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7. 3. 9. 08:15

북유럽 리투아니아에도 조금씩 봄이 가가오고 있다. 며칠 전 아파트 뜰에 하얀 꽃을 보았다. 갈란투스(galanthus), 스노우드롭(snowdrop), 설강화(雪降花) 혹은 눈송이꽃으로 불린다. 국제어 에스페란토의 이 꽃 이름이 재미있다. Neĝborulo (네즈보룰로)인데 번역하면 "눈을 뚫는 것"이다. 눈을 뚫고 봄이 옴을 알리는 꽃이다. 


지금이 바로 봄이 오는 문턱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 꽃가게의 일년 대목 중 하나가 3월 8일이다. 이날은 1975년 유엔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한 날이다. 이날 여성들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남성들로부터 꽃선물을 받는 날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도 튤립 꽃 한 송이를 들고 왔다. 

"너도 꽃선물 받았네!"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우리 반 남자들이 꽃집에 가서 꽃을 사서 선물 주었어."
"아빠도 꽃을 선물해야 하는데 꽃사기가 싫어."
"꽃이 빨리 시드니까 그렇지?"
"맞아. 순간적인 기쁨을 위해 살아있는 꽃을 꺾는다는 것도 마음이 들지 않아."
"그러면 나는 꽃이 필요없으니까 아빠가 오늘 엄마한테 안마해줘라."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집에 늘 있기 때문에 일부러 꽃을 사러 가게까지 가는 것은 사실 귀찮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야 우리 집 두 여성이 좋아할 것 같았다. "남들은 다 하는 데 당신만은 안 해준다"라는 소리를 듣기가 싫고, 또한 이왕 이곳에 사니 이곳 문화에 같이 호흡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큰가게(슈파마켓) 앞에는 임시 꽃시장이 펼쳐져 있어서 많은 남성들이 꽃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큰가게에 들어가 꺾인 꽃 대신에 어떤 선물을 살까 찾아보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꼬냑 판매대를 둘어보았다. 꽃은 며칠이 지나면 시들지만 꼬냑은 한 잔씩 먹으니 더 오래 갈 수가 있겠다.

한참 고민 끝에 술 대신 식물을 사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제 봄철이라 과일과 채소 판매대가 있는 곳에 복분자 묘목이었다. 마침 집에 큰 화분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 저 묘목을 심어 여름철 발코니에서 기른다면 붉은 딸기가 주렁주렁 열릴 것 같았다. 


딸아이를 위해서 향기가 짙은 히아신스를 선택했다. 꽃이 다 피어있는 것보다는 곧 피게 될 것을 샀다.
  

직장에 돌아와 묘목 선물을 받은 아내는 장모에게 방금 꽃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이렇게 이곳 남성의 의무 중 하나를 이행하게 되었다. 


늦은 여름날 발코니에 복분자 딸기가 정말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5. 1. 2. 08:43

지금껏 25여년을 유럽에 살면서 가장 조용하게 새해를 보냈다. 보통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초대하거나 초대 받아서 새해의 0시 0분 0초를 환호 속에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새해엔 그야말로 밖에 잠시 나가 폭죽 속에 새해를 맞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아래 영상은 2014년 새해를 폭죽 속에 맞이한 영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꼭 번역을 마쳐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송구영신의 시각을 잊으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더 큰 이유는 자고 나면 새날이요, 지난 시각은 헌날이라는 원칙에 너무나 충실해 세월흐름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준 가족 덕분에 새해맞이 시각에도 '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2014년의 마지막 저녁이니 아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식사하면서 딸아이가 주도해 잠시 동안 우리집 2014년 10대 대사를 꼽아보았다.


1. 언니가 미국에서 공부

2. 요가일래가 TV 노래 경연 출전

3. 카나리아 란자로테-푸에르테벤추라 가족 여행

4. 할머니 순조로운 수술

5. 어머니 학교 공연 성황

6. 요가일래 실팔찌 취미

7. 리투아니아 유로 도입

8. 아버지 단체관광 직접 조직

9. 요가일래 수학 공부 우수

10. 요가일래 그림그리기 재미


딸이 주도하다보니 우리 집 10대 뉴스의 반을 차지했다. ㅎㅎㅎ

수학이 어려워 그 동안 힘들어했는데 2014년에는 수학이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했다. 실팔찌 만들기와 미술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았다. 내년에는 어떤 10대 뉴스가 우리 집 연말 식탁에 오를까...


