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5. 1. 28. 08:54

가족 중 누군가가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남아 있는 가족은 행여나 돌아올 때 가져올 선물을 기대한다. 그래서 집 떠나는 사람의 선물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는 사람의 선물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깊다. 

한 지인은 늘 초콜릿을 선물로 산다. 초기에 그의 가족은 "뭘 이런 것을 선물로?!"라며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익숙해지자 "이번엔 어떤 초콜릿을 가져올까?" 기대감으로 차 있다고 한다. 

다른 지인은 쉬려고 여행가는데 선물 선택 고민으로 여행을 힘들게 할 수 없으니 아예 선물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도 이젠 이를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기야 요즘 해외여행은 그 옛날 이웃 마실 나들이 가는 든한 기분이다.

이번 한국 방문을 앞두고 딸아이가 꼭 부탁한 선물이 있었다. 여권수첩이다. 딸아이는 직접 인터넷 검색을 통해 멋진 여권수첩을 봐두었다. 

* 딸아이가 부탁한 여권수첩


"아빠, 다른 것은 안 사도 되는데 꼭 이것은 사와야 돼, 알았지?"
"열심히 찾아볼게."

한국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기념품 가게 등에서 여권수첩을 찾아보았다. 어느 곳에서도 여권수첩은 없었다. 한국에서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출국 전날 밤에 숙소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왔다. 과일가게의 커다란 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면 딸아이의 실망감을 다 잠재울 거야!'라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농수산물 반입 절차는 까다롭다. 잠시 고민했지만, 수화물 가방 속에 넣어 만약 걸린다면 순순히 그 절차에 응하기로 했다. 이렇게 내 두 주먹보다 더 큰 한국 배 3개가 집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


여행가방을 열자 딸아이는 다른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직 한국 배였다. 
"아빠, 정말 고마워! 아빠가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 아빠 짱이야! 나 오늘 대박이다! ㅎㅎㅎ"


몇 해 전 한국을 같이 방문했을 때 먹어본 후 딸아이는 한국 배를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다. 대형상점이나 재래시장 과일 판매대를 지날 때 딸아이는 한국 배가 아주 먹고 싶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이렇게 모처럼 한국 배를 먹게 되었다.

* 씨를 버리기가 아까워 일단 화분에 심어놓았다.


"한국 배가 정말 맛있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왜?"
"물이 많고 달고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정말 좋아!"
"여권수첩 못 사서 미안해."
"괜찮아. 이 한국 배가 최고야!"
"그렇게 생각하니 고마워."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11. 3. 07:02

가을이 되자 딸아이 요가일래는 “아빠, 언제 또 한국 배 사줄 거야? 한국 배는 정말 맛있잖아! 난 한국 배를 아주 좋아해!”라고 말했다.

몇 해 전 한국에 갔을 때 아주 크고 둥근 한국 배를 우리 식구 모두 먹었다. 그 때 그 맛을 잊지 못해 지난 해 한 지인이 리투아니아에서도 한국 배를 살 수 있다고 해서 두 말 없이 얼른 사서 먹었다. 얼마 전 요가일래는 올해도 사줄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엄마는 가격이 지난 해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가급적 신토불이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입장을 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이곳 리투아니아까지 오는 동안 신선도가 떨어졌을 것이고, 또한 각종 농약을 쳤을 것이기 때문에 사지 말자고 했다.

이 한국 배 가격은 5kg에 50리타스(2만5천원)이다. 리투아니아 배는 5kg에 15리타스(7천5백원)이다. 높은 가격이지만, 요가일래가 워낙 졸라대고 또한 일년에 딱 한 번 이곳에서 사먹는 한국 과일이라 결국은 사기로 했다. 지난 해 먹었던 바로 그 배 맛이었다.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배 상자 윗면 "very nice foods and very nice people", “햇살담은 햇배”, “Korean variety pears", "very special pears"라고 적혀있다. 이 문구들을 보면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분명 한국 배이다.

오늘도 한국 배를 달라고 하는 요가일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배 상자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원산지가 "한국"임을 철석같이 믿었건만 측면에 써진 원산지 표시를 보니 “중국 China"였다. 신토불이 한국 배가 중국에서 생산이 되다니! 속지주의와 속인주의란 말이 요즈음은 식품에도 적용이 된다는 말인가!

아내가 옳았다. 구입을 반대하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사려 깊지 못한 내 자신의 행동을 책망해 본다.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못하고 스스로 냉가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짝퉁 한국 배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의 현실적 반대를 극복할 최고의 명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국에서 생산된 배가 버젓이 한글 표기로 유럽까지 수출됨으로써 세계에서 인기 좋다고 하는 진짜 한국 배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상했다. 아니 어떻게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글 표기와 한국 배라는 설명으로 수출될 수 있단 말인가! 국가적 차원에서 배 재배기술 및 품종보호 조치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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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자에 "햇살담은 햇배"와 "Korean variety pears" 표기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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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산지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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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쉽게도 이젠 한국에서만 한국 배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요가일래......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