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사스 대통령 당선 예언 롤리쉬빌리 파문 확산 …  인사개입 소문 국가 이미지 실추

요즈음 리투아니아에서는 ‘초자연적인 치료능력’을 가진 역술인과 현직 대통령의 관계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리투아니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지난 1월5일. 당선이 확정된 후 팍사스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은 공개 인터뷰에서 “한 역술인이 남편이 이긴다고 예언해 당선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2월26일 TV로 생중계된 대통령 취임식에서 팍사스 대통령은 한 여인에게 여러 번 입맞춤을 했다. 그가 바로 그루지야 출신의 역술인 레나 롤리쉬빌리였다. 롤리쉬빌리는 취임 축하미사에서도 팍사스 대통령 부부 뒷자리, 퇴임하는 아담쿠스 전 대통령 부부 바로 옆에 앉았다. 시청자들은 국회의장, 국무총리보다 앞자리에 앉은 이 여인의 정체에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번 리투아니아 대통령선거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2월22일 열린 대선 결과 아담쿠스 전 대통령이 35.06%, 팍사스가 19.4%의 표를 얻었다. 그런데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1월5일 결선투표를 한 결과 팍사스가 55%의 표를 얻어 45%를 얻는 데 그친 아담쿠스를 누른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아담쿠스를 지지했고, 그의 승리를 낙관하던 상황이었다. 

46세의 팍사스 대통령은 1997년 빌뉴스 시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불과 5년 남짓한 정치경력 중에 두 번이나 빌뉴스 시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96년 롤리쉬빌리는 당시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팍사스에게 이러한 미래의 정치역정을 예언해주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팍사스 부부는 롤리쉬빌리와 두터운 교분을 맺게 되었다. 

신비한 치료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소문난 롤리쉬빌리는 화장지를 아픈 부위에 놓고 손에서 나오는 따뜻한 기를 보내 환자를 치료한다고 한다. 그는 팍사스 외에도 현 정부의 적지 않은 고위 공직자들과도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롤리쉬빌리가 고위직 임명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만연하다는 점이다. 리투아니아 최대 일간지인 ‘레투보스 리타스’에 따르면 고위직 후보자들은 임명되기 전에 롤리쉬빌리를 먼저 만나야 했다고 한다. 클레멘사스 림쉐리스 국회의원은 “고대나 중세처럼 리투아니아에는 무당과 부족이 있고, 부족장이 무당의 말을 들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무당의 말에 지도자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비꼬았다.

클라이페다 부시장을 지낸 안타나스 리그누가리스 역시 비판적이다. 그는 자신도 롤리쉬빌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롤리쉬빌리는 저명 정치인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리투아니아 로마 가톨릭의 최고위 성직자인 아우드리스 워자스 바츠카스 추기경도 “악마의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취임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이 스캔들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국내외로 퍼져갔다. 언론들은 롤리쉬빌리를 제정 러시아 시대에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라스푸친 신부에 비교하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앞둔 리투아니아가 이같이 시대착오적인 스캔들로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우려했다. 결국 침묵으로 일관하던 팍사스 대통령은 3월13일 “롤리쉬빌리와의 관계는 사적인 것이며 그는 국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해명 성명을 발표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개인적인 교분을 맺는 것은 대통령의 자유지만 취임식 공개석상에서 입맞춤을 하는 등 롤리쉬빌리의 존재를 대중 앞에 드러낸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롤리쉬빌리 스캔들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심리적 불안감이 팽배해 있던 리투아니아 사회에 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을 부추기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 이 기사는 주간동아 제 375호 2003년 4월 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