수업 시간이 있을 때만 학교에 간다. 수업 학생수는 단 한 명뿐이다. 학생들이 일반학교를 마치고 음악학교로 오기 때문에 오전엔 늘 수업이 없다. 

수업도 월, 수, 목요일로 배정해 놓아서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수업이 아예 없다. 물론 학생들의 연주회가 있는 시기에는 바쁘다. 수당은 없지만 학생들을 과외로 가르친다. 딸아이도 음악학교를 다닌다. 보통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을 챙겨서 같이 먹고 함께 학교에 간다. 

하지만 어제는 일이 생겼다. 딸아이가 감기증세로 이틀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 학교에 갔는데 정기수업 후 혼자 과외수업을 받았다. 평소보다 늦게 오게 되어 아내가 먼저 직장으로 가야 했다. 

이렇게 어제 점심 차리기는 아빠 몫으로 남겨되었다. 딸아이도 곧장 음악학교로 가야 하므로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메뉴는 달걀 후라이로 정했다. 딸아이는 까다로운 식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요리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습관대로 가스불 근처에 있는 소금통으로 손을 넣어 달걀에 소금을 적절히 뿌렸다. 손가락으로 잡은 소금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흔히 쓰는 소금이 아니였다. 그래서 아직 남아있는 한국 맛소금이라 믿었다. 이렇게 달걀 후라이가 완성되었다.

"자, 음식 준비 완료! 빨리 먹고 학교에 가!"
"알았어."

부엌으로 온 딸아이는 달걀 후라이 한 조각을 입을 대는 순간 외쳤다.

"아빠, 달걀이 왜 이렇게 달아? 나 안먹어."

아뿔사, 내가 맛소금이라 여겼던 소금이 소금이 아니라 설탕이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해바라기 씨앗을 까먹었다. 내가 부엌에 없는 찰나에 딸아이는 해바라기 씨앗을 소금에 찍어먹기 위해 소금통을 요리대에서 식탁으로 옮겨놓았다. 이것을 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배고프잖아. 달걀 후라이 다시 해줄까?"
"시간이 없잖아!"

간식 과자를 재빨리 챙겨 딸아이 가방에 넣어주었다.

"엄마에겐 말하지마! 멍청한 아빠를 더 멍청하게 여길 거야. 그리고 정말 미안해."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11. 29. 07:00

숫자 32
이는 우리 집 아파트 실내에서 키우고 있는 화초 수이다. 화초 가꾸기는 오랜 전부터 남편인 내가 맡아왔다. 물주기부터 분갈이까지 모두 맡아서 한다. 가끔 생일 선물로 서양란을 받는다. 이렇게 모인 서양란이 다섯이다. 서양란은 꽃이 납이를 닮았다고 해서 호접란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은 자주 주지 않는다. 밖에서 흔히 보이는 뿌리가 말라있다고 확인하면 물을 준다. 여름에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준다. 수도관을 틀어놓고 흐르는 물로 흠뻑 뿌리를 적셔준다. 이러게 몇 년째 서양란에 물을 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어느날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었다. 이날따라 이 물을 버리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3차례 씻은 물을 모으니 대야가 한 가득이었다. 화초 물주기에 사용했다. 

잠시 후 서양란 물주기를 했다. 아까처럼 물절약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아주 단순했다.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서양란 화분을 대야에 담궜다. 잎으로 물을 뿌리면서 뿌리까지 자연스럽게 적셨다. 이렇게 처음 담은 대야물로 서양란 화분 다섯 개에 물을 주었다. 남은 물은 다른 화초에 물을 주는 데 사용했다.  


