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9월1일 술 판매 금지… 표면상은 건조한 날, 10명 중 4명은 “미리 사둔 것 마셨다” 

▣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알코올 통제법에 따라 오늘은 술을 팔지 않습니다.” 

상점마다 안내문이 내걸렸다. 지난 9월1일은 리투아니아의 ‘지식과 학문의 날’이다. 이날은 리투아니아의 모든 학교가 약 3개월이라는 긴 방학을 끝내고 개학하는 날이다. 올해는 휴일인 토요일과 겹쳤음에도 각급 학교가 일제히 문을 열어 기존 학생들과 신입생을 맞아들였다. 학교로 가는 길은 여름 내내 썰렁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날부터 붐비는 학생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 ‘오늘은 술을 팔지 않습니다.’ 지난 9월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주류 판매점은 일제히 공지문을 내걸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가톨릭 국가가 이슬람 국가로? 

학생들은 부푼 마음으로 꽃송이나 꽃다발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교사와 학생들은 개학식을 마치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지난 방학 생활을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입학식을 마친 가족들은 식당 등에서 식사를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런 기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샴페인을 비롯한 술이다. 급격히 증가한 청소년들의 음주를 증명하듯 대낮부터 휘청거리는 이들을 이날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표면상 술이 없는 아주 건조한 날이 됐다. 지난 8월 중순 리투아니아 국회가 알코올 통제법을 수정해 9월1일을 ‘술 판매 금지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1년 중 적어도 하루만이라도 술 판매를 금지해 음주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다. 이에 앞서 지난해 리투아니아 4대 도시인 샤울랴이 시정부는 리투아니아 사상 최초로 가판대, 주유소, 대형 상점 등에서 이날 술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리투아니아 국회는 이보다 더 강도 높게 이날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상점과 식당은 물론 열차의 식당칸, 심지어 호텔의 미니바에서조차 술 판매가 금지됐다. 이날 이런 상황을 모르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자 한 외국인들은 가톨릭 국가로 알려진 리투아니아가 마치 이슬람 국가로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을 법하다. 

주말인 이날 술이 빠질 수 없는 결혼식 피로연 등 다양한 기념잔치로 대목인 요식업계와 호텔업계의 불만이 높았다. 이들 중 일부는 술값을 음식값으로 둔갑시켜 계산하거나 9월2일 영수증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이날을 ‘우유나 음료수의 날’로 이름하고 법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술 소비가 많은 새해 첫날 등을 제외하고 이날을 술 판매 금지일로 정해 ‘학생=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에 못마땅해했다. 의료 종사자들은 이 금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매년 이날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만취로 인해 응급실로 실려오기 때문이다. 

“살 수 없어서 마시지 않았다” 고작 4%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리투아니아는 헝가리에 이어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나타났다. 2006년 리투아니아 국민 1인당 11ℓ, 그리고 15살 이상 1인당 13.2ℓ의 순 알코올을 소비했다. 같은 해 술로 인한 사망자는 1484명이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955건에 달했다. 최근 한 달 동안 10회 이상 술을 마신 15~16살 청소년은 1995년 3.7%에서 2003년 17.5%로 무려 5배 증가했다. 미성년자들에게 술 판매는 금지돼 있지만, 이들의 음주가 큰 사회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리투아니아 국회의 이번 주류 판매 금지 조치에 대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델피’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6%가 찬성한 반면 59%가 반대하고 기권이 5%로 나타났다. 

그럼 이번 조치가 리투아니아 국민의 음주행동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주류 판매 금지의 날 이후 실시된 각종 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4명꼴로 “미리 술을 사서 이날 마셨다”고 답했다. 반면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4%에 불과했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79호 10월 5일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