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터키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8월 11일 미국과 리투아니아는 준결승전에 맞붙었다. 무패 행진을 하던 리투아니아는 미국마저 이길 기세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경기는 실망 그 자체였다.

그 동안의 패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거대한 미국 앞에 주눅던 리투아니아 같았다. 89 대 74로 리투아니아가 지고말았다. 4강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최고 기록을 이미 세운 터라 선수들이 방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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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2일 열린 3-4위 전은 완전히 달렸다. 그야말로 농구의 Made in Lithuania였다. 세르비아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경기를 잘했다. 우리 집 식구도 열렬히 응원했다. 리투아니아가 3위를 하자 "작은 나라이지만 리투아니아인이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아내가 말했다.
 
모두 다음 날 13일 밤 9시 빌뉴스 중심가 광장에서 열릴 환영식에 참가할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13일 저녁 우리 집은 환영식에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를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

"인산인해로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가지 말자."라는 의견과 "리투아니아를 빛낸 농구 선수들을 직접 봐야 한다."라는 의견이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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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쪽으로 결정을 했다. 그러자 8살 딸아이가 다른 방으로 가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장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위험이 있더라도 딸아이의 희망을 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날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래, 가자! 환영하러 가자!"
"와, 아빠 최고야!"

하지만 아내는 신중했다. 비록 환영식장이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지만 밤 9시 30분에 인산인해 속에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다. 그래서 아내는 공항에서 환영식장으로 가는 거리에서 미리 환영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터넷과 방송에서 우리 집 거리를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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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는 즉각 종이로 "Ačiū"(감사해요) 플랑카드를 만들었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무개 버스에 선수들이 올라탔다. 우리 가족은 짚 앞 거리로 나갔다. 리투아니아 국기를 어깨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확실히 이 거리를 지나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TV생중계를 보시던 장모님이 전화해 "5분 후에 선수들이 환영식장에 나올 것이다."라고 알려주셨다.

"이잉~~ 우리 집 거리를 통과해 5분 안에 환영식장에 도착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다른 길로?!"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집 거리에서 훨씬 먼 데서 방향을 돌려 환영식장으로 직행해버렸다. 딸아이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거리로 나갔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TV를 통해 선수들의 인터뷰를 시청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내내 직접 보지 못한 서운함에 눈이 붉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