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골칫덩이였던 ‘옛 소련 동상들’로 꾸민 그루타스 공원, 
이제는 저작권 소송에까지 휘말려


▣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최근까지 과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 에스토니아 정부가 수도 탈린 중심가에 있는 소련군 청동상 철거와 이전을 결정하자, 러시아계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움직임에 반발한 러시아계 주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폭력시위까지 벌일 정도였다. 반면 똑같이 소련에 속했다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지난 1991년 독립을 전후로 옛 소련의 흔적을 없애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반소련 물결이 거셌던 그때 이미 옛 소련을 떠올릴 만한 동상을 모두 철거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옛 소련 시절의 ‘암울한 과거’는 리투아니아에서 화려한 관광상품으로 부활했다. 그루타스 공원에 전시된 사회주의 시절의 조각상 앞에서 전통복장을 한 공연단이 당시 유행했던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있다. 

지긋지긋한 점령 벗어난 리투아니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시내를 처음 둘러보는 여행자들은 썰렁하게 비어 있는 공원이나 광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작은 조각상이나 동상이라도 하나 있을 법한 자리마다 텅 빈 채로 남아 있는 탓이다. 이런 공간에는 십중팔구 16년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나 옛 소련 체제의 위용을 드러내는 조각상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철거된 동상과 조각상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 해답은 지독히 ‘자본주의식’이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채택해 소련 시절의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고, ‘선진국가’ 건설을 위해 빠른 속도로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소련의 무력진압에 대항해 지금의 국회의사당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콘크리트 방어벽과 철조망,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건물 외벽에 새긴 소련 점령 당시의 희생자 명단, 그리고 그 건물 옆에 세운 높지 않은 희생자 추모탑 등이 없다면 옛 소련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었다. 이젠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리투아니아가 있기까지는 엄청난 역사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리투아니아가 유럽 역사 연대기에 처음 등장한 때는 1009년. 14세기 말엽 리투아니아는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1385년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제안을 받아 리투아니아 통치자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왕이 되고, 리투아니아는 대공국이 됨으로써 폴란드와 함께 연방을 형성했다. 1795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3국 분할 때 러시아와 프러시아에 점령된 뒤 세계지도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립했지만, 2차 대전을 계기로 이번엔 소련에 점령됐다. 소련 지배 동안 30만여 명이 죽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될 정도로 박해가 심했다. 이 기간에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난 이들만 40만여 명에 이른다. 미하일 고로바초프의 집권 뒤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 정책으로 소련 연방이 느슨해지면서, 리투아니아에선 1989년부터 소연방 탈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몇 세기 동안 러시아 점령으로 억눌린 민족감정이 폭발했고, 소련군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건 ‘용맹심’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다.

△ 전시된 조각작품에 대한 저작권 요구가 비등하자, 그루타스 공원 쪽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아예 검은 비닐로 덮어버렸다.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조각품들은 리투아니아 정부의 골칫거리가 됐다. 급기야 1998년 리투아니아 정부는 옛 소련 시절의 대표적 조각상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에 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아이디어 공모전’에 공원 조성 제안 

