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리투아니아 빌뉴스/최대석〈자유기고가〉chtaesok@hanmail.net

공교롭게도 필자가 태어난 나라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직 대통령 모두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국회에 의해 역사상 최초로 탄핵소추를 받았다. 3월 12일부터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과정과 집권 후 모습에서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과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양국은 탄핵절차 등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특별위원회가 한 달간 집중조사 
노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48.9% 대 46.6%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팍사스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35%를 얻은 발다스 아담쿠스에 이어 20%를 얻어 2위를 했지만, 결선투표에서 55%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탈락한 후보자가 아담쿠스 현직 대통령을 지지해 그의 승리가 확실시된 상황에서 팍사스 당선은 이변이었다. 아담쿠스가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위해 정상외교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팍사스는 러시아인 유리 보리소프가 운영하는 항공회사 '아비아 발티카'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아 헬기를 타고 전국 도처를 누비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팍사스 대통령은 노 대통령보다 하루 뒤인 2003년 2월 26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배경이 없는 지방 평민 출신으로 50대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국민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개혁과 변화'로 인식하고, 개혁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팍사스 대통령도 지방 평민 출신으로 47세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토목공학과 곡예비행을 전공한 그는 1997년 빌뉴스 시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질서와 변화'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팍사스 대통령은 취임 때만 해도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둘 다 태생의 한계인 국회 다수당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개혁다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늘 탄핵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팍사스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2003년 10월 30일 메치스 라우린쿠스 국가안전부장이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이 러시아 범죄조직과 연루되어 있다는 문건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국회는 이 사건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즉각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한 달간 집중적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관련자를 심문했다. 12월 1일 위원회는 "대통령의 특별지위, 책임, 국내외 정책 역할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행위는 리투아니아 국가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대선 때 팍사스의 선거전략과 홍보를 맡은 러시아 회사 알막스와 거액의 대선자금을 지원한 유리 보리소프가 여전히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국유재산 사유화와 다른 사업이권에 용인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했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다른 국가기관의 활동을 간섭하는 등 지위를 남용했고, 대통령은 이를 묵인했다. 대통령과 보좌관이 기밀정보를 누설했다. 

국회는 보고서를 승인하고 12월 18일 국회의원 86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를 의결했다. 이를 근거로 국회는 법조인과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특별소추위원회를 설치해 한시적 특별조사위원회의 탄핵 관련 여섯 가지 의결사항이 합당한지를 두 달에 걸쳐 또다시 강도 높은 조사와 심의를 거쳤다. 이에 헌법과 대통령선서 위반을 포함한 여섯 가지 항목 모두 유효하다고 결론지었다. 2004년 2월 19일 국회는 이 소추위원회의 보고서를 승인하고, 2월 23일 37권 각 30부, 총 1,110부, 20만7천7백 쪽에 달하는 방대한 증거서류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한편 3월 9일 한국 국회는 한나라당-민주당의 공조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측근비리, 경제파탄 사유로 국회의원 159명의 동의를 받아 탄핵소추를 발의했다. 이후 국회는 증거조사나 심의도 하지 않고 또한 대통령의 해명 기회도 없이 곧바로 3월 12일 경위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초고속으로 이루어진 한국 국회의 탄핵소추는 수개월에 걸쳐 여러 번의 의결을 거치고 철저한 증거조사와 심의를 하는 리투아니아 국회의 탄핵소추와 현저히 비교된다. 리투아니아는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 이제 고작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판결 뒤 국회 의결 
리투아니아 헌법재판소는 3월 16일부터 집중공개심리를 거쳐 3월 31일 세 가지 항목에서 팍사스 대통령이 헌법과 대통령선서를 위반해 탄핵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근거로 4월 6일 국회는 세 가지 항목을 개별적으로 표결에 붙여 세 항목 모두 탄핵의결 수인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팍사스 대통령 탄핵을 최종 결정했다. 세 가지는 ▲대선자금을 지원한 유리 보리소프에게 부당하게 리투아니아 국적을 주었고 ▲유리 보리소프에게 국가기관이 그의 활동을 조사하고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기밀을 누설했고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측근들이 기업으로부터 사리를 꾀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팍사스 대통령은 유럽에서 최초로 탄핵받은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그는 결국 대선자금 최대 후원자인 유리 보리소프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또한 그로 인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셈이다. 현재 보리소프는 아프리카 수단에 불법무기를 거래한 혐의로 피소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탄핵이 곧 팍사스의 정치생명에 종말을 고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 그는 대선에 다시 출마해 국민의 심판을 받을 뜻을 비치고 있다. 한편 검찰의 기소 가능성도 남아 있어, 그의 향후 정치역정은 아직 불투명하다. 

탄핵소추가 진행되는 동안 특히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목전에 둔 리투아니아는 국가 이미지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국내 정치상황을 이유로 이탈리아 대통령과 슬로바키아 대통령 등 국빈 방문이 잇따라 취소되는 등 정상외교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국회의 다수당이 국무총리를 맡고 있는 행정부는 정국 안정에 주력하여 큰 동요 없이 국정을 이끌어 왔다. 이 가운데 3월 29일 리투아니아는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5월 1일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다. 

리투아니아는 아르투라스 파울라우스카스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60일 이내 선거를 치른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두 번에 걸쳐 연임할 수 있다. 이번 탄핵으로 1991년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민주주의 뿌리를 더욱 굳건히 하고, 정경유착과 측근비리 등에 연루된 대통령을 견제하는 국회의 힘을 축적하게 되었다. 한편 팍사스 정부가 들어선 후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 영향력을 차단하는 효과도 보게 되었다. 

* 이 기사는 뉴스메이커 2004년 4월 22일 571호에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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