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6. 12. 29. 08:56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다. 우리 집 세 식구는 보통 아침와 저녁은 각자 스스로 챙겨 먹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번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여름에 한국인 관광객이 술안주를 가져와 남은 것을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번데기를 먹은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난 지 26년이 되었으니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번데기를 안 먹은 것은 확실하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번데기를 사서 먹은 것은 기억난다. 친구들과 같이 종이꼬깔에 들어있는 번데기를 입안 가득히 넣어 씹어먹곤 했다. 

한국인이 선물을 주고 간 것을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번데기를 주저없이 먹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아내와 딸이 보는 앞에서 먹게 되었다.

"지금 뭐 먹는데?" 아내가 묻는다.
"번데기."
"번데기가 뭔데?"
"일명 비단벌레라고 해."
"뭐?! 벌레!!!"
"왜 안 돼?"
"난 벌레만 봐도 징그럽고 민감한데 당신은 그런 벌레를 먹다니..."  

번데기를 보여주니 아내는 기겁했다. 벌레를 먹는 남편에 혐오감마저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아내는 제안을 하나 했다.


"곧 다가오는 새해에 현지인 친구들이 모일 때 한국 음식이라고 내놓으면 좋을텐데..."
"당신이 기겁하는데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뻔하잖아. 괜히 한국인과 한국음식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지. 그러니 지금 먹어버리는 것이 좋지. ㅎㅎㅎ"

그런데 딸아이 반응은 의외였다.
"아빠가 먹고 싶으면 먹을 수도 있지 뭐."
"사실 아빠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있으니까 그냥 먹는 거야."

깡통에 든 번데기는 참 매웠다. 서너 입 먹고 나니 너무 매서워 기침까지 하게 되었다.
번데기만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관광객이 선물한 누렁지를 끓여서 번데기를 다 넣어서 먹었다. 이렇게 "번데기누렁지"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매운 맛으로 오전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냉장고에 있던 깡통번데기 자리를 이제야 비웠다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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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모음2015. 3. 4. 07:29

이곳 유럽의 여러 도시 거리와 한국의 도시 거리와 다른 모습 중 하나가 길거리 음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주변 현지인들을 살펴보면 일상 생활에서 이들에게 간식이 낯설다는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간식이 없다. 하루 세끼가 전부인 날이 대부분이다. 

배가 정말 고프면 중간에 과일이나 아니면 우리 나라의 건빵 비슷한 것과 차나 커피를 마신다. 행여 종종 중간에 무엇이라도 좀 넉넉하게 먹으려고 하면 "조금 후에 밥 먹을텐데..."라고 아내가 말린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부산을 다녀왔다. 모처럼 온 손님이라 지인들이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호의가 고마웠지만, "어묵으로 하자"라고 해서 이날은 길거리에서 어묵으로 맛있게 저녁을 해결했다. 

낮에는 자갈치시장을 거쳐 국제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장 거리에 줄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이 띄였다. 영문을 몰랐다.

"저기 웨 사람들이 서 있지?"
"호떡 먹으려고."
"아니, 얼마나 호떡이 맛있어서 저렇게 줄을 섰을까?"
"씨앗호떡."
"그게 뭔데?"
"먹어보면 왜 줄 서있는 지를 알게 돼."         
 


이렇게 해서 씨앗호떡이 이 국제시장의 명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히 아저씨는 호떡을 굽고, 아주머니는 씨앗을 채워넣었다.



일행이 있어 씨앗호떡을 10개를 샀다.  



마침 쌀쌀한 날씨라 손에 쥔 호떡의 온기가 먼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혀나 입천장이 델까 호~호 불면서 입에 넣었다. 쫄긴쫄긴한 호떡에 입안에서 씹히는 쪼개진 씨앗이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으면 한 사람당 두 서너 개를 더 살 것을... 
길거리 간식에 익숙한 유럽 사람들이라면 씨앗호떡을 유럽에 도입 장사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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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4. 12. 17. 07:33

이곳 북동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겨울철이 되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하나 있다. 바로 동지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해가 조금씩 조금씩 탈출하기 때문이다. 

요즘 해는 아침 8시 36분에 뜨고, 오후 3시 52분에 진다.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대부분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어제 미술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저녁 8시에 끝냈다. 가로등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둡다. 그래서 아내와 나 둘 중 한 사람이 미술학교까지 데리려 가야 한다. 

어제는 겨울답지 않게 벌써 봄이 왔음을 착각시키는 비가 내렸다. 

"아빠, 나를 데리려 와줘서 참 고마워~"
"그래."
"지금 눈이 와야 하는데 비가 오니까 이상하다. 그렇지?"
"그래 지금은 해양성기후 때문이다. 너, 며칠 전에 가르쳐 준 한국말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 기억해?"
"그럼."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숙제를 마치고 양배추 날 것을 반으로 잘라 방으로 가져갔다.


"양배추는 왜?"
"책 읽으면서 먹으려고."
"양배추가 맛있어?"
"정말 맛있어. 한번 씹어봐. 사탕만큼 달아."
"거짓말."
"아니야, 입에서 많이 씹어봐."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딸아이의 독서 중 간식이 양배추라...ㅎㅎㅎ


아내에게 물어봤다.

