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5. 6. 8. 07:48

벌써 일주일째 집을 떠나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니고 있다. 관광안내사 일을 하면서 올해 들어 이번이 가장 좋은 날씨다. 아직 비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낮 온도는 15도-25도로 쾌적하다. 하지만 하루에 보통 만 5천보를 걸어다니면서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

* 라트비아 리가의 검은 머리 전당과 베드로 성당


* 라트비아 리가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 에스토니아 타르투 일몰과 요한 성당


어제는 이런 피로감이 딸아이가 보낸 쪽지로 사르르 녹았다. 6월 첫 번째 일요일은 아버지 날이다. 한국은 어버이날로 같은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되새기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는 따로 정해져 있다. 어머니날은 5월 첫 번째 일요일이다. 어머니 날은 모두가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아버지 날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 날은 잊고 산다. 

인터넷이 되는 라트비아 리가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페이스북에 접속해보니 딸아이 요가일래가 보낸 쪽지가 있었다. 


로마자를 쓴 한국어를 한글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아빠 날이다... 우리랑 같이 있어서 고마워.. 제일 제일 사랑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있어서"라는 말이 감정을 뭉클하게 했다. 건강, 행복, 부, 소원성취 등 수많은 축하의 단어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같이 있어서"라는 이 표현이 최상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같이 있다! 맞아.'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3. 7. 06:38

일전에 여권상 생일[관련글 보기]을 맞아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로부터 풍선에 그려진 케익도 받았다. 그때 여러 선물에 취해 축하엽서를 열어보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교과서 속에 끼어져 있던 엽서를 어제서야 열어보았다. 한마디로 깜짝 놀랐다. 
만년필로 반듯하게 써진 한국어 문장이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으로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예쁘게 잘 썼다. 


컴퓨터 글쓰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 이렇게 직접 손으로 쓴 글을 보면 더욱 정감이 간다. 열심히(?)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드리는 축하엽서라 틀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들 학생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빌뉴스대학교에서 지금까지 약 50시간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어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3. 11. 20. 06:56

지난 토요일 리투아니아 현지인 친구가 초대했다. 거실에 낯선 물건이 하나 놓여있었다. 위에는 생화가 말라서 건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병 속에는 한눈에 봐도 꿀이 담겨져 있었다.


"꿀과 건화라. 이거 뭐지?"
"우리 부부가 결혼 30주년을 맞았는데 선물 받았어."


말이 필요없다. 참으로 딱 어울리는 선물이다. 선물 선택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벌꿀처럼 달콤하고 부지런하게 산 30주년을 꿀 3리터에 다 담아버리다니...... 

이 꿀벌 선물을 보니 "이래서 사람은 자꾸 새로운 것을 접하고 견문을 넓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3. 22. 07:03

21일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 딸아이는 부엌에 있는 켬퓨터로 페이스북 소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빠 방으로 와서 물었다.

"아빠 페이스북에 왜 생일 축하 쪽지 하나도 없어?"

21일이 생일이다. 페이스북 친구가 현재 1191명이다. 이 정도 숫자라면 생일날 페이스북은 생일 축하 쪽지나 카드로 도배될 수 있다(2월 16일 실제 그랬다). 이에 딸아이는 아빠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 쪽지 하나도 없는 것이 이상해 질문을 했던 것이다.

"아빠는 벌써 2월 16일에 엄청 많이 받았어."
"그래도 오늘이 진짜 아빠 생일이잖아."

딸아이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내 페이스북에 딸아이의 쪽지가 보였다. 어디서 찾았는지 태극기가 배경인 생일 축하 카드가 함께 있었다. 정확히 맞는 설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유까지 설명했다. 


어렸을 때 딸아이는 늘 그림을 그려서 아빠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이젠 이렇게 페이스북의 쪽지로 축하한다. 아래는 4년전 딸아이가 해준 생일 축하 그림이다. 


언젠가 한 해에 세 번이나 생일 축하을 받은 적이 있다. 태어난 음력일이 적힌 여권상 생일날, 음력 생일날, 그리고 태어난 해의 양력 생일날였다. 몇 해전 가족들이 혼란스러우니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결론은 양력 생일날인 3월 21일이다. 

"저녁에 어디 가서 식구끼리 외식하자!"라고 아내가 제안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의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할 거야. 그냥 평일처럼 생일을 보내자. 더욱이 어제 끓인 미역국을 오늘 낮에 먹었으니 충분하지 뭐."라고 답했다.

강의 후 집으로 돌아와 내 책상에 와보니 깜짝 선물이 놓여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케익에서 딸기냄새가 퍼져나왔다. 그래도 가장(家長) 생일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아내와 딸이 몰래 구입해서 올려놓았다. 


잠시 후 현관문에서 누군가 우리 집 비밀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극소수 친척만 알고 있다. 가깝게 지내는 친척 가족이 찾아왔다. 조용히 보내고자 한 생일이 이렇게 뜻하지 않게 손님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페친 천명에 생일 쪽지 하나 받지 못한 불쌍한(?) 아빠에게 태극기 생일 쪽지를 재빨리 보낸 딸아이의 이날 반응이 돋보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2. 17.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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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저녁 초등학교 딸아이 요가일래는 아빠가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깨끗한 A4 종이를 막 구겼다. 일전에 종이를 구겨버린 딸아이와의 언쟁이 떠올랐다(관련글 읽어보기 ->).

"종이를 왜 구겨? 아빠에게 벌써 혼났잖아."
"알아."
"그런데 또 구겨? 종이를 사랑해야지."
"이렇게 다시 펴면 되잖아!"

