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만나게 해주고 우리집의 제1공용어인 ‘인공언어’ 에스페란토 …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국적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다 

▣ 빌뉴스=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살루톤! 미 트레 조야스 렌콘티 빈.”(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대학 1학년 때인 1981년 원불교 교당에서 에스페란토를 처음 접했으니 벌써 25년째다.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에스페란토는 현재 우리 집의 ‘제1공용어’다. 5살 난 딸은 부모의 에스페란토 대화를 듣고 자라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로 말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민족이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 지난해 제1차 대회 개최후 100주년을 맞아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 대회 모습.

어떤 사람들은 에스페란토가 이미 ‘죽은 언어’라고 말하지만, 우리 집에선 한국어와 리투아니아어와 함께 매일 살아 숨쉬는 언어다. 

쉽게 배우는 중립적인 공통어 

잘 알려진 대로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에스페란토’란 이름은 1887년 발표한 국제어 문법 제1서에 등장한 자멘호프의 필명(에스페란토는 희망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 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에스페란토는 라틴 글자로 표기하고, 철자는 28자이다. 모음이 5개, 자음이 21개, 반모음과 반자음이 각각 1개씩이다. 주격과 대격이 분명해 비교적 어순이 자유롭다. 접두사와 접미사가 발달해 하나의 어근에서 많은 단어들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에스페란토는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성이 없다. 또 규칙적으로 동사가 변화하고, 동사의 인칭 변화도 없다. 명사와 형용사는 주격과 대격을 가진다. 수는 단수와 복수가 있고, 형용사의 복수형이 존재한다. 

에스페란토의 어휘 대부분은 유럽 언어에서 왔지만, 최근에 생긴 어휘는 비유럽어권에서 온 것도 있다. 한국어의 ‘김치’와 ‘막걸리’도 이미 에스페란토 어휘로 뿌리내려졌다. 주된 어원은 라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다. 다국어주의에 의해 대부분의 어휘는 다양한 언어의 공통적인 부분에서 가져왔다. 발음 체계는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다. 

에스페란토를 공식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직 없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험프리 톰킨 박사는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이 추정하는 것보다는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매년 1주일간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참가해 이른바 ‘에스페란토 나라’를 만끽하고 있다.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수반되지만, 수천 명이 모이는 이 대회에선 모든 회의와 공연, 강연 등이 오로지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뤄진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어휘 뿌리는 다양한 언어의 공통 부분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630호 2006년 10월 1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