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이메일] 추석 같은 리투아니아 '망자의 날'
/ 최대석 자유기고가

리투아니아 묘지는 보통 시내나 그 근교에,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햇빛이 잘 드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묘는 봉분이 아니고 평분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한 번 묘지를 참배하면 과거에 지은 300가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일반적으로 묘에는 화초를 심어 꽃밭을 만들어 놓는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늘 싱싱하게 피어 있는 꽃이 망자의 넋을 달래고 있다. 사람들은 망자의 기념일 외에도 수시로 묘를 찾아서 이 화원을 정성스럽게 가꾼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고대부터 한 해의 수확을 마친 후부터 시작해 조상들의 묘를 방문하고, 이는 11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른다. 11월 1일은 '성인의 날', 2일은 '망자의 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 두 날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벨리네스'라 부른다. 망자를 추모하는 날을 뜻한다.

이날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조상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그리고 유명 인사 등의 묘를 방문한다. 묘 화단에 흩어진 낙엽을 줍고, 시들은 화초를 제거하고, 새 것을 심는다. 대개 꽃이 활짝 핀 국화를 심는다.

묘와 주변을 청결히 한 후 망자의 영혼이 어둠 속에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밝힌다. 긴 시간 침묵으로 촛불을 응시하며, 망자의 선행과 일생을 되돌아보며 기도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타오르는 촛불로 묘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옛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망자의 영혼이 사후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돌아오고, 가장 좋은 때는 11월이라 믿었다. 11월 1일 밤 망자의 영혼이 들어오도록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고요함 속에 들리는 바람 소리,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영혼이 찾아오는 징표라 여겼다.

그리고, 식탁 한 자리에 망자를 위해 음식을 마련했다. 음식을 밤새도록 식탁에 놓아두었다가 다음 날 걸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걸인들이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영혼들 사이의 매개체로 믿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을 묘로 가져가 놓아두었다.

망자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리투아니아 전역에는 사람들의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조상의 넋을 기리는 리투아니아의 오랜 풍습 벨리네스를 지켜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추석 성묘가 떠오른다.

빌뉴스(리투아니아) chtaesok@hanmail.net 

2010년 11월 9일 부산일보
출처: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ectionId=1_9&newsId=20101110000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