며칠 전 딸아이는 유리병을 포장을 하고 있었다.

"뭐하니?"
"지금 유리병을 포장하고 있지?"
"왜?"
"내 새해 포부야."
"새해 포부가 뭔데?"
"새해에 좋은 일이 생기면 적어서 이 안에 집어넣으려고."
"왜 그렇게 하는데?"
"나중에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그래 맞다. 좋은 일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는 것도 참 좋겠다."

* 2015년 딸아이의 좋은 일 쪽지통


좋은 일을 챙기는 것이 딸아이의 새해 포부란다. 선악을 별로 챙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니 잠시 뭉클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좋은 일만 챙기지 말고 좋지 않은 일을 위한 통도 하나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좋은 일로만 충분해."
"좋은 일 수와 좋지 않은 일 수를 나중에 서로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새해는 하나만 할거야."

과연 얼마나 새해 포부에 충실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통 안에 좋은 일 쪽지가 가득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10. 17. 05:12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내었지만 도저히 사량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건축물을 흔히 불가사의라 부른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7대 불가사의가 있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대피라미드, 바빌론 공중 정원, 알렉산드리아 등대,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 마우솔로스 영묘, 올림피아 제우스 상, 로도스 거상이다. 

*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스톤헨지, 콜로세움, 카타콤베, 만리장성, 영곡탑, 하기야 소피아, 피사탑이다.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기적이 발표되었다. 이는 마추픽추,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만리장성, 타지마할, 요르단 페트라, 로마 콜로세움이다. 


근래 들어 사춘기에 막 접어든 딸아이는 8번째 불가사의 기적을 말한다. 무엇일까? 학교에서 혹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요가일래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오~~~ 8번째 기적!!!"

"딸아, 네가 말하는 8번째 기적은 도대체 뭐지?"

"아빠, 궁금하지?"

"당연하지. 뭔데?"

"바로 집이야!!!"

"이잉~~~"



"어떻게 집이 기적이 될 수 있니?"
"집은 정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고 싶은 기적 같은 곳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참 좋네. 그래 이 기적 같은 집에서 기적 같은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아빠,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이 정말 기적이다. 그렇지?"
"넓고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이렇게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은 네 말대로 기적이다."

학교 수업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한 가족이 함께 하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존재가 집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이렇게 생각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딸아이의 이런 생각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6. 26. 08:02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가 6월 23일이다. 리투아니아는 이를 "이슬 축제" 또는 "요한 축제"라 부른다. 그리고 다음날인 24일은 국경일이다. 사람들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서 자지 않고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지는 해를 보내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 하지 일몰

올해는 브라질 월드컵으로 인해 야외로 나가지 않고 친척들이 저녁 무렵 모여서 밤 늦게까지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다음 경기를 기다리면서 옛부터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해오던 점치기 하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목적은 미래의 자녀수 맞추기이다. 수뿐만 아니라 성별까지도 점으로 알 수 있다.
준비물은 30cm 정도의 실을 꿴 바늘이 전부이다. 


점치기 방법은 이렇다.
1. 점을 보는 사람은 왼손 바닥을 하늘을 향한다. 엄지와  검지를 떨어지게 한다.
2. 점을 치는 사람은 실을 잡고 바늘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여러 번 상하로 움직인다.
3. 바늘이 닫지 않도록 하면서 손바닥 위에 바늘을 놓는다. 이때 실을 잡은 손가락은 움직이면 안 된다. 


점치기 결과는 이렇다
1. 첫 번째로 바늘이 직선으로 움직이면 첫 아이가 남자다.
2. 두 번째로 바늘이 둥글게 움직이면 둘째 아이가 여자다.
3. 세 번째로 바늘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1. 점친 결과: 딸이 둘


2. 점친 결과: 아들 둘


3. 점친 결과: 장남, 차남, 막내 딸


그런데 이날 점을 본 세 사람이 위 동영상에서 보듯이 실제와 완전히 일치해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세째로 딸을 가지고 싶어하는 친척은 "이건 믿지 않아!"라고 이 점치기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남편이 점을 보니 세째가 딸로 나왔다. 

