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초유스 가족의 스페인 그란카나리아 여행 이야기의 다섯 번째 글[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 네 번째]이다. 이번 여행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해수욕장 두 곳을 다녀왔다. 하나는 라스팔마스에 있는 라스깐떼라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플라야델잉글레스이다.

라스팔마스 숙소는 해변 산책로에 접해 있었다. 산책로 앞에는 바로 바다다. 3층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보이는 이국적인 비취색 바다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들떠게 했다. 리투아니아 영토 동쪽 끝자락 내륙에 살고 있는 우리의 귀에 찰싹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는 정말 우리가 집을 떠나온 것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북서쪽으로 약 3킬로미터 뻗어져 있는 라스깐떼라스 해변은 특히 바다 가운데 암초가 일렬로 펼쳐져 있어 썰물 시에는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다. 이 자연 암초는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해 썰물 시 바닷물은 마치 호숫물처럼 잔잔하다. 밀물 시에도 파도의 위력이 약화되어 해수욕을 도와준다. 


단지 서쪽으로 갈수록 암초가 낮아진다. 그래서 이곳에는 파도에 밀려오는 용암 모래가 해수욕장을 덮고 있고, 또한 파도가 강해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관련글: 검은 모래에 하늘이 수채화를 그린다]. 

아침 일찍부터 라스깐테라스 해변에는 산책이나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발코니에서 해변을 함께 내려다보던 딸아이가 갑자기 내 눈을 가렸다.


„아빠 눈을 왜 가리는데?“
„아빠가 보면 안 돼.“
„왜?“
„여자들이 옷이 없어 가슴이 다 보여.“
„뭐라고?“
„이제 됐어.“


도심에 있는 해변임에도 비키니 상의를 벗고 해변을 산책하고 해수욕하는 여성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그래서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초딩 딸이 아빠의 눈을 가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빠를 경계하더니 차츰차츰 딸아이도 여기는 이런갑다하고 말았는지 더 이상 아빠 눈을 가리지 않았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으로 남아있던 이곳은 1960년대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상주인구 1만8천명에 호텔 등 숙박 시설이 600여개가 된다니 과히 유럽에서 가장 큰 휴양지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이곳은 라스깐떼라스와 비슷한 해수욕장 길이인데 모래해변 폭이 훨씬 더 넓다. 마치 사하라 사막을 연상시키는 모래언덕으로 유명하다. 이 모래언덕의 이국적인 정취에 매료되어 맨발로 앞으로 걸어가다보면 길쭉한 해변과 끝없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라스깐떼라스보다 파도로 인해 바닷물에 잔잔한 모래가 훨씬 더 많이 섞어져 있다. 모래언덕 쪽에서 바람이 불 때 바람막이 없이 누워서 오랫동안 일광욕을 하면 몸이 새까맣게 된다고 한다. 타서가 아니라 모래에 섞여 있는 용암 가루 때문이다. 


해수욕장은 가족구역, 누드구역, 동성구역으로 나눠져 있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그 경계선이 모호했다. 혹시나 라스깐떼라스보다 더 야하게 한 채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아내와 큰딸에게 부탁했다. 초행길이라 모래언덕의 능선을 따라 무턱대고 가다보면 어느 구역이 먼저 나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리 작은딸(동생)에게 그런 장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
„가족이 가는데 벌써 면역이 되었을 거야.“ 

가급적 바람을 피해 우리 집 여자 세 식구가 의견을 모아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가족지역인데도 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키니 상의를 벗은 여성들이 이쪽저쪽에 있었다. 리투아니아 같았으면 기겁을 해서 자리를 이동하자고 했을 법한데 우리 가족은 이제 여기는 확실히 이런갑다식으로 받아들였다. 


일광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상의를 벗은 채 해변따라 자연스럽게 산책하는 여성들도 흔했다. 분위기을 파악했는지 아내도 농담인 듯 한 마디했다.

„우리도 비키니 상의를 벗을까?“
„엄마, 우리는 안 돼!“라고 작은딸이 즉각 반대했다.

„아빠, 한국 여성들은 긴팔이나 그냥 옷을 입고 수영하잖아. 그 사진을 리투아니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모두 깜짝 놀랐어. 어떻게 비키니를 안 입고 수영할 수가 있어?“
„한국은 그렇게 하는 데 익숙하고,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