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독재자들 동상’ 처리 발상의 전환… 조각공원 만들어 관광객 인기몰이 

<최대석/ 리투아니아 통신원>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중심가에 위치한 루키쉬켸스 광장 중앙에는 10여년 전까지 레닌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1952년 세워진 이 거대한 동상은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무렵까지 난공불락의 공산주의를 상징하듯 버티고 있었다. 비단 빌뉴스뿐 아니라 구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의 동유럽 국가 도시에는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 동상 앞에 늘 싱싱한 꽃을 바쳤고, 찬양의 시를 낭송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는 모두 텅 비어 있다. 구 소련을 이루고 있던 연방 국가들이 제각기 독립하면서 어제의 우상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이념체제를 상징하는 이들 동상과 조각상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었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해 3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트해 3국은 소련에 의해 여느 나라 못지않은 고통을 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립국가를 형성한 리투아니아는 1940년과 1944년 붉은 군대에 점령되어 반세기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36만명이 사망했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되었다. 44만명은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났다.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가장 먼저 옛 소련의 조각상들이 수난을 당한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반대 

청동이나 철골 콘크리트로 된 이 거대한 조각상들은 철거 후 수년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되었다. 일부는 부서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조각상들의 처리는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급기야 1998년 리투아니아 정부는 옛 소련 시절의 대표적 조각상 42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공모전에서 리투아니아 남부의 사업가 빌류마스 말리나우스카스(63)가 기발한 제안을 했다. 말리나우스카스가 소유하고 있는 6만평의 숲에 이들 조각상을 모아 전시하는 공원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공원은 지난해 만우절에 ‘그루타스 공원-소련조각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관했다. 

그루타스 조각공원의 개관은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리투아니아인들을 시베리아로 추방한 장본인들의 동상을 다시 세운다는 사실에 적잖은 사람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설립자인 말리나우스카스는 “이 공원의 설립 취지를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야 하고,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리나우스카스 자신의 친척들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추방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그루타스 공원은 빌뉴스에서 남서쪽으로 120km 떨어진 그루타스라는 작은 마을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이 공원은 숲과 늪으로 되어 있어 시베리아와 유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철로에 전시된 화물열차 한 칸이다. 이 화물칸은 소련 점령시대에 리투아니아 거주자들을 시베리아로 짐짝처럼 옮기던 화물열차의 일부다. 공원 둘레에 쳐진 높은 철조망과 군데군데 있는 경비초소는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모습을 연상케 한다. 

지금 이 조각공원에는 64개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감탄과 경배를 자아내게 만든 듯한 이 거대한 조각상들은 리투아니아 전역에서 가져온 레닌, 스탈린, 빈짜스 미쯔케비츄스-수카스(리투아니아 공산당 초대 서기장), 마리톄 멜니카이톄(유명한 여성 빨치산) 등이다. 또 ‘어머니’ 등 이념적인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조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청년 공산주의자 네 명’과 같은 조각은 ‘술 취한 청년 세 명이 만취한 한 명을 부축하고 택시를 잡는 장면’이라는 현대적 우스개로 더 유명해졌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조각상들은 모두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도 뛰어나다고 한다. 

공원에는 조각상뿐만 아니라 구 소련 시절에 큰 마을 어디에나 세워져 있던 ‘문화회관’이 지어져 있다. 문화회관 내부에는 소련 시절의 각종 자료들과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설립에 열렬히 반대했던 저명 인사들의 조각상들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증오하는 레닌 등 공산주의자들의 동상과 함께 같은 숲 속에서 ‘동거’하게 된 셈이다.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자 전직 보건부 장관으로 조각공원 설립을 맹렬하게 반대했던 워자스 갈디카스의 조각상에는 ‘구 소련의 조각상을 가장 유명하게 한 사람을 위해’라는 유머러스한 문구가 적혀 있다. 공원 내 식당에서는 소련 시절에 주로 먹던 음식을 판매한다. 물론 이 같은 과거사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과 젊은층을 위한 놀이터와 작은 동물원도 마련돼 있다.

‘오욕의 역사’ 살아 있는 교육장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대부분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조각상을 파괴함으로써 일종의 ‘한풀이’를 했다. 지난날 당했던 가혹한 억압에 대한 복수인 셈이다. 이 그루타스 조각공원을 제외하면 공산체제 당시의 이념적 역사물을 수집해 전시한 박물관은 전무하다. 그 결과 그루타스 조각공원은 오늘날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공원 입구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와 대형 관광버스들로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1999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0% 이상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이 같은 공원의 필요성에 대해 찬성하는 의사를 밝혔다. 처음에는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지금은 조각공원의 역사적,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교사인 리야나씨(34)는 “소련의 강압적인 점령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청소년들이 그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는 말로 조각공원의 의의를 평가한다. 또 한때 공산주의에 심취했다는 민다우가스씨(36)는 “아이들에게는 볼거리를 주고, 우리 어른들에게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나도 한때는 청소년 공산당원이었다. 공산주의는 아름다운 이념이지만, 실현하기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 사회도 옛 조각상 철거에 대한 적지 않은 시비를 겪고 있다. 나중에 복원되었지만 2000년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이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철거되었고, 친일행적을 한 적이 있는 인사들의 동상이 철거된 예도 있다. 36년간 한민족을 억압하고 통치한 조선총독부 청사도 현재는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적인 유물을 파괴한다고 해서 그 오욕의 역사까지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투아니아는 옛 조각상을 파괴하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자리를 옮겨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후손들은 이 동상을 보며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02 년 8월 22일(348호)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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