그리고 딸아이는 이 구겨진 종이 뭉치를 들고 식탁이 있는 부엌으로 가버렸다. 어제 16일은 여권상 내 생일이다. 우리 집 식구들에게 내 생일은 3개로 알려져 있다. 먼저 주민등록부에 적힌 2월 16일이다. 이는 음력 생일을 적은 날짜이다.

당시 양력 생일은 3월 21일, 춘분이다. 이것이 두 번째 생일이다. 그리고 해마다 음력 2월 16일에 해당하는 양력일이 세 번째 생일이다. 한 때 재미삼아 한 해에 생일을 세 번 치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3월 21일을 진짜 생일로 하기로 정했다.

그래도 2월 16일이 되면 식구들로부터 축하의 말을 듣는다. 더구나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가 1918년 제정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의미있는 국경일이다.

어제 16일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자 편안하게 아침 늦게까지 잠에 빠졌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딸아이가 먼저 깨어났다. 얼마 후 딸아이는 난데 없이 구겨진 종이 뭉치를 내 쪽으로 던졌다.

"야, 어떻게 종이 뭉치를 아빠에게 던질 수 있니?"라고 하면서 더 이상 잠결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주워서 한번 펼쳐봐!"라면서 아내가 말했다.

구겨진 종이는 마치 헝겊이 된 듯했다. 조금씩 펼쳐보니 글자가 나타났다. 바로 딸아이가 "가짜 생일"이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선물을 만들었다.

위에는 한국어(로마자), 영어, 리투아니아어로 글을 썼다.
 
Apa(아빠),
nan(난)
norl(너를)
adzu(아주)
saranghe(사랑해).
Naeso(나에서)
10000000
popo(뽀뽀)
pada(받아).


Daddy,
you
are very
awesome!
I love you
very very
much.
10000000
kisses
from
me to
you
Tėti,
aš tave
labal labai
myliu.
10000000
bučiukų
tau
duodu.




그 밑에는 Happy b-day to you!
그 밑에는 내가 요즘 읽고 있는 "한권으로 읽는 史記", 늘 일하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그려져 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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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종이 뭉치라고 무시해 버리고 막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면 딸아이가 얼마나 속상해 했을까.....

"왜 종이를 구겨서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재미있어라구"

* 관련글: 종이를 구겨버린 딸아이와의 언쟁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9. 2. 08:37

일전에 올린 "중고차 살 때 등골이 오싹했던 순간"에서 중고차 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기술했다. 더군다나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목표는 사는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결론짓기를 세상에 모든 면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어젯밤 딸아이와 한 대화가 떠오른다.
"아빠, 아빠는 왜 힘이 세지 않아? 키도 작고......"
"친구야, 여기 있는 화초는 작고, 저기 있는 화초는 크지?"
"아빠,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나 알아.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니 좀 부족하고, 곧 수리해야 할지언정 어느 정도 만족하면 크게 따지지 말고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난 8월 22일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런데 어젯밤 아파트 윗층에 사는 이웃집 부부가 예고없이 현관문 벨을 눌렀다. 사이좋게 지내지만 까다로운 사람들이라 무슨 불평거리가 생겼나라고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차구입을 축하합니다. 좋은 운전을 기원합니다!"
이웃집 부부는 장미꽃 세 송이와 작은 샴페인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새로운 차를 주차시키는 아내의 모습을 이들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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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구입을 축하하는 이웃집 부부의 선물 — 장미 세 송이와 작은 샴페인 한 병

이들 부부는 부자로 소문 났는데 어떻게 아주 작은 량의 샴페인을 선물로 주었을까? 이들이 간 다음 아내와 함께 궁금증이 일어났다. 금방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운전자가 큰 샴페인병을 마시고 운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웃집의 뜻하지 않는 축하에 이웃의 정을 듬뿍 느껴본다.

한편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차를 등록시켜 차량번호판을 받으면 친척, 친구 등을 불러 축하와 안전운전 잔치를 연다. 이때 보통 차량번호판 숫자대로 술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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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리투아니아인들은 차량번호판의 수 만큼 맥주, 포도주, 보드카를 산다.

첫 번째 수는 맥주병 수, 두 번째 수는 포도주병 수, 세 번째 수는 보드카병 수이다. 예를 들면 차량번호판의 숫자가 874이면, 맥주 여덟 병, 포도주 일곱 병, 보드카 네 병을 산다. 물론 숫자가 높으면 깍는 경우도 있다.

차량 구입시 여러분이 사는 나라는 어떻게 축하와 잔치를 하는 지 궁금하네요.

* 관련글: 중고차 살 때 등골이 오싹했던 순간
               KIA 신차냐, 10년 된 Audi 중고차냐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 11. 10. 14:15

11월 7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새롭게 개장한 백화점이 있다. 시내 중심가 가까이에 위치한 규모가 큰 백화점이다. 어제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서울 어느 고급 백화점에 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로 리투아니아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속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통 이런 장소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면서 큰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사과의 진원지가 저기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가보니 넓은 공간에 사과와 자두가 잔뜩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종이 위에 무엇인가 글을 쓰고 있었다. 진행요원이 다가와 필기도구를 주면서 말했다.

“개장축하 글 쓰고 사과 가져가세요.”

이런 경우 그 어떤 축하 글보다 한글이나 한자를 쓰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딸아이의 이름을 한글과 한자로 쓰고 사과를 받았다.

이 축하행사를 지켜보면서 일전에 한국에 배가 과잉생산이 되어 농민들이 산지 폐기하는 사진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이런 유사한 행사가 있다면 배를 사서 축하객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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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