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8.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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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는 사람이 치료를 받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요양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넓은 평원에 갑자기 수 백년 된 나무들이 빽빽이 둘려 싸여 있는 곳이 숲지대가 나왔다. 요양원이 있을법한 자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에 비해 정원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었고, 곳곳에 목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호수가 있고, 교목과 관목들이 잘 어울려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풀에서 한 8살 된 아이가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유인즉 바로 백조가 씩씩거리면서 뒤뚱뒤뚱 그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를 생각하면 그 우아한 백조가 갑자기 곰처럼 사람을 공격하는 난폭성을 지니고 있다니 놀라웠다.

어린 아이라서 그렇겠지 하고 살금살금 그 백조에게 다가보았는데 어떻게 알아챘는지 양 날개를 위로 추켜올리면서 목은 길게 앞으로 빼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결국 나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숫가 풀밭을 벗어나자 더 이상 뒤쫓아 오지 않았다. 후유~ 천만 다행!

이 백조는 수놈으로 성질이 사나와 벌써 요양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해져 있었다. 먹이를 달라고 쫓아오는 것을 사람들이 공격하기 위해 쫓아오는 것으로 오인하여 겁을 먹고 달아나는 것이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빵 조각을 갖고 그에게 다시 접근했지만, 빵 조각의 뇌물이 적어서 그런지 또 다시 막무가내로 공격해 왔다.

요양하는 한 사람이 그 백조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 호수에 그는 부인과 딸과 두 아들과 함께 정답게 살았다. 그 후 아내가 죽자 그는 아들을 다른 호수로 쫓아내고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실 정도였다. 이에 그는 본능적으로 딸을 보호하고, 이 호숫가 잔디에 나와 휴식을 취할 때 접근하는 이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했다. 호수 안에서 노닐 때 그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면 얼른 받아먹고 사람들과 그렇게 친해 보이지만, 호수 밖에 나오면 저렇게 맹조(猛鳥)가 된다고 했다.

이 백조를 보자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아직 시골집에 상수도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50미터쯤 떨어진 도랑에 가서 늘 세수를 해야 했다. 이 도랑에 가려면 이웃집을 거쳐야 했다. 바로 이 이웃집에 사람 공격하는 수탉이 살고 있었습. 그냥 멋모르고 지나갔다가는 이놈이 달려들어 손이고 발이고 심지어 얼굴에까지 공격해왔다. 어린 우리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닭”이었다.

마치 그 수탉이 지금 요양원 호숫가 백조로 태어나 이렇게 저에게 옛 추억을 되살려 주는 듯 했다. 그날은 우아한 백조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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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