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거의 오지 않던 눈이 3월 4일 수요일 밤에 엄청 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럽에서 25여년 살면서 눈이 가장 적은 겨울이고, 날씨가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뜰에는 벌써 벛꽃나무와 사과나무와 새싹을 튀우고 있었다. 그런덴 이번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인 듯 이날 폭설이 내렸다.

* 눈에 파뭏힌 우리 집 뜰의 사과나무

목요일 아침 13살 딸아이 요가일래는 혼자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갔다. 얼마 후 아내의 휴대전화로 문자쪽지가 날라왔다.


내용인즉 학교 가는 길에 시상이 떠올라서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보내준 시를 잘 읽어봤다. 마음에 들었어."
"그래?!"
"그런데 학교 갈 때는 시 쓰는 것도 좋지만 사방으로 조심해서 가야지."
"내가 앞을 잘 보면서 문자를 쳤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리투아니아어로 쓴 원작시를 한국어로 한번 번역해보았다.
13살 딸아이가 모처럼 내린 눈에 어떤 느낌을 받아 시를 썼을까... 


OBELAITE


Ak, vargšele obelaite,
Mūsų kiemo karailaite.

Negailestinga ta žiema,
Be saiko skriausdama tave. 


Buvo išdygę - mieli ragiukai 

Ir maži maži pumpuriukai. 


O ji vis metė savo sniegą, 

Tad nušalai, mieloji. 


Šią vasarą nepamaitinsi, 

Saldžiarūgščiais obuoliais. 


Tai žaismas žmonių jausmais. 


Tas sniegas buvo kaip druska 

Berta ant mano kruvinos žaizdos. 

사과나무


아, 불쌍한 사과나무,

우리 뜰의 여왕이여.


무자비한 겨울이 너를 

절제 없이 손상시켰네.


귀여운 뿔들과 작고 작은

새싹들이 돋아났는데


겨울이 그만 눈을 던졌고

귀염이 네가 얼어버렸네.


이번 여름 달고 신 사과를

먹일 수가 없게 되었네.


이는 사람의 느낌과 장난질.


눈은 내 피나는 상처에 

뿌려진 소금과 같았구나.


나 같으면 아침 등교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간만에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서 기분 좋게 갔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눈 속에 파뭏혀버린 사과나무의 새싹이 얼게 된 것에 마음이 많이 아파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 

나타난 것에 대한 기쁨보다 감춰진 것에 대한 슬픔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생에서는 필요할 때도 있겠다. 이런 마음을 자아낸 딸아이가 심신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