"누구와야? 안 돼!!!"
"우리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맞으면 되지 뭐......"

이날 모두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 리투아니아식 점치기를 기억했다고 기회에 따라 재미 삼아 한번 사용해봄이 어떨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 3. 20. 07:00

"아빠, 내 용돈을 줄테니 제발 염색 좀 해." 

40대가 넘어서면 누구나 한번쯤 자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수 있다.

"왜? 아빠가 나이가 들면 머리카락도 아빠따라 당연히 나이가 들어야지. 그냥 있는 대로 그냥 놓아두는 것이 아빠는 좋다." 

머리만 까맣게 보이게 하고 몸은 늙어간다는 것에 공감이 가지 않으므로 있는 대로 그냥 살기로 했다. 하지만 자기만 젊고, 아빠는 늙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딸아이는 머리카락만이라도 부녀(父女) 일치를 추구하고 싶어한다.  

최근 딸아이가 자기 머리카락으로 우리 식구들에 한바탕 크게 웃겼다. 

"아빠, 내 머리카락을 아빠에게 선물할게."
"어떻게?"
"자, 한번 봐!"

딸아이는 등을 서로 맞댄 상태에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짧은 아빠 머리를 감쌌다.


아빠의 하얀 머리카락이 감춰지고 이렇게 싱싱한 새로운 머리카락이 순간적으로 자라났다.


이 사진을 보고 가족 모두 한참을 깔깔 웃어대었다. 

"이렇게 보니 아빠가 네안데르탈인처럼 원시인이 된 듯하다."

▲ 7만년 전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BBC 방송 캡처

딸아이의 머리카락으로 비록 찰나이지만 아빠의 머리카락을 만들어보는 것도 가족의 재미난 놀이가 되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1. 12. 07:36

우리 집 상주 식구는 세 사람이다. 그런데 세 사람이 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주말뿐이다. 직장과 학교 등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는 아침 7시 10분에 일어나 40분에 학교에 간다. 금요일을 제외하고 아내가 일어나서 아침 식사와 차를 준비한다. 딸아아는 6시간 혹은 7시간 수업을 마치고 보통 오후 2시나 3시쯤 집에 돌아온다.  

아내는 월, 수, 목 오후 1시에 직장으로 가서 오후 7시에 돌아온다.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 대학교 한국어 강의를 빼고는 대부분 집에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 점심을 챙기고 음악학교로 보내는 일은 내 몫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아무리 다른 일로 바쁘더라도 주말에는 식탁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이번 일요일 식탁에 앉았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빠, 왜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아?"
"당연하지. 아빠가 한국 사람이니까."
"그거 말고. 다른 것?"
"뭘까?"
"한번 봐. 내가 어떻게 앉아있는 지."


딸아이는 학교에서도 유일하게 이렇게 앉는다고 말했다. 이 앉는 자세가 바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주고 한국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두 다리를 의자에 놓고 한 쪽 다리를 올려서 앉는 것이다. 그 다리의 무릎에 팔꿈치를 얹는 자세이다. 

"왜 그 자세가 한국 사람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있을 때 많이 봤어.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그러면 네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또 증명해봐."
"난 김치도 먹고, 라면도 정말 좋아하고, 미역국, 김밥. 불고기, 배, 대추, 감, 석류 등을 잘 먹잖아."
"그건 한국 사람이 아니라도 잘 먹을 수 있잖아."
"아니야, 내 친구들은 못 먹어."
"네가 스스로 한국 사람이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좋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말을 할 수 있잖아. 앞으로는 말뿐만 아니라 글도 알아야 돼. 오늘은 반드시 한국어 책을 베껴쓴다. 알았지?"
"예, 아버님. 사랑해요."

