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15. 1. 22. 23:28

해변에 폭풍이 불면 사람들은 피할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폭풍이 불면 오히려 해변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바로 발트해 동쪽에 있는 해변이다. 특히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 해변이다.

 

왜 일까?

 

거대한 풍랑따라 바다가 뿜어내는 것이 있다. 이것을 줍기 위해서 사람들이 해변으로 모인다. 이것이 7보 중 하나인 호박이다.  

 

발트해 호박은 역사가 오래 된 것으로 유명하다. 4-5천만년 전에 형성되었다. 세계 호박 생산량의 90%가 이곳에 나온다. 2014년 한 해 동안 이 지역에서 세공된 호박의 양은 250톤이다. 호박은 이 지역 사람들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밀려오는 거센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박을 줍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정말 실감나게 호박을 줍고 있다. 목숨 걸고 나선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이들이 바다를 청소하는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행여나 아래와 같은 호박을 줍는다면 단번에 팔자를 고칠 수도 있다. 아래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호박이다. 무게가 3.5kg이고, 한국돈으로 약 5억원이다.

 

 

위와 같은 거대한 호박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그 안에 파리, 거미 등이 들어가도 값이 나간다. 

 

 

이 지역의 발트해 해변을 산책하는 이들은 바다가 주는 이런 행운을 잡기 위해서 발밑을 잘 살펴보면서 산책을 해야할 듯하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7. 5.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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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살고 에스페란토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에스페란토 행사 관련으로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는 데 나도 행사에 참가하느냐고 물었다. 일주일간 지속되는 행사에 참가하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에 부분만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오른쪽 사진: 이 친구는 독일 철학자 칸트가 산책 나올 때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다리가 보이는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언제 도착하나?"
"토요일 저녁 칼리닌그라드에서 버스를 타고 일요일 새벽 빌뉴스에 도착한다."

"행사장으로 가는 교통편이 곧 있나?"
"두 시간 정도 버스역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집에 와서 아침식사하고 샤워하고 가는 것이 어떤가?"
"새벽이라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눈 후 아내와 상의했다. 우리집 손님맞이에 대해서는 늘 아내와 상의한다.
"친구가 칼리닌그라드에서 오는 데 새벽이지만 맞이해서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어떨까?"
"이런 날이 일년에 몇 번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하자."고 아내가 시원하게 답했다.

아내의 동의를 얻은 후 다시 칼리닌그라드 친구에 연락했다.
"이른 새벽이지만 우리는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목적지 도착 10분 전에 전화해라."
"그래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냥 역에서 있을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되니까 꼭 연락해라."
"고맙다. 그렇게 연락하겠다."

이 친구는 이어서 러시아 속담을 덧붙였다.
  Кто рано ложится и рано встаёт,
  Здлровье и счастье себе наживёт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내의 말대로 새벽에 손님을 맞는 날이 일년 중 거의 없다. 밤새도록 버스 의자에 쭈구려서 온 친구 부부를 버스역으로 아내가 마중가는 동안 식사를 준비했다. 수면 부족으로 그날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를 보니 반가웠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친구의 말은 적어도 그날만은 옳았다.  

