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1. 10. 24. 11:42

서울 도심의 높은 빌딩 사이에 숨어 있는 듯한 덕수궁은 짧은 시간에 고궁을 맛 볼 수 있어 좋았다. 조선시대 선조가 거처하고, 인조와 고종이 즉위한 곳이다. 지난 토요일 초등학생 딸아이와 남산을 방문 후 이곳을 찾았다. 


중화전(中和殿)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이를 보자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여기가 왕들의 무덤이야?"

한국에 살고 있지 않은 딸아이는 이렇게 품계석을 무덤의 비석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궁내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은 석어당(昔御堂)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역대 국왕들이 임진왜란 때의 어렵던 일을 회상하며 선조(宣祖)를 추모하던 곳이라 한다.
 

세종대왕상 앞에서는 "이 분은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 쓸 수 있도록 하신 왕이다"라고 설명해주었다.

대한문 앞에서 매일 세 번씩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치러지는 데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덕수궁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것은 중화전도, 교대의식도 아니였다. 잠시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앉은 의자에서 만난 절룩거리는 비둘기였다.

"아빠, 저 비둘기 봐! 잘 걷지를 못해."
"왜 그럴까?"

비둘기의 동선을 줄곧 살펴보았다. 한 일본인 관광객이 먹이를 주려고 비둘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 비둘기는 가까이 가는 듯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었다. 경계심이 남다르는 듯했다. 유럽의 수많은 도시에서 수많은 비둘기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상처입은 비둘기를 본 기억이 없다.


자세히 보니 덕수궁의 이 비둘기는 오른쪽 발가락들이 거의 다 절단되어 있었고, 왼쪽 발은 실로 감겨있었다. "서울쥐와 시골쥐" 동화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고궁에 살고 있는 이런 비둘기의 모습을 보니 아름답고 화려함에 숨어 있는 도시의 어두움이 더욱 더 드러나보인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