당시 공모전에서 단연 눈길을 끈 아이디어는 ‘비즈니스맨’이 제시했다. 리투아니아 남부지방의 사업가인 빌류마스 말리나우스카스는 동상과 조각상을 수거해 자신이 소유한 숲에 역사교육용 공원을 설립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이 숲은 수도 빌뉴스에서 남서쪽으로 120km 떨어진 작은 마을 그루타스에 위치해 있다. 옛 소련 당시 수십만 명을 희생시킨 사람들과 체제를 다시 돌아보게 할 수 없다는 반대 여론도 드셌지만,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지난 2001년 문을 연 ‘그루타스 공원-옛 소련 조각박물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공원 들머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낡은 열차 한 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리투아니아 거주자들을 시베리아로 짐짝처럼 옮겼던 바로 그 화물열차의 일부이다. 왼쪽엔 100여m에 이르는 길쭉한 벽보판이 세워져 있다. 그동안 언론에 게재된 각종 기사들이 빽빽하게 붙여져 있다. 들어가는 길이 철로 폭을 연상케 해 흡사 녹슨 기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공원 둘레에 쳐진 높은 철조망과 군데군데 있는 경비초소를 보며 옛 소련 시절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그루타스 공원의 면적은 6만여 평으로, 모두 46명의 작가가 만든 작품 84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공원 내 문화회관에선 옛 소련 시절 빛바랜 도서와 각종 선전벽보를 볼 수 있다. 역사박물관엔 마르크스와 레닌 흉상, 역대 공산당 서기장의 사진을 비롯해 동상 건립과 조각상을 옮겨올 당시의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미술전시관엔 옛 소련 시절 체제 미화와 우상 숭배 열풍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공원 설립에 열렬히 반대했던 저명인사들의 목조각상들도 눈길을 끈다. 또 공원 음식점에선 소련 시절에 주로 먹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지난 4월28일 공원 개장일에 맞춰 열린 ‘사회주의 시절 축제’에서 관객들이 소비에트 혁명을 이끈 레닌처럼 분장한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대대적인 개장식과 함께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열곤 한다. 올해 개장식은 1천여 명의 방문객이 운집한 가운데 지난 4월28일 성대하게 열렸다. 레닌으로 분장한 한 배우가 “이제 곧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입니다. 만세!”라고 우렁차게 외치자 사람들이 함성과 박수로 답했다. 이어 당시 유행한 노래 공연이 벌어졌다. 공연장 옆에선 소비에트 시절 권력을 상징하는 볼가 등의 자동차 전시회가 열렸다. 숲 속 여기저기 동상 주변에선 배우들이 즉흥극과 노래, 연주로 방문객을 즐겁게 했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윽박지르는 경찰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구두와 목 짧은 양말을 신고 춤을 추는 아가씨들, 스탈린 퍼즐 맞추기를 하는 여대생들, 레닌 동상 앞에서 새총으로 깡통 맞히기를 하는 아이들, 젖소가 사라졌다고 외치고 다니는 젖짜는 여자들, 애인이 군에 입대한 뒤 남자를 꾀는 여인들, 잔디밭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군인들, ‘하나! 둘! 셋!’ 북을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청소년 공산주의자들, 고기 살점이 들어간 보리죽을 먹으면서 군에 갈 만하다고 답하는 아줌마…. 암울한 과거를 맘껏 풍자하는 날이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많았다. 빵과 감자가 부족해도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고 즐겁게 살았다. 백만장자도 없었고 하나같이 평등했다.” 집단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방문객 율리야가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뜬금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방문객 리기타는 “지나간 50년의 세월이 좋았든 나빴든 그것은 우리 역사이고, 그 역사에서 우린 벗어날 수 없다”며 “우리 아이들이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역사를 이곳에 전시된 조각상과 기록물을 통해 되새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입장료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료를 합치면 우리 돈으로 1만여원이 드는데도, 공원을 방문하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리투아니아에서도 통한다. 최근 그루타스 공원은 설립 당시만큼이나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다름 아닌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리투아니아 저작권보호협회는 공원 안 식당에서 틀어주는 소련식 노래와 행진곡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을 요구했다. 공원 쪽은 그동안 저작권료를 지불해오다가, 얼마 전부터 저작권료를 내야 하는 곡은 틀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저작권보호협회는 노래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전시되는 조각상에 대해서도 매년 입장권 판매액의 6%를 저작권료로 낼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공원 쪽은 이미 국가 재산인 것에 대해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제 와서 저작권 주장하는 것은 모순”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는 시내 곳곳에 우뚝 세워져 있던 조각상들을 철거해 쓰레기장이나 황폐한 곳에 버렸다. 어떤 동상들은 머리가 잘려나갔고, 어떤 동상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그 무렵 해당 작가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저작권보호협회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빌류마스 말리나우스카스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리투아니아 전역을 돌며 방치된 조각품들을 수거해 공원에 복원해놨다. 그는 “이제 와서 조각가들이 저작권보호협회를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공원과 협회 사이에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원 쪽은 조각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원에서 직접 가져갈 것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있다. 말리나우스카스는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검은 비닐로 덮어놓았다. 이 조각상들 앞에 모금함을 놓고 보고 싶은 관람객이 직접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안도 생각해봤단다. 

어두운 과거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그루타스 공원은 이미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공원 쪽과 저작권보호협회의 마찰은 법정에서 매듭지어질 테지만, 사회주의 시절의 상품화가 ‘탐욕’이란 자본주의의 폐해로 이어지는 듯해 씁쓸하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60호 5월 18일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