비록 한국에 살지 않고 또한 반쪽이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렇게 자신이 왜 한국 사람인 점을 스스로 찾아내고 확인해보는 딸아이가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아래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옛시청 건물에서 딸아이가 한국의 가을 노래 - 노을을 부르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벌써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이제 첫눈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10. 28. 08:16

이번 주말 딸과 함께 잠시나마 가을 놀이를 해보았다. 특별한 놀이는 아니였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는 10월 하순인 지금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참고로 리투아니아어로 11월이 lapkritis다. 이는 '잎이 떨어지다' 뜻이다. 계절 이름에 맞지 않게 올해는 벌써 10월 중순경에 단풍잎이 대부분 떨어졌다.  



며일 전 떨어져 수북히 쌓인 단풍잎을 보면서 딸과 함께 주말에 글자파기 놀이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엽을 여러 장 주웠다. 좀 더 일찍 이 생각을 했더라면 훨씬 더 싱싱하고 색감이 선명한 단풍잎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좀 아쉬웠다. 


우선 단풍잎에 글자를 쓰고 파냈다. 문구는 '감사합니다'로 정했다. 

작업을 다 마치고 침실 창문 위에 걸어놓았다. 겨울에도 가을 단풍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마침 아내는 친척을 배웅하러 기차역을 가고 집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새로운 침대포를 사가지고 왔다. 창문 위 벽에 걸려있는 '감사합니다' 단풍잎을 보고 아내는 깜짝 놀랐다. 


"우와~ 멋있다. 건데 왜 감사합니다야?"
"당신이 침대포를 사가지고 올 줄 알고 달아놓았지. ㅎㅎㅎ"
(감사 생활이야말로 가정 화목의 큰 덕목이다. 이 문구를 일어나면서도 자면서도 보면서 생활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한국에는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이 있으므로 자녀와 함께 한번 단풍잎으로 예쁜 장식품을 만들 수 볼 수도 있겠다. 방 안이 건조해 이내 단풍잎이 오그라들기 때문에 코팅을 하는 것도 좋겠다. 한 순간의 가을 놀이 덕분에 우리 집 방 안의 장식품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모처럼 아내와 딸로부터 좋은 생각을 해냈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5. 7. 05:08

부엌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가 방으로 달려왔다.

"손 다쳤어. 빨리 도와줘."
"왜?"
"소시지 자르다가."

딸아이는 부엌에서 수제 훈제 소시지를 혼자 자르고 있었다. 너무 딱딱해 세게 누른 칼이 그만 손가락을 향했다. 

"칼을 사용할 때는 늘 칼이 손 쪽으로 향하지 말고 다른 쪽으로 조금 눕혀서 사용해야지."
"알아.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손가락에 피를 흘리는 딸아이가 너무 안스러웠다.

"앞으로는 부모가 집에 있을 때 혼자 절대로 칼을 사용하지 마라."
"아빠, 난 이제 아기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야 돼."

위험하다고 항상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쳐 아파하는 딸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제 아기 아니야!"라는 말에 내 말은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그래, 앞으로는 정말 조심해서 해라."

조금 후 딸아이는 내일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왜 기쁜데?"
"그러니까 학교 친구들이 붕대를 감은 내 손가락을 보고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어볼 거야."


친구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을 생각하니 아픔은 잊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래서 어린이는 순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너도 다른 친구들이 아프면 관심을 가져줘."
"알았어."

아래는 최근 본 영국 음료 회사 로빈슨스(Robinsons) 광고 영상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광고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It's good to be a dad. It's better to be a friend.
                 아빠 되는 것은 좋다. 친구 되는 것은 더 좋다.


나는 과연 딸아이에게 친구일까? 아빠일까? ...... 
친구 같은 아빠가 되도록 특히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더욱 다짐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26. 06:05

최근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아이(17세)의 등에 멍 자국이 수두룩한 사진이 분노심을 자극시킨다. 부산 있는 한 국공립 어린이집이라고 한다. 친구가 때려서 생긴 멍이라고 담임이 말했다고 한다. 과연 진실일까?