서양란을 가꾼 지 여러 해가 되지만 이렇게 물을 거의 한 방울을 하수구로 내보지 않고 물주기는 처음이었다. "왜 내가 그 동안 이것을 몰랐을까?"라고 물절약에 너무나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자 "참 바보였구나!"라고 자신을 책망해보았다. 물론 흐르는 물로 난에게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만 10살 딸에게 이 역사적인 첫 (서양란 물절약) 깨달음을 기록에 남겨달라고 촬영을 부탁했다. 찍으면서 딸아이도 아빠의 물절약을 직접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1. 28. 06:42

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3주 동안 한국을 다녀왔다. 한국 가기 전 딸아이는 한국 음식을 먹을 기대에 부풀러 있었다. 
"한국에 가면 뭘 먹고싶어?"
"삼겹살, 불고기, 미역국, 김밥, 김치밥, 소면, 라면, 밤, 대추, 배......"
"그래도 모르니 리투아니아 음식 조금 가져가자. 뭘 가져갈까?"
"훈제 소시지 가져가자."  

첫날 지인의 초대를 받아 삼계탕을 먹었다. 부드러운 닭고기를 소금에 찍어 몇 점 먹어보더니 딸아이는 더 이상 먹지를 않았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것을 더 이상 안 먹다니...."
"아빠, 난 김치밥이면충분해." (여기서 김치밥이란 김치를 밥에 발린 음식을 말한다.) 


3년만에 방문하지만 딸아이가 이제 컸으니 한국 음식을 더 잘 먹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고기와 과일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음식 맛보기에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아빠, 훈제 소시지 좀 구해줘!"
"한국에서 파는 빵도 네 입에 안맞다고 안먹는데 어떻게 훈제 소시지를 네가 좋아할 수 있겠니?"
"그러면 리투아니아 있는 엄마한테 부탁해 보내달라고 하면 되잖아."
"소시지가 도착할 때면 우린 벌써 리투아니아 집에 있을 거야."

한국 도착 후 첫날은 아직 남은 리투아니아 훈제 소시지가 영양 보충을 잘 해주었다.

"아빠, 훈제 소시지가 최고로 맛있다!"
"짠내나는 훈제 소시지가 그렇게 맛있어?"
"당연하지. 아빠가 냄새나는 김치를 좋아하듯이 난 훈제 소시지를 제일 좋아해." 


빌뉴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헬싱키 공항에서 딸아이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공항에 나올 때 훈제 소시지 꼭 가져와!"
"훈제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았어. 훈제 소시지는 내일 먹어."
"안돼.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훈제 소시지란 말이야!"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1. 25. 06:16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태어난 딸아이(만 10살)는 누가 언제 묻더라도 대답은 동일하다. "나는 한국인 사람이자 리투아니아 사람이다." 생활 근거지가 리투아니아라 한국을 접할 수 있는 주된 창구는 아빠이다. 딸아이를 지켜보니 한국에 관해서 아빠가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은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전에 아빠와 둘이서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낀 첫 소감을 엄마에게 말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엄마, 내가 아빠에게 정말 솔직하게 한국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어."

지하철이나 거리나 사람들이 북적대서 불편함을 느낀 딸아이의 인상이었다. 아빠에게 "한국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는 "정말 솔직하게"라는 표현을 붙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전 부엌에서 두 모녀가 아침을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아내가 전해주었다.

"엄마, 내가 크면 한국 여자들처럼 살고 싶어."
"어떤 점이 좋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데?"

"한국 여자들은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 있잖아."
"그럼 죽을 때까지 누가 먹어살리나?"

"남편이지."
"남편이 먼저 돌아가면 어떻하지?"

"그러게."
"남편이 아내보다 더 늦게 돌아가도록 신(神)과 계약할 필요가 있겠다."

"엄마, 신과 어떻게 그런 계약을 할 수 있어?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이지."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지?"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살다보면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지."

"그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 그냥 나도 크면 엄마처럼 일하고 살아야겠다."
"그래. 그게 정답이야!"
 
이 대화를 전한 아내에게 말했다.
"일하는 한국 여자들도 많이 있다고 당신이 딸아이의 생각을 고쳐주었어야지."
"아마 주변 한국 여자들과 한국에서 만난 여자들이 집에 있는 것을 보고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아."

▲ 얼마 전 덕숭궁에 찍은 사진. 꿈을 그리는 모습이라면서 딸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여자, 엄마를 비롯해 음악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여자인 환경 속에서 딸아이가 배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하지 않고 사는 것으로 딸에게 비친 한국 여자들이 부러움으로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일생을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딸의 이런 꿈은 신(神)과의 계약, 부자 남자 만나기 등의 엄마 주장에 부서지고 말았다.

