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빌뉴스서 집단매장지 발견… 굶주림과 추위·전염병으로 사망 추정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는 우리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다. 하지만 빌뉴스는 중세 이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 중심지로 동유럽의 건축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빌뉴스의 구시가지는 잦은 외세의 침략과 그로 인한 파손에도 불구하고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9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빌뉴스의 구시가지를 관광하다 보면 안내원이나 현지인으로부터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후기 고딕 건축물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안나성당에 대한 자부심 섞인 자랑이다. “나폴레옹이 빌뉴스에 체류했을 때 이 성당을 보고 ‘내 손바닥 위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리투아니아 대통령궁에서는 나폴레옹이 이곳에 잠시 살았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어떻게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동유럽의 소국인 리투아니아에 살았던 걸까?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할 당시, 리투아니아를 거쳐갔기 때문이다. 무려 50만의 대군을 동원한 이 침공은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와 추위에 대한 대책이 미비했던 나폴레옹군의 참패로 끝났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2000여구 유골 전 세계인 주목

그런데 최근 빌뉴스는 190년 전에 이 도시를 거쳐갔던 나폴레옹으로 인해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빌뉴스 북구의 주택개발구역에서 우연히 집단으로 매장된 2000여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건축 인부들이 통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판 구덩이에서 모래로 뒤덮인 수많은 유골들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유골들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사자들로 추측했다. 유골들이 발견된 지역이 구소련 군기지 내에 위치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소련 점령시대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된 반체제인사들일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했다. 그러나 법의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유골은 놀랍게도 190년 전 사망한 나폴레옹 군대의 것임이 밝혀졌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발굴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프랑스 군대 제복의 단추, 나폴레옹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등이 쏟아져 나왔다. 집단매장지의 발굴책임자인 빌뉴스대학의 아루나스 바르쿠스 교수는 지난 9월2일 이들 유골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프랑스군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폴레옹군의 유골 발굴은 곧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9일 영국의 BBC방송과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이 이 집단매장지를 현지 촬영하는 가운데 발굴작업이 다시 속개되었다.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 알비나스 쿤쩨비추스는 “10일 오전까지 50여구의 유골이 더 발견됐다. 앞으로도 더 많은 유골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4만명의 군인들이 빌뉴스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역사상 프랑스 군대가 리투아니아 영토를 밟은 것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단 한 번뿐이다.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유럽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50만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리투아니아를 통해 러시아를 침공했다. 빌뉴스에 주재한 러시아 총독이자 러시아군 총사령관이던 미하일 쿠투조프는 나폴레옹 군대에 직접 대항하지 않고 초토전술을 펼치면서 퇴각했다. 보로디노에서 격렬한 전투를 펼친 나폴레옹 군대는 9월 중순 텅 빈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그날 화재가 발생해 모스크바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오랜 원정으로 인한 피곤과 굶주림, 그리고 점점 매서워지는 겨울 한파로 인해 나폴레옹 군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기대했던 러시아 황제와의 평화협상이 결렬되자 나폴레옹은 퇴각을 명했다. 러시아 남쪽 퇴로는 이미 쿠투조프의 군대에 의해 막혔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 리투아니아를 통하는 먼 길로 돌아 귀환해야 했다. 

모스크바 원정 6개월 만에 50만명 중 겨우 5만명이 살아남아 빌뉴스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도의 배고픔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는 의과대학에 난입해 사람의 장기를 약탈해 먹을 정도로 굶주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하 30℃가 넘는 혹독한 추위가 계속됐다. 패잔병들은 끝내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유럽전쟁사 비밀 밝혀줄 계기

수많은 나폴레옹군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빌뉴스에서 죽음을 맞았다. 뒤쫓아온 러시아군이 시체를 치우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땅이 얼어붙어 무덤을 팔 수조차 없어 시체를 불태우려고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연기와 악취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러시아군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프랑스 군대가 파놓았던 참호 속으로 시체들을 던져 넣었다. 나폴레옹 군대로서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꼴이 되고 말았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집단매장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리비에 푸파르 리투아니아 주재 프랑스 부대사는 “규모와 중요성에서 단연 사상 최고의 발견이다. 갑자기 역사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고 말했다. 한편, 빌뉴스의대의 리만타스 얀카우스카스 교수(인류학·해부학)는 “발견된 유골은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즉 기아와 추위, 전염병 등으로 인해 사망한 자의 것이다. 유골은 15~25세 사이의 남자의 것으로 전투로 인한 외상의 흔적은 없다. 웅크리고 있는 자세로 보아 추위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812년 당시, 나폴레옹은 패전의 원인을 날씨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는 나폴레옹의 치밀하지 못한 계획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빌뉴스 집단매장지 발견은 나폴레옹의 주장에 한층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또 코사크인과 러시아인들이 패잔병을 살해하거나 고문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그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이처럼 이번 발견은 유럽전쟁사에 남아 있는 비극적인 대사건에 얽힌 여러 비밀을 밝혀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나폴레옹군의 유골은 프랑스로 귀환되지 않고 오는 10월 빌뉴스 묘지에 매장될 예정이다. 비록 군인들이 프랑스 군대 제복을 입고 죽었지만, 이들의 국적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대는 프랑스인, 독일인, 폴란드인, 오스트리아인, 크로아티아인, 벨기에인, 네덜란드인 등 유럽 각국의 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건설 현장 불도저에 의해 우연히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나폴레옹 군대의 집단매장지는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앞둔 리투아니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 또 다른 집단매장지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가 발굴과 조사에 대한 유럽연합의 지원이 요망되고 있는 것이다. 200년 전의 유럽은 나폴레옹의 무력에 의해 하나가 되었으나 그 결과는 허망했다. 역사는 유럽연합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각국의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하나의 유럽’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무언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 최대석/ 리투아니아 통신원 > chtaesok@hanmail.net

* 이 기사는 주간동아 제353호 2002년 9월 26일에 게재되었습니다.
출처: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_donga/news353/wd353ff0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