* 칸트 무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
* 칼리닌그라드엔 러시아 경찰이 없더라
* 칼리닌그라드에 한국 반찬 인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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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 11. 19. 10:56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도 짧게 하자면 그는 근대 계몽주의를 최고 절정에 올려놓은 프로이센(후에 독일)의 철학자이다. 《순수이성 비판》,《실천이성 비판》 등의 저서로 후대 철학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칸트는 프로이센의 수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지금의 칼리닌그라드)에 살았다. 1256년 건설된 이 도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니아와 인접해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수학에서 널리 알려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 문제"를 촬영하기 위해 지난 해 다녀왔다. 이외에도 칸트가 평생을 이 도시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산책했기 때문에 시민들을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왕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산이 없다. 다리와 도시 전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군사도시라서 열기구 등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근처에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아가서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신축중인 아파트라 승강기가 없었다. 16층까지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너무 힘들게 올라갔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수학자 오일러가 해결하고자 고민한 그 7개 다리(한붓그리기 문제)와 철학자 칸트가 시계처럼 정확하게 산책한 공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보기 힘든 이 도시의 구시가지 전경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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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수학 수수께끼가 된 쾨니히스베르크 7개 다리 현모습
* 최근글: 뱀이 다가와도 태연히 풍경화 그리던 소녀
               다리에서 개를 던지는 영상 파문,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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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1. 15:05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철학자 칸트의 무덤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칸트의 무덤을 직접 가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 아닐 것이다. 그의 무덤은 유럽연합 국가들에 둘러싸인 고립된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 도시는 튜턴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칸트(1724-1804)가 평생을 살았던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지난 6월 하순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다리 위를 지나서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무덤은 루터교 대성당 건물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 독일인 관광객들이 비싼 러시아 비자 비용을 내고 자국 출신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는 짧거나 긴 시간 속에 끝없이 변화하는 생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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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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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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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무덤은 대성당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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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산책 나올 때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는 바로 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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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쪽에서 바라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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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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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가 공부하고 가르쳤던 쾨니히스베르크 (지금은 칸트) 대학교 교정에 있는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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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 동상 곁에 산책 나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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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 아니다의 뜻인 한자 (불)은 달러($)의 한자 표기이기도 하다. 일전에 러시아의 고립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방문해 한 대형매장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연어요리를 주문했다.

가져온 연어요리의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그 문양을 보니 달러 표시인 弗을 꼭 닮았다. 물론 요리사는 弗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기가 발동해 왜 그 많은 문양 중 弗자 비슷하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일어났다. 혹시 팁을 듬뿍 주라는 소리일까...... 호기심이 발동해 결국 카메라를 꺼내 이 언어요리를 촬영했다.

그 순간 계산대에 서 있던 지배인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사진촬영 금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혹시 지배인에게 弗를 주면 더 찍을 수 있었을까...... 자 앞에 사람 이 더해졌더라면 부처의 자비로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장난스러운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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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10. 23:37

대학시절 병따개 없이 맥주를 마신 후 다음 병은 늘 친구들이 숟가락이나 라이터 혹은 젓가락으로 따주던 때가 있었다. 혼자 마실 때는 문턱이나 창틀 등 딱딱한 물체를 의지해 내려치면서 병마개를 따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맥주만 파는 데 급급하지 말고, 손쉽게 병마개를 열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리병 맥주보다 캔 맥주를 선호했다.

세월따라 맥주병마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난 칼리닌그라드에서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하려고 가게에 갔다. 수 많은 종류의 맥주 중 가장 눈길을 끈 맥주는 바로 편하게 병마개를 딸 수 있는 맥주였다. 손잡이를 잡고 위로 가볍게 당기니 쉽게 마개가 따졌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 이러다가는 맥주병따개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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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7. 8. 13:36

러시아의 고립영토인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와 인접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칼리닌그라드 가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10년 째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칼리닌그라드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드디어 지난 6월 23일에서 26일까지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왔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러시아 여행에 관한 많은 글을 읽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길거리에서 촬영하다가 경찰의 제재를 여러 차례 받았다는 글이었다. 또한 호주머니용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경우 세관에 꼭 신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도 있었다. 중급 DSLR 카메라와 6mm 업무용 캠코더를 가지고 가려던 차에 걱정이 몹시 앞섰다.