* 부산의 한 국공립어린이집 원생의 멍 자국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 이 아이 부모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후 뉴스를 접하니 어린이집 여고사들이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유치원을 다닌 딸에게 물어보았다. 
"너도 어린이집에서 맞아봤니?"
"딱 한번."
"왜?"
"낮잠 자는 시간에 자지 않는다고."

최근 리투아니아 국회는 학교든 집이든 때려서 가르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정에 부득이한 경우 부모는 대개 자신의 신체 일부를 사용하는 것 대신 혁대로 엉덩이를 때린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보다 바로 이 혁대를 더 무서워한다. 

아래는 현재 리투아니아 거리에 세워져 있는 공익 광고다.


때려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혁대로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과 같다. 때림 없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때림 없는 가정, 때림 없는 어린이집, 때림 없는 학교, 때림 없는 사회가 하루 빨리 정착되길 기원한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17. 06:33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화요일 아내는 직장에 가지 않는다. 직장이 음악 학교인 아내는 원칙적으로 수업이 있는 날과 그 시간에만 학교에 간다.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꼭 금요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이번 월요일 밤에도 그랬다. 아내의 수면제는 읽기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여년 동안 일간지를 정기 구독했다. 하지만 올해 초 신문 구독을 끊었다.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다. 아내는 이제 신문 대신 휴대폰, 아이팟 혹은 탭북으로 신문 기사 등을 읽으면서 잠에 든다. 어제는 고이 자는 남편을 깨웠다.

"왜 그래?"
"창문이 정신없이 흔들려 잠을 잘 수가 없어."
"리투아니아는 지진이 없는 나라잖아."
"그게 아니고 머리가 어지러워."
"봐, 좀 철분약을 먹었어야지."

아내는 평소에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다. 한 달에 한 번은 더 심한 현기증을 겪는다. 이 경우에 철분약 섭취를 습관화하라고 권하지만, 무슨 약이든지 복용을 꺼리는 아내는 참고 견디는 편이다. 

이날 비상약통에서 철분약을 꺼내 아내에게 주었다. 이어서 심장박동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다고 해 심장약도 주었다.

"빨리 인터넷에서 빈혈 응급처치를 알아봐."
"미역국, 김, 다시마 등이 철분이 풍부해 좋다고 해. 내일 고기 넣고 미역국을 끓어줄 테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해봐."

* 작년 가을 후(거의 6개월만에) 처음으로 발코니에서 생활

화요일은 정말 진짠 봄 같은 날씨였다. 낮 기온이 영상 14도였다. 처음으로 목도리 없이 외출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발코니를 혼자 말끔히 청소하고 잠잘 때까지 발코니에서 생활했다. 한편 이날 딸아이는 친구들과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놀다가 평소보다 두 시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빨리 집으로 와. 맛있는 미역국이 있어?"
"누가 했는데? 엄마 아니면 아빠?"
"네가 와서 먹어보고 말해."

딸아이는 아빠가 한 밥과 엄마가 한 밥, 아빠가 끓인 라면과 엄마가 끓인 라면, 아빠가 한 미역국과 엄마가 한 미역국을 구별한다. 구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주로 전자만 먹으려고 한다. 

"미역국 맛 보니 어때?"
"정말 맛있어."
"누가 했을까?"
"엄마 냄새가 나는데."
"봐, 엄마도 미역국을 맛있게 할 수 있잖아."

* 식은 후의 미역국

아내와 나는 눈짓으로 딸아이의 짐작을 그냥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이제는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는 것을 직접 보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때론 아이에게 이런 편법으로 가르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4. 3. 05:44

최근 인터넷에서 4컷짜리 만화를 접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가슴에 와 닿아 소개한다. [출처 source link


아빠! 아들아, 지금은 안 돼 
아버지! 아들아, 지금은 안 돼 
아버님! 아들안, 지금은 안 돼 
아들아! 노인 양반, 지금은 안 돼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와 놀아주지 않는 결과는 참담하다. 아빠하고 놀고 싶어하는 초등학생 딸에게 "지금은 안 돼"라고 종종 말하는 내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장모님댁으로 갔다. 계절로는 봄에 접어들었지만, 바깥에는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씨였다. 