"당신도 어렸을 때 양배추를 저렇게 먹었어?"
"먹었지만 그렇게 자주는 아니."

긴긴 밤 책을 읽으면서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딸아이를 보니 시골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컴컴한 밤에 가위바위보 시합을 해서 진 사람이 뒷밭에 묻어놓은 차가운 무를 꺼내 왔다. 그리고 형제들이 이예기 저예기 하면서 겨울밤을 보냈다. 

도심에 살면서도 감자튀김 과자 등을 먹지 않고 날양배추 잎을 하나하나 벗겨 먹는 딸아이 덕분에 잠시나마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해본다.

요가일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최근 성당에서 공연한 노래 동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4. 7. 06:29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딸아이가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해바라기씨이다.

인터넷 신문을 읽으면서 아내가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해바라기씨이다.

며칠 전 구입할 물건 목록을 들고 혼자 상점에 갔다. 그 목록에는 우리 집 애완동물 햄스터가 먹을 해바라기씨도 있었다. 항상 여유롭게 구입하고자는 점이 아내와는 다르다. 설탕 한 봉지를 사오라하면 두 봉지를 산다. 한 봉지를 거의 다 사용했을 무렵 다음 한 봉지를 사오지 않으면 설탕 없이 지내야 할 때가 있다. 

최근 설탕이 있는 줄을 알고 차를 다 준비했는데 알고보니 설탕이 없어 그 찻물을 버렸다는 소식을 딸아이는 페이스북에 올렸다. 

"봐라, 그러니 항상 물건을 좀 더 여유롭게 미리 사놓아야 한다. 이제 아빠를 닮아라."
"알았어."

그래서 햄스터에게 줄 해바리기씨도 넉넉하게 구입했다.

"햄스터 주려고 이런 엄청난 양을 샀어?" 역시나 아내는 예상대로 꾸지람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도 좀 먹으려고." 

사실 답이 궁색했다. 식구들이 그렇게 해바라기씨를 옆에서 먹어대도 내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망하듯이 즉시 해바라기씨를 수북히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도 좀 먹으려고"라는 말에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으로 한알한알 까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입안에 넣고 씹고 또 씹으니 고소한 맛이 자꾸 유혹한다.

* 햄스터와 내가 먹는 그냥 말린 해바라기씨

1990년 처음으로 동유럽 여러 나라들 방문하면서 공원 의자나 심지어 버스나 기차에서 사람들이 해바라기씨를 먹는 장면이 눈에 띄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늦은 여름철 즐겨먹었던 해바라기씨였다. 그 후 도심에 살면서 수십년동안 해바라기씨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 우리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볶은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는 동유럽의 국민 간식이라 불릴 정도로 여기 사람들이 즐겨먹는다. 여기서 판매되는 해바라기씨는 대부분 헝가리에서 생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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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0. 6. 21. 08:08

두 개의 부드러운 원형 비스킷을 마시멜로로 접착시켜 만든 초코파이!
한국에 살았을 때 참으로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유럽에 살면서 가끔씩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방문 후 돌아올 때도 사가지고 오기도 한다.

"이 초코파이 한국에서 유명한 과자야. 먹어봐. 정말 맛있어."
"그럼 먹어봐야지."


이렇게 대답한 우리집 식구들은 먹어보더니 더 이상 먹지를 않았다.
덕분에 남은 초코파이는 내 몫이 되었다.
일전에 또 초코파이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아빠, 이제 초코파이를 또 먹어볼래."라고 딸아이가 말하고 초코파이를 가지고 자기 방으로 갔다.

얼마 후 부엌에 가니 한 입만 먹은 초코파이가 그대로 있었다.
 
"왜, 다 안 먹었니?"
"내 입에 안 맞아."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초코파이를 안 먹다니 별일이야!"
"맛있으면 아빠가 먹어."

속으로 즐거워하면서 딸아이가 먹다 남긴 초코파이를 단숨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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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식구와 주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간식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 덕분에 우리집은 간식비 지출이 거의 없다. "자기 입에 아무리 맛있어도 다른 사람 입에는 별로일 수 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 최근글: 장작불에 굽는 리투아니아 전통과자 쏴코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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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09. 9. 1. 07:00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실랑이를 벌이는 일 중 하나가 바로 군것질일 것이다. 한국에는 사방에 널려 있는 가게에서 이 군것질거리를 쉽게 조달할 수가 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한국식 구멍가게가 없다. 이런 풍토에서 자라서 그런지 딸아이 요가일래와는 군것질거리 문제로 걱정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 흔한 군것질거리인 초콜릿도 그렇게 탐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군것질 대신 무엇을 주로 먹을까? 방학 내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딸아이가 애용한 군것질거리는
바로 당근, 오이 등이다. 이는 아빠가 40년 전 여름철 채소나 풋과일로 군것질했던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아빠 요리솜씨가 좋으면, 당근케익 등등 현대식 군것질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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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이었던 어느 날 딸아이 요가일래는 동물들이 식사하는 법을 흉내내었다. 재미 있어 영상에 담아보았다.

* 관련글: 스타킹 출연 오디션 받았던 6살 딸아이
               모델끼 다분한 7살 딸아이의 수영복 포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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