딸아, 부모 의지, 남편 의지 그리고 자녀 의지에 벗어나 꼭 자립하는 여자로 살기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1. 23. 06:37

아이를 키우다보면 힘든 순간도 있고, 즐거운 순간도 있다. 특히 나름대로 재미난 표정을 짓을 땐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를 찾아보지만 가까이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 만 10살이 된 딸아이를 위해 사진을 정리해보았다.

태어난 지 15개월이 된 어느 겨울 날이었다. 밖에는 눈이 엄청 쌓여있었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을 때라 아빠가 상상으로 당시 상황을 고려해 말풍선을 달아보았다.
 

차를 밀고자 만용을 부렸던 딸아이는 이렇게 아빠가 끄는 눈썰매를 타고 산책에 나섰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1. 19. 10:52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10년 주기의 생일을 중시하고 성대히 치른다. 물론 아이들은 매년 오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유는 선물과 북쩍거리는 잔치 분위기 때문이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11월 5일 만 10살이 되었다. 리투아니아가 아니라 한국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당시 엄마는 리투아니아 집에 있었고, 아빠는 서울에서 연수 중이라 제대로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다. 

딸아이는 미리 생일 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탁했다[관련글: 10살 생일 선물을 미리 사달라는 딸의 까닭]. 집에 있는 캠코더와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 기능 휴대폰 등을 장황하게 열거하면서 이 선물이 적합하지 않음을 내심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만 10살이니 사진 찍히기보다는 사진 찍기를 더 좋아할 나이에 이른 것 같았다. 주저했지만 결국 딸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사주었다.

▲ 얼마 전 덕숭궁에 찍은 사진. 꿈을 그리는 모습이라면서 딸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11월 8일 한국에서 빌뉴스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시차 적응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해오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서 찍은 1000여장의 사진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생애 첫 10주년을 맞은 딸에게 디지털 카메라 한 대만 달랑 선물한 것은 웬지 허전해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찍은 딸아이의 사진을 정리해서 동영상을 만들어 선물하면 어떨까?

디지털 카메라로 출생에서 10살이 되기까지 쭉 찍은 딸아이의 사진이 5000여장이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이 많은 사진들 중 딸아이의 성장 과정을 잘 나타내주는 사진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연도로 분류하고 각 연도마다 사진 30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당신, 소중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약속한 번역일을 해야지. 지금 제 정신이야."
"오늘이면 사진 정리를 다 끝낼 수 있을 같아."


이렇게 오늘1주일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아내의 질책에 귀를 막고 고집을 부리면서 해냈다. 동영상 속 배경 음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되었다. 딸아이가 부른 저작권이 없는 리투아니아 민요를 넣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썩 어울리지가 않았다.

아빠가 딸에게 정성을 쏟아 만들어주는 선물인데 엄마가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는 않겠지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아내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10년간 엄선된 사진을 모아 만든 동영상을 아내가 보더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감동을 받은 듯했다. 잠시 후 피아노로 가서 요가일래를 위해 지은 자신의 옛날 곡을 치기 시작했다. 동영상에 맞춰서 즉석 편곡을 해보았다. 아내는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면서 손을 내저었지만, 배경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dlfjg부모 합작 선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캠코더로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하고 있는 동안 딸아이는 아빠가 정리한 사진을 혼자 보고 싶어했다. 녹음을 마치고 내 책상으로 돌아와보니 사진을 보고 있었야 할 딸이 없었다. 방으로 가니 딸아이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우니?"
"이제 더 자라고 싶지 않아. 사진을 보니 어린 시절이 아주 좋았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울지마. 자라도 재미나고 좋은 일들이 더 많이 너를 기다릴 거야."


10살 딸아이가 동영상을 보더니 행복하고 아름다운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음에 울게 되었다. 딸에게 기쁨을 주고자 만든 동영상이 오히려 울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언젠가 330장으로 된 10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행복감을 느낄 것으로 믿는다. 딸아이는 지금 곤히 잠자고 있다.