차일피일 미루었던 발톱 손톱 깎기를 했다. 그런데 딸아이 손톱과 발톱도 깎아야 할 때였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주로 아빠가 깎아주었다. 그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해주면 웬지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딸아이는 거부해왔다. 

"옛날 생각해서 아빠가 한번 깎아줄게."
"알았어. 하지만 딱 손톱 하나만!"
"안 아프지?"
"그래."
"아빠가 다 깎아줄까?"
"좋아."

"발톱은 누가 깎았니?"
"내가 얼마 전에."
"별로 안 예쁘게 깎았네."
"사람들이 안 보잖아."
"보이지 않는 곳도 예뻐야지."


딸아이 발톱, 손톱 10개를 깎아주었으니 그 품삯으로 아빠 말을 잘 기억해주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 5. 19. 04:41

사람의 수명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만, 요즘은 3대가 함께 살기도 드물고 모이기도 쉽지 않다. 리투아니아 처가집 경우에는 비록 흩어져 살고 있지만 5대가 살아있다. 최고 연세가 많으신 고조할머니가 93세이고, 나이 제일 어린 5대손이 이제 1살이다. 

인터넷에 본 사진 한 장에 6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고조할머니가 20년을 더 오래 사신다면 처가에도 6대가 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 6대가 사진 한 장에: 111세, 88세, 70세, 39세, 16세, 7주

* 111세 고조할머니와 7주 5대손

건강하고 총명을 유지하면서 오래 산다는 것은 모든 이의 바램아닐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2. 3. 08:19

북동유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의 이번 겨울은 혹한과 폭설으로 상징된다. 지난 해 12월 하순부터 근 한 달간 영하 20도의 혹한이 이어졌다. 그리고 모처럼 날씨가 풀려서 영하 5도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혹한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폭설이 내렸다. 15년만에 가장 많이 눈이 내린 겨울로 기록되었다.

요즈음 큰 도로에는 제설염 등으로 비교적 차가 다니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도로에는 눈을 헤쳐나오기가 힘든다. 2월 2일은 결혼기념일이다. 아무리 살림이 어렵더라고 이날만큼은 가족이나 친척들과 함께 분위기 있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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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도로가에 세워진 자동차를 내려다 보면서 과연 저 쌓인 눈을 헤쳐 주차공간을 벗어나 차로 궤도로 접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눈 핑계로 그냥 집에서 보낼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했으니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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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또한 바퀴를 덮어버린 눈도 치웠다. 무사히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대했지만 바퀴는 헛돌았다. 눈 밑에는 얼음이 얼어있었다. 낑낑대면서 차를 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겨우 앞바퀴 하나가 차로 궤도에 걸쳤지만 뒷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이젠 더 큰 일이었다. 다른 차의 통행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행인 한 사람이 도왔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다섯 명이 밀자 그때서야 차를 차선에 이동시킬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랜 시간을 낑낑거리는 데 보냈을 것이다. 대체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 이날 눈 속 곤경에 빠졌을 때 기꺼이 도와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2009년 1월 브라질 여행을 하면서 먹은 브라질 음식이 참 맛있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에 친척 부부를 초대해서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한 브라질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부부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차가 눈을 헤쳐나오지 못해 참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우리 부부만 브라질 식당에서 분위기를 잡기엔 폭설 후유증 때문에 이미 흥이 토막나버렸다. 그래서 얼마 전 개업한 켄터키 치킨을 사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일 저녁을 보내기로 방향 전환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주차를 무사히 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도로가 주차공간에는 빈자리가 여기저기 있었지만 눈이 수북히 쌓여있어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아파트 마당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자동차 통행로에서 후진을 하는 데 또 얼음 때문에 후륜구동 뒷바퀴가 헛돌았다. 이때 한 남자가 자기 차에서 삽을 꺼내 들고 왔다. 삽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 마지막 순간까지 기념일을 망쳐야 하나!!!!" 어두운 저녁이라 행인도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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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모래적재함도 없었다. 이때 아내는 트렁크에서 도움될 만한 것을 찾았다. 작업복이었다. 작업복을 뒷바퀴 밑으로 넣으니 후진이 되었다. 아내의 순간적인 재치로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출발할 때 왜 작업복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켄터키 치킨과 포도주를 앞에 놓고 식구 한 사람씩 가정 평화, 가족 건강, 모두에게 감사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브라질 식당에 비해서는 너무 조찰한 결혼기념일 식탁이었다. 이날은 폭설 후유증으로 생고생했지만 무사히 차를 주차시켰다는 안도감이 으뜸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지의 근육통이 이날 폭설 후유증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결혼기념일을 한층 더 운치있게 해줄 수 있는 눈이 기대를 망쳐놓은 폭설이 된 것이 아쉽다. 내년에는 멋진 기념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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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09. 10. 21. 08:07

