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초유스 가족의 스페인 그란카나리아 여행 이야기의 여덟 번째 글[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다섯 번째여섯 번째, 일곱 번째]이다.

그란카나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 현지에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언어 사용자)가 있을까하고 세계에스페란토협회가 매년 발간하는 <연감>(Jarlibro)을 찾아보았다. 한 사람이 있었다. 현지 여행 중 만나고 싶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기다리겠다라는 답장이 왔다.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휴대용 모뎀으로 접속하는 인터넷 속도가 썩 좋지 않았다.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정도였다. 낮에 라스팔마스 깐떼라스 해변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해변에서 녹색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나도 녹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발코니에 있는 낯선 사람을 향해서도 손을 흔들어 인사할 정도로 밝은 것일까? 아니면 벌써 나에게 작업을 거는 것일까? 난 그런 매력이 하나도 없는 데 말이다.'  

녹색 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금방 기억 속에 잊혀져 갔다. 이틀이 지난 후 저녁에 현지인 에스페란티스토를 만나게 되었다. 첫 인사가 이것이었다.

"나는 당신이 구면이야."
"이잉~~~ 서로 초면이잖아."
'이틀 전 발코니에 당신 딸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손을 흔들었지."
"바로 그 녹색 모자를 쓴 사람이 당신?!" 
"괜히 오해할 뻔 했네. ㅎㅎㅎ"

* 라스 깐떼라스 해변 야경을 보면서 저녁 식사

초면이지만 그는 스페인 사람답게 서스럼없이 나오는 대로 말을 아주 잘 했다. 그때까지 대화를 나눈 현지인은 택시기사뿐이었다. 많은 주제로 대화했다. 몇 가지를 아래 소개한다.  

- 여긴 화산섬인데 물은?
- 빗물이고, 부족하면 염분을 제거한 바닷물을 이용한다.

- 아무리 관광도시라 하지만 스페인 반도 대도시에 비해 소득이 낮을텐데 인구 유출은?
- 거의 없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 주변 친구나 지인들 중 섬을 떠난 사람은 없나?
- 친구를 비롯해 아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내 동생 부부가 섬을 떠났다. 그런데 잠시 동안만.
- 어디로 왜?
- 마드리드에 대학 다니는 조카를 감시(?)하기 위해. 지금은 돌아왔다.

- 이곳의 한달 최저 임금은?
- 800유로.
- 하는 일은?
- 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 스페인이 위기인데 연금은?
- 한달에 1800유로.
- 그 정도면 생활에 지장없나?
-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고, 혼자 사니 충분하다.
- 한달 아파트 기본생활비는?
- 물세 60유로, 아파트 관리비 60유로, 인터넷을 포함한 전기세 60유로 등이다.
- 여기는 난방이 필요없어 기본생활비가 리투아니아보다는 훨씬 적겠다..
- 맞다. 난방이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는 에어콘도 선풍기도 필요없다.

- 1년 내내 쾌적한 날씨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적어 보인다. 건강은?
- 기본 질병은 어디나 다 있다. 심작박동수가 불규칙적이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외엔 건강하다. 
- 비결은?
- 20년 째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 해변을 따라 4킬로미터 걷는다. 해변에서 몸을 풀고 해수욕을 한다.
- 특별한 생활은?
- 보통의 연금 생활자와 다르지 않다. 연금에서 절약해 거의 매년 여름에 섬을 나간다.
- 어디로?
-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리는 나라로 여행을 다닌다.

이렇게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하다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다 되었다. 7시 30분에 식당에 들어왔을 때에는 우리와 바로 옆 손님뿐이었다. 10시경이 되자 갑자기 식당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 역시 스페인이구나를 느꼈다. 우리 가족은 다음날 일정을 위해 헤어지고 싶지 않은 생전 처음 만난 사람과 이별을 고해야 했다.


"여보, 이런 좋은 사람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빨리 지갑 열어 계산해."
"무슨 소리! 여긴 내가 주인이다. 당신을 식사에 초대하기 위해 연금을 많이 절약해놓았다."

그는 한사코 만류했다.

"그렇다면, 다음에 만나면 우리가 내겠다."

숙소까지 왔다. 딸아이를 숙소로 먼저 보내고, 해변가 식당에서 우리는 또 다시 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여긴 우리 숙소이니 내가 주인 ㅎㅎㅎ"

* 초면이지만 옛 친구를 만난 듯한 안토니오

12시가 넘어 헤어졌다. 그는 그란카나리아와 떼네리페 소개 DVD 등을 선물로 주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아내와 둘이서 에스페란티스토임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다. 에스페란토 덕분에 스페인 그란카나리아에서 처음 본 현지인과 함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운 저녁을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