현지인 친구에게 사정을 물어보니 칼리닌그라드 시내엔 경찰이 없고, 치안도 안전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7시간이 걸렸다. 칼리닌그라드는 평화로운 초원으로 첫 눈에 들어왔다. 칼리닌그라드 도심까지 가는 데 두 차례 함정단속을 하는 교통경찰을 보았다. 이들은 가로수와 숲이 울창한 곳에서 단속하고 있었다. 다행히 앞에서 오는 차들이 교통경찰이 있음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알려주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도심엔 치안과 질서 확립을 위해 도보 순찰하는 경찰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칼리닌그라드 도심에서 친구의 말처럼 3박 4일 동안 달리는 차 속의 교통경찰을 제외하고는 경찰을 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 중 마주친 러시아 경찰들의 다양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촬영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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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http://www.englishrussia.com/?p=383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7. 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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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국가들에 둘러싸여 섬이 되어버린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이다.

원래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이 도시는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95%가 파괴되었다.

지난 6월말 이 도시를 방문했다. 시내 중심가를 산책하면서 만난 화분나무가 즐비한 낡은 소련시대 건물에 익숙해진 눈에 퍽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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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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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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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 공원, 멀리서 보면 꽃나무처럼 보이는 꽃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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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을 사진 찍어라고 하는 러시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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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의 어머니"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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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청년이 꽃화분 앞 분수대에서 포장지를 깔아놓고 자신의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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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닌그라드 중심가에 위치한 러시아정교 성당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6. 30. 14:06

일전에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왔다.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북쪽 리투아니아, 남쪽 폴란드, 서쪽 발트 해에 접해 있다)의 주도이다.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살았던 곳이 바로 이 도시이다.

원래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련 연방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현지인의 초대를 받아 집으로 가보니 샐러드 종류들이 여러 있었다. 샐러드 중 고사리가 있어 좀 의아했다. 리투아니아인을 비롯해 유럽인이 고사리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은 웃으면서 자주 한국 반찬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 다음날 한국 반찬 가게가 있다는 곳을 직접 찾아 가보았다. “한국 샐러드”라는 안내 표시 넘어 고려인인 듯한 여러 명이 반찬을 팔고 있었다. 고사리, 가지, 오징어, 버섯, 미나리, 가지 등 보기에도 한국의 어느 재래 시장 반찬 가게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무조건 맛을 보게 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기름기가 많고 짰다. 반찬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중앙아시아에서 이쪽으로 이사 온 고려인이라고 말했다. 맛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한국 반찬이라는 이름을 걸고 팔고 있으니 한국인으로 더욱 정감이 갔다. 여러 반찬을 샀는데 600루블(약 3만원)을 달라고 했다. 비싼 것 같아 주저했으나 덤으로 한 뭉치를 주고 또한 ‘한국’이라는 말에 사게 되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한국 반찬 한 번 구경해보세요.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6. 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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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칼리닌그드에서 발트해변을 다라 리투아니아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발트해변을 거닐었다. 리투아니아 발트해변과 마찬가지로 끝없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동해안 바위 틈에서 게를 잡던 어린시절 추억을 간직한 눈에 펼쳐져 있는 모래언덕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햇빛에 비치는 은빛물결을 따라가 끝지점에 맞닿은 하얀 구름을 타고 금방이라도 동해안 바위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칼리닌그라드 주에 펼쳐져 있는 해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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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6. 26. 14:27

최근 몇 일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왔다.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북쪽 리투아니아, 남쪽 폴란드, 서쪽 발트 해에 접해 있다)의 주도이다.

원래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의 절반가량이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칼리닌그라드의 대성당과 또 다른 섬을 잇는 오래된 다리엔 자물쇠가 가득 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결혼식을 막 마친 신랑과 신부가 백년회로를 약속하면서 자물쇠를 꼭 채워놓았다. 그리고 열쇠는 강물로... 시간이 나는 대로 칼리닌그라드에 관한을 올리고자 한다. 칼리닌그라드 사람들의 백년가약 자물쇠들을 한 번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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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어떤 자물쇠를 택할까. 뒤에 보이는 대성당에 임마누엘 칸트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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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물쇠 뒤로 보이는 강이 바로 칼리닌그라드를 가로지르는 프레골랴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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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 난간에 잠겨있는 백년가약 자물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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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5월 3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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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10주년 기념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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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같은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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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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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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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6월 20일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