리투아니아 초등학교의 숙제나 과제를 보면 아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이 합심해서 하는 것도 종종 있다. 어제 한 과제물이 후자의 경우이다. 일년 농사 수확물이나 가을 상징물 등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무엇을 만들까 여러 날을 고민했다. 여러 생각 끝에 딸아이 요가일래가 좋아하는 수박, 아빠가 좋아하는 애호박, 엄마가 즐겨먹는 감자 등을 이용해 거북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서 어젯밤 세 식구가 모여 함께 거북이를 만들어보았다. 과정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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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은 아니였지만, 가족이 다 함께 만든 (약간) 거북이를 닮은 작품을 보고 흐뭇해 한 요가일래에게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 관련글: 그림으로 그린 7살 딸아이의 하루 일과
* 최근글: 아내의 제자들이 방문해 전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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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음2009. 9. 27. 10:07

휴일인 토요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제각각이다. 평일은 학교 가고, 직장 가고 하느라 함께 있는 시간이 저녁 밖에 별로 없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모두가 함께 집에 오래 있지만 대부분 자기들 일을 하느라 바쁘다.
 
어제는 컴퓨터 작업하면서 바로 옆에 카메라가 있기에 그 시각에 우리 가족이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증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각 방을 돌면서 우리 가족  모습을 순간포착해보았다.

먼저 음악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엄마는 웬일인지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다. 이렇게 생음악 연주를 들으면서 아빠가 일하는 날은 실은 손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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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컴퓨터와 산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금요일 밤에 촬영한 창 밖으로 본 불꽃놀이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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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인 마르티나는 자기 방에서 페이스북 농장을 꾸미고 있다. 요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마르티나는 페스이북에서 포커놀이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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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요가일래는 발코니에 세워놓은 텐트 속에서 닌텐도 놀이에 몰입하고 있다. 주중에는 학업에 방해될까봐 닌텐도 놀이가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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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찍어놓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여주었다. 모두가 "우리 가족이 너무 제각각으로 논다"에 동의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모두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함께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모든 가정에 함께 하는 즐거운 일요일을 기원합니다.  

* 관련글: 컴퓨터에 뿔난 딸아이, 아빠 힘내라
               딸아이 남친이 없으니 가정이 더 화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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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모음2009. 5. 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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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8일 한국은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이 공휴일인데,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움직임이 한국에서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유럽 리투아니아는 어떨까? 리투아니아엔 어버이날이 없다. 5월 첫 일요일은 어머니날, 6월 첫 일요일은 아버지날이다. 어느 날을 공휴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일요일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로 정해서 자연스럽게 쉬면서 기념할 수 있게 했다.

올해 어머니날은 5월 3일이었다. 식구가 네 명인 우리 집은 바로 전날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가 은밀히 모여서 구수회의를 했다. 7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빠, 내일이 어머니날인데 무슨 선물을 할까?"
"어머니날인데 아빠는 열외다!"

"아빠,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 내가 언니하고 선물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는 돈을 준다."
"평소에 용돈을 절약해 선물을 사야지......" (두 딸 모두 돈이 있으면서 자기돈 쓰기를 아까워한다)

"나는 예쁜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언니는 내일 아침 꽃가게에 가서 꽃을 산다."
"그림하고 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옆에서 언니가 거들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있으니까 상품권을 사주자."
"좋은 생각이다. 상품권 가격의 50%는 아빠가 부담하고, 너희들은 각각 25% 부담한다."