"딸아, 첫 10년의 삶은 이렇게 아빠가 정리해주었으니 앞으로 이어서 올 매 10년은 네가 정리하길 바란다. 아빠가 지어준 네 이름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해가 되어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1. 14. 07:26

등급이 있는 유럽 호텔에 가끔 가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있다. "한국 모텔 수준보다 못하네!"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핀에어(finnair)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니 아침 8시경이었다. 시차로 인해 비행 중에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마치 날밤새고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피곤한 딸아이를 먼저 서울 중심가 한 유스텔에 전화를 해 예약 가능성을 물었다. 기대와는 달리 전혀 예약이 다 되었다라는 답을 들었다. 일단 서울 남대문 부근에 카메라 수리를 맡기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자 딸아이는 곧장 아무 호텔이나 가자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오후 1시경 9층 모텔에 들어가보았다. 대낮인데 방이 없다고 했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인근에 또 다른 모텔이 있었다. 할머니가 접수를 맡고 있었다. 딸아이를 보더니 손녀 나이와 비슷하다면서 호의적이었다. 이 말을 들이니 방이 있겠지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 한국 모텔방에 아늑하다면서 좋아하는 딸아이
 

무거운 짐 때문에 딸아이는 어쩔 수 없이 승강기를 이용해 제일 꼭대기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밀폐된 승강기를 타는 것을 딸아이는 싫어한다. 산책갔다고 돌아오는 길에는 복도를 이용했다. 

"아빠, 왜 이렇게 모텔 계단이 가파를까? 올라기가 너무 힘들어."
"그러게 말이야. 아빠도 힘들어."


비상시에 계단을 타고 바삐 내려가다는 쉽게 다칠 수도 있을 같은데 정말이지 왜 이렇게 계단간 높이를 크게 해놓았을까......

▲ 한국 모텔은 대부분 이렇게 입구에 커튼이 쳐져있었다. 
 

"아빠, 왜 한국 모텔 앞에는 커튼이 있지? 나는 키가 작아 불편없이 들어갈 수 있지만, 아빠는 고개를 숙여서 들어가야 하잖아."
"그러게 말이야. 방에 커튼이 있듯이 모텔은 건물에도 커튼이 있어야 하는 가봐."
라는 궁색한 답을 했다. 

아뭏든 노트북없이 여행하는 사람에겐 한국 모텔이 아주 마음에 든다. PC방에 가지 않고서도 모텔 방에 마련된 컴퓨터로 인터넷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30. 23:49

딸아이가 자기 의사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까지는 기록용이라면서 무척이나 많이 딸의 성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하지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찍어도 되냐고 묻고 동의를 얻은 후에야 찍거나 찍어달라는 요청에 따라 찍게 되었다.

곧 만 10살이 될 딸아이는 아빠따라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빌뉴스에 있을 때 봄철에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 없었다. 이번 한국 방문 중 제일 먼저 한 일이 카메라 수리였다. 리투아니아보다 한국이 수리비가 훨씬 싸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촬칵촬칵 소리를 듣지 못한 딸아이는 그 재미로 요즈음 카메라를 직접 만지는 일이 잦다.

▲ 이번 한국 방문에서 찍힌 딸아이 요가일래

한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 어느 날이었다. 
"아빠, 내 생일에 카메라를 선물해줘~~~"
"왜?"
"나도 아빠처럼 사진을 찍고 싶어."

"네가 한국에서 생일을 맞는 데 무슨 선물을 해줄까?"라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딸아이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아빠가 생각해야지 왜 내가 생각해야 돼?"라고 딸아이가 물었던 일이 생각났다.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제일 좋은 선물이다. 물론 합당한 선에서 말이다. 

"그래. 생일이 되는 날 살줄 게."라고 즉답을 피하고 싶었다.
"안 돼. 이번에는 더 빨리 사줘야 돼."
"왜?"
"아빠가 서울에 가서 나 혼자 있을 때 내가 찍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이제 컸으니 찍히는 것보다 더 찍고 싶어. 아빠가 서울에 있을 때 카메라가 아빠라고 생각하고 잘 지낼 거야."

