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유명 연예인 커플 마리와 캉타, 리투아니아 호텔서 말다툼하다 참변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통신원/ chtaesok@hanmail.net

프랑스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의 사고사는 리투아니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리투아니아와 프랑스 사회 모두를 큰 충격 속에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프랑스 유명배우 마리 트랭티냥(41)이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호텔방에서 연인인 가수 베르트랑 캉타(39)와 다투다 뇌를 다쳐 사망한 사건이다. 

마리 트랭티냥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인 가족 출신 배우다. 아버지는 1960년대 영화인 ‘남과 여’의 남자 주인공인 전설적인 배우 장 루이 트랭티냥이고 어머니는 영화감독인 나딘 트랭티냥이다. 마리 트랭티냥은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5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국내 영화팬들도 영화 ‘뽀네트’의 여주인공이던 마리를 기억할 것이다. 

숨진 마리는 영화 ‘뽀네트’의 여주인공

마리의 연인인 베르트랑 캉타는 프랑스 록그룹 ‘검은 욕망’의 보컬리스트. 16살에 가수로 데뷔한 그는 2001년에 앨범 ‘얼굴들’로 1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인기가수다. 캉타는 반(反)세계화 집회에서 공연하는 등 진보적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마리 역시 여성운동에 열심이었다. 영화에서 상처받은 여성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여성상을 감동적으로 연기했던 마리는 지난해 영화감독인 전남편과 이혼하고 캉타와 동거해왔다. 캉타는 리투아니아 현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음악보다 마리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6월 초부터 리투아니아에서 체류해왔다. 프랑스 TV 방송사와 리투아니아 영화제작사가 합작·제작하는 프랑스 여류 소설가 가브리엘 시노니의 삶을 그린 2부작 텔레비전 영화 ‘콜레트’에서 마리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콜레트’(시노니의 필명)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남성 지배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뇌를 그린 영화로 마리의 어머니인 나딘 트랭티냥이 감독을 맡았다. 

사건의 전모를 특집으로 다룬 리투아니아 주간지 ‘엑스트라’.
  
7월 말까지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은 촬영 장면은 콜레트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그를 배신하는 마지막 장면뿐이다. 마리는 촬영 내내 어머니 나딘, 함께 출연하는 아들 로만, 그리고 연인 캉타와 함께 유서 깊은 빌뉴스의 구시가지에 있는 도미나 플라자 호텔에 묵었다. 

그런데 영화촬영 종료를 불과 3일 남긴 7월27일 아침 7시30분, 혼수상태에 빠진 마리가 빌뉴스대학 응급병원으로 이송되어 왔다. 심한 뇌출혈이었다. 의료진은 즉각 뇌수술에 들어갔다. 연인인 캉타 역시 과음과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는 병원에 오기 서너 시간 전에 일어났다. 사고 전날 밤,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말다툼을 하던 중에 마리가 캉타에 밀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다. 

27일 수술 후에도 마리는 깨어나지 못했고 프랑스에서 전문의가 급파되어 29일 두 번째 뇌수술이 이뤄졌다. 하지만 의료진은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마리의 부모는 딸이 고국인 프랑스에서 눈감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31일 특별기편으로 프랑스에 온 마리는 결국 8월1일 숨을 거두었다. 그는 6일 수천명의 애도 속에서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혔다. 

한편 캉타는 현재 리투아니아에 억류되어 과실치사나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리투아니아 형법에 따르면 과실치사는 최소 5년에서 최고 15년까지 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이 사건이 아주 불행한 우발적 사고이며, 자신은 마리를 폭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는 그가 프랑스 법에 따라 조사받고 처리되길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사고경위는 추후 양국 검찰의 정밀조사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평소 진보적 사회활동에 앞장서 왔던 유명배우와 가수 사이에서 일어난 사고의 파장은 리투아니아와 프랑스 모두에서 쉬 가라앉지 않을 듯싶다. 

*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03 년 08월 21일(398 호)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