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성묘를 연상시키는 고대 추모 풍습에 부는 변화의 바람 …국민들 다수 화장에 찬성하지만 관련 법안은 가톨릭 눈치만 봐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도처에 있는 단풍나무 이파리가 햇살을 받아 더욱 다양한 색을 발했다. 지난 10월31일 다른 해와 달리 따뜻한 날씨 속 묘지 방문을 기대하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보니 창밖에 눈이 펑펑 날리고, 부엌 창가에 달린 온도계 바늘은 영하로 내려가 있었다.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해마다 11월1일 날씨는 십중팔구 이렇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 영혼들이 날아오기 때문에 이날 늘 바람이 분다고 말한다. 

예리한 물건은 숨기고 화덕 재는 감춰라 

11월1일은 가톨릭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리투아니아에서 ‘모든 성인의 날’이라 불리는 국가 공휴일이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날과 2일을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벨리네스’라 부른다. ‘벨레’는 영혼, ‘벨리네스’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날’을 뜻한다. 죽은 사람 영혼을 추모하는 이 풍습은 고대로부터 내려왔는데, 죽은 이들의 영혼이 특정 시점에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리투아니아에선 매년 11월1일 먼저 간 영혼들이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온다고 믿는 풍습이 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이날은 무덤가에 촛불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마친 뒤부터 시작해 10월 한 달 내내, 그리고 11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른다. ‘벨리네스’ 풍습은 14세기 말 기독교가 전래된 뒤 기독교적 의미가 추가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을 기해 리투아니아인들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조상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그리고 유명 인사 무덤을 방문한다. 우리의 추석 성묘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벌초’를 하는 것처럼, 무덤 화단에 흩어진 낙엽을 줍고 시든 화초를 뽑고 새것을 심는다. 대개 꽃이 활짝 핀 국화를 심는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에겐 국화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또 무덤에 바칠 꽃송이는 반드시 짝수로 하고, 죽은 사람 영혼이 어둠 속에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밝히는 풍습도 있다. ‘성묘’에 나선 이들은 긴 시간 말없이 촛불을 응시하며, 죽은 이의 선행과 일생을 되돌아보며 기도를 하곤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타오르는 촛불로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20세기 초까지도 리투아니아인들은 11월1일 밤 죽은 사람 영혼이 들어오도록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또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침대를 마련하고 사우나실에 불도 넣었다. 영혼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를 개집에 가두기도 했고, 영혼을 젖게 하지 않도록 물을 뿌리지 않았다. 영혼에 상처를 입힐까봐 예리한 물건들은 숨겼고, 영혼의 눈에 들어갈까봐 화덕에서 재를 꺼내지 않았다. 밤에 집에서 나가거나 가축을 밖에 내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믿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들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곤 고요함 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물이 튀기는 소리를 영혼이 오는 징표라 여겼다. 

우리가 제사 음식을 마련하듯, 리투아니에서도 이날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믿는다. 묘지에서 돌아와 모든 가족들은 목욕재계를 한다. 그리고 고기, 곡물, 달걀 등으로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음식을 요리해 창문과 문이 활짝 열린 방에 식탁에 올려놓는다. 아무도 앉지 않은 식탁 구석 자리엔 죽은 사람을 위해 음식 모둠을 마련해둔다. 식사를 하기에 앞서 모든 사람이 그 구석 자리에 “영혼이시여, 이 잔은 당신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술을 뿌리기도 한다. 

화장하면 미사도 집전하지 않아 

이어 영혼을 집으로 초대하고, 가족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뒤 침묵 속에 식사를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초대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그대로 놓아둔다. 음식은 밤새도록 식탁에 놓아뒀다가 다음날 걸인들에게 나눠준다. 걸인들을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영혼들 사이의 매개체로 믿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을 무덤으로 가져가 놓아뒀다고 한다.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음부세계’에서 보낸 사람으로 여겨 극진히 환대하고 접대하는 풍습도 있다. 

옛 방식의 추모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리투아니아에서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화장과 매장을 둘러싼 논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엔 부장품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기 했지만, 14세기 가톨릭이 도입되기 전까지 리투아니아에선 주검을 불태운 뒤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는 게 일반적 장묘문화였다. 하지만 육신 부활에 대한 강한 종교적 믿음에 바탕한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리투아니아에선 화장 풍습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리투아니아 가톨릭계는 1950년대까지 화장한 주검에 대해선 미사조차 집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 11월1일 리투아니아인들이 ‘벨리네스’를 맞아 가족 단위로 공동묘지를 찾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평균 화장률은 40~50%에 이르며, 영국과 스웨덴은 각각 사망자의 70%와 80%를 화장한다. 리투아니아의 이웃나라인 라트비아와 폴란드,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도 주검을 화장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리투아니아에선 한 해 사망자 4만여 명 가운데 화장하는 주검은 고작 300여 구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이들 주검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화장장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다. 현행 리투아니아 민법과 묘지관리규칙엔 화장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탓이다. 

리투아니아의 묘지는 모두 시나 군에서 관리하는 국립이다. 보통 공동묘지는 시내 안팎의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묘는 봉분이 아니고 평분인데, 대개 무덤 위엔 각종 꽃이나 식물을 심어 아름다운 화단을 꾸며놓았다. 특히 최근엔 부유층이 늘면서 묘비석이 점점 더 웅장해지고, 어떤 이들은 아예 거대한 대리석으로 무덤을 덮어놓는 등 묘지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기존 묘지에 새로운 무덤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몇 해 전부터 화장장과 납골당 건설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응답자 57% “화장하고 싶다” 

여론도 바뀌고 있다. 최근 현지 인터넷 뉴스 포털 ‘델피’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7%가 죽은 뒤 자기 주검을 화장하고 싶다고 답했다. 지난 2002년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 ‘화장을 원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10% 남짓에 불과했다. 화장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그 넋을 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리투아니아의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 정부가 제출한 화장 관련 법안을 국회는 가톨릭계를 의식해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국회의 행태를 두고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가톨릭교 전래 이전 시대를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 635호 11월 21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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