이 말을 들으니 안 사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디지털 카메라를 인터넷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이 카메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아빠가 서울에 가서 있는 동안 열심히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1주를 보낼 것이다.

며칠 전 아빠를 모델 삼아 딸아이는 사진을 찍었다. 하고 많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무시하고 아빠를 배수구 위에 눕혔다.  
 

"왜 배수구야?"
"비밀이야!"
"네 그림자가 들어갔으니 다시 찍자!"
"아니. 사진 속에 나도 있으니까 좋잖아!"


소나무를 뒷배경으로 딸아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딸아이는 소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디지털 카메라는 한국에서 맞이할 뜻 깊은 10살 생일 선물로 아주 적합한 듯하다. 이제 딸아이는 사진 속 모델이 아니라 스스로 모델을 찾아나서는 때가 된 것 같아 흐뭇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27. 06:04

유럽에서 한국을 방문한 지 아직 일주일이 되지 않고 있다. 시차때문에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딸아이는 네 번째 한국 방문이지만 이번이 제일 힘든 듯하다.

"아빠, 밤이 낮인 것 같아 잘 수가 없어."

한국과 유럽 리투아니아와의 시차는 6시간이다. 즉 한국이 밤 12시이면 리투아니아는 저녁 6시 한창 열심히 활동할 때이다. 낮에는 한국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저녁에 체류지에 돌아오면 리투아니아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한다. 


날마다 일찍 자자고 둘이 약속하지만 밤 12시가 되어도 정신이 말짤말짱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제도 불을 끄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컴퓨터를 켤 수 밖에 없었다. 딸아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책상에 화장지 한 조각이 있었다. 딸아이는 이 화장지를 가위로 일정하게 11장으로 짤랐다. 그리고 이를 묶고, 볼펜으로 그 화장지에 글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모두 21쪽에 이르는 내용이었다. 

글을 쓰면서 혼자 웃고 또 웃었다. 글 제목은 "화장지 이야기"이다. 
 
▲ 글 제목: 화장지 이야기

▲ 얼마 전에 아니 아마 4분 전에 화장지가 살았다(이는 화장지를 가위로 오려서 종이로 만들기 바로 직전의 시간을 표시한 것이다.) 이 화장지의 이름은 페트라스(피터)이다.

▲ 페트라스는 매일, 매분, 매초, 매주...... 화장실 변기 옆에 있다. 그래서 화장지라 불린다.
 

▲ 요가일래가 지어낸 21쪽 짜리 화장지 한 쪽으로 만든 "화장지 이야기" 소책자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섰다. 초등학생 4학년생 딸아이는 이렇게 화장지 한 쪽을 가지고 21쪽의 화장지 책을 만들어 스스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빠, 나 자라서 작가가 될까?"
"너는 나중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희망 가득 찬 어린이야! 당연히 될 수 있지."

딸아이가 한국 방문 중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발악한(?) 정신적 산물인 이 화장지 소책자를 오래도록 간직해 기념물로 삼아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25. 09:23

최근 딸아이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앞서 가져갈 옷을 챙기고 있었다. 양말바지 하나를 가지고 바느질통이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참고로 우리 부녀(父女)는 스타킹을 양말바지로 칭한다. 영어 단어 스타킹(stocking)에 해당하는 한국어 단어를 스타킹이라고 딸에게 말해주면 딸은 진짜 한국어 단어를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즉 스타킹은 영어이지 한국어가 아니란다. 이 경우 우리 두 부녀는 적합한 한국어 단어 찾기에 들어간다.]

"양말바지로 뭘 하려고 가져가니?"
"구멍이 나서 바느질하려고."
"네가 할 수 있어?"
"당연하지."

순간적으로 아시아 인도에서 연수 중인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딸아이가 바느질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까 걱정이 되었다.

