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우타스 안줄리스] KGB가 몰랐던 비밀인쇄소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과거 무시무시했던 옛 소련의 비밀경찰 KGB의 눈을 피해 금서들을 펴낸 비타우타스 안줄리스(74). 그는 1980년 양봉을 하면서 민족주의자 워자스 바제비추스를 알게 되고, 이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과 신앙심을 키우는 종교서적을 펴내기로 뜻을 모았다. 각자 성의 첫 글자를 따서 ‘ab’라는 비밀인쇄소를 만들어, 1990년 리투아니아가 옛 소련에서 독립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철저히 금지된 반체제와 종교 관련 서적들을 몰래 인쇄해 보급했다. 

이 비밀인쇄소는 기막히게 숨겨져 있다. 비타우타스는 언덕 비탈에 위치한 온실에 시멘트 구조물로 수조와 묘목판을 만들고 묘목판 중앙에는 관수용 수도관을 세웠다. 이 수도관을 돌리면 기계가 작동해 수조를 이동시켜서 묘목판과 수조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이 바로 비밀인쇄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는 수개월에 걸쳐 은밀히 길이 30m의 굴을 경사지게 파고 중간중간에 철문을 세워놓았다. 비밀인쇄소 바로 위가 부엌이고, 부엌과 인쇄소에 벨을 설치해 외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게 했다.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했다. 

난공불락의 지하 요새 같은 비밀인쇄소의 내부는 인쇄에 필요한 활자와 활자판을 보관한 방과 인쇄기가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비타우타스는 고물 인쇄기 3대를 구해 직접 인쇄기 1대를 만들어 10년 동안 수만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은 1939~40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발트해 3국을 분할 점령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현재 당시 사용했던 인쇄기와 서적 등을 잘 보존 전시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역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집 3층 넓은 방엔 리투아니아의 근대와 현대의 지배 체제로부터 탄압받은 출판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당시 비밀경찰 KGB는 어디에서 누가 이런 금지된 서적들을 인쇄하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일가족 몰살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펴낸 이유를 묻자, 그는 “언론출판 자유를 통해 역사의 진실과 정의는 어느 시대라도 밝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소련 점령 초기 지하 간행물을 발간하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나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5호 2004년 7월 1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