가끔 아내가 "우리 집의 큰 아이"라고 불평하는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번 어머니날에는 큰 아기 몫을 좀 해보자고 선물 지분 50%을 기꺼이 쏘겠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딸도 선물 지분에 스스로 참가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고 나머지 반을 부담하도록 제안했다.        

이렇게 셋이서 합의했다. 요가일래는 방문을 닫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르니타는 상품권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가 일어나기 전 두 딸은 인근 꽃가게에 가서 튜립 아홉 송이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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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가 어머니날을 맞아 그린 그림이다 "MAMA MES TAVE MYLIM" (엄마, 우린  엄마를 사랑해요).

이들은 부엌에서 엄마를 위해 아침 커피를 탔다. 그리고 방안에서 막 일어나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커피, 그림, 상품권, 꽃을 선물주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이런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고마워~"라고 엄마는 답했다. 상품권 선물 지분 50%가 아빠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이날 엄마는 아내가 아니라 엄마로서 즐겁게 보냈다.  


지난 해 요가일래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어머니날을 맞아 빌뉴스 시내 중심가 거리에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을 전시했다. 이렇게 전시된 꽃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 관련글: 4식구 성(姓)이 각각 다른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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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09. 5. 1. 07:29

한국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봄의 절정인 5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가족을 위한 행사가 즐비하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르지 않는다.

리투아니아엔 어버이날이 없다. 5월 첫 일요일은 어머니날이다. 그리고 6월 첫 일요일은 아버지날이다. 하지만 아버지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이 날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드물다. 어제 가게에 같이 간 7살 딸아이는 "아빠, 어머니날에 무슨 꽃을 살까?"라고 벌써 선물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다.

어린이날이 한국은 5월 5일이지만, 리투아니아는 6월 1일이다. 한국은 가정의 달에 평소보다 많은 지출에 걱정하는 가족들이 있을 법하다. 리투아니아에는 이런 걱정이 없다. 일년 중 아이들에게 가장 선물을 크게 많이 하는 날은 성탄절과 생일이 거의 다 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날에도 사실 자녀들이 꽃 선물 등을 하지만 어머니들이 한턱 쏘는 날이다. 자녀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음식과 술을 준비한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 일을 제외하고는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므로 굳이 특별히 가정의 달을 정할 필요가 없는 같다. 누구를 방문하더라도 부부 동반, 가족 동반이 주를 이룬다. 물론 10대들은 이런 것을 싫어해 그 시간에 또래 친구들과 즐겨 논다.

각설하고 우리 가족은 식구가 네 명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우리 식구 네 명의 성이 모두 다르다. 부부가 성이 다른 것은 당연히 이해되지만 자녀와 아버지 혹은 어머니 성이 다르는 것에 의아해 할 법하다. 네 식구 성은 이렇다.

아빠 성은 "최"이고, 엄마 성은 "초예네"이다.
큰딸 성은 "암브로자이테"이고, 막내 성은 "초유테"이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이 보면 적어도 세 식구는 한 가족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엄마 성 "초예네"는 "초유스"(최의 리투아니아어식 표현)의 아내라는 뜻이다. 결혼 서약식에서 신부는 자신의 성을 결정한다. 결혼 전의 성을 유지할 것인지, 남편의 성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대부분 남편의 성을 따라 이렇게 누구의 아내임을 나타내는 성을 선택한다.

막내 성 "초유테"는 "초유스"의 딸이라는 뜻이다. 큰딸 성 "암브로자이테"는 "암브로자스"의 딸이라는 뜻이다. "초유테"로 변경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절차가 복잡하고 또한 큰 의미가 없어서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하지만 만 18세 성인이 되면 스스로 결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엄마 성을 근거로 해서 "초유테"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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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성이 각각 다른 네 명이 한 집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다. 7살 딸아이가 그린 "우리 가족" 그림을 위에 소개하면서 5월을 맞아 모든 가족에 은혜와 화목이 충만하길 기원한다.

* 관련글:
             
 - 결혼 여부 구별해주는 여자들의 성(姓)
               - 리투아니아에도 족보가 있을까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