"아빠가 해줄까?"
"아니. 내가 할 수 있어."
"아빠도 대학 다닐 때 바느질 많이 했어."
"나는 초등학생인데도 잘 해!!!"
"손가락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가 직접 양말바지 구멍을 바느질로 꿰매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엄마가 부재시에 아빠의 존재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림에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 최근글: 아내가 집 떠난 후 남편이 느낀 힘든 일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22. 00:01

아내가 집을 떠난 후[관련글] 어느 때보다도 딸아이와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로 딸아이가 잠잘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한 날이 흔했다.
예전에는 한국말 책 읽어주기가 가장 기본적인 책무였는데 말이다. 

학교에 가는 날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보통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래야 아침 7시에 일어나 등교하는데 크게 보채지 않는다. 

어느 날 딸아이가 있는 방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살짝 가보았다.

이미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딸아이의 표정이 참 재밌었다.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면 딸아이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졌다. 


"아빠, 내가 정말 저렇게 하고 잤어?"
"정말이지."
"참 재미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쉿! 조용히 해! 내가 자고 있잖아!"
"그래 맞아!!! 하하하하하......"

* 최근글: 아내가 집 떠난 후 남편이 느낀 힘든 일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0. 11. 06:35

지난 토요일 드디어 아내가 3주간 해외연수로 아시아 인도로 떠났다. 공항으로 배웅할 시간이었다.

"엄마 배웅하러 공항에 함께 가자."
"아니, 그냥 집에 있을 게."
"그래. 알았다."

아내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생 딸에게 공항가기를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분명 눈물로 엄마를 보낼 것이므로 그냥 담담하게 서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가 없는 첫날은 평소대로였다. 일요일 침실에서 딸아이가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동안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혹시 피곤해서 일찍 자나라고 생각했다. 살짝 가보니 딸은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보고 싶어."
"어제 엄마 인도에 갔는데"
"나 한국 안 갈래. 엄마 보고 싶어."
"우리가 한국에 갈 때 엄마가 아직 인도에서 집에 오지 않아. 너 혼자 있을 수 있어?"
"아빠도 한국 가지 마."
"구입한 표는 어떻게 해?"
"다른 사람에게 팔아."
"조금 있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 거야. 엄마 생각은 하지만 울지마. 아빠가 뭐 먹을 거 갔다줄까?"
"알았어."

평소에는 새벽까지 일을 하지만 이제 아내 대신 딸을 등교시켜야 하므로 일찍 자야 했다. 비교적 딸아이는 아내가 있을 때보다 더 자발적으로 학교갈 준비를 했다. 아침 식사를 마련하는 동안 딸아이는 가방을 챙겼다. 바깥 온도가 영상 5도로 추운 날씨였다. 모자까지 챙겼다. 이렇게 아내 없는 첫날 등교시키기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끝난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렇게 아침 일찍 누가 전화했을까...... 화면에 찍여있는 번호를 보니 딸아이 전화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먼저 가슴이 쿵덩쿵덩 뛰었다.

"아빠, 나야. 학교로 와줘."
"무슨 일인데?"
"내가 볼펜이 없어."
"친구한테 빌리면 안되나?"
"안돼. 내 방에 가면 볼펜을 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와."
"필통 말이니?"
"그래 맞아. 필통! 내 방 책상 위에 있어."
"알었어. 아빠가 빨리 갈 게."

학교 생활 4년째 필통없이 학교에 간 날은 처음이었다. 딸의 필통을 챙겨 1km 떨어진 학교로 달려갔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수업 중이었다. 교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건너편에서 딸아이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자, 여기 필통."
"아빠, 고마워." 

필통에는 연필, 볼펜, 색연필 등이 있었다. 없으면 다섯 시간 수업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전화에 불안했지만 이렇게 딸아이를 돕고 나니 흐뭇했다.

집으로 돌아와자 다음 휴식 시간에 딸아이가 문자쪽지를 보냈다. 
"Gomawo! :}" (고마워: 휴대전화에 한글 자판이 없어 이렇게 라틴글자로 쓴다.)
 


일전에 학교 수업 중 휴대폰으로 인해 생긴 아내의 불편한 심기(관련글: 선생님도 수업시간에 휴대폰 꺼놓아야 할 판)를 떠올리면서 "휴대폰이 참으로 유용하네"라고 되새겨보았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