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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저녁 무렵 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할머니의 쌍둥이 여동생이 방금 돌아가셨다."라는 비보였다. 이날 우리집은 가족회의를 했다. "조문을 가야 하나? 아니면 조화만 보낼 것인가?" 장례가 열리는 곳은 살고 있는 도시 빌뉴스에서 250km 떨어져 있다.

갈 수 없는 이유는 먼저 아내는 금요일 학교에서 수업을 해야 하고, 두 딸은 학교에 가야 한다.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가면 어두운 밤이 되고, 영하도 10도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다음 주말에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처남의 45주년 생일에 초대를 받아 가기로 이미 결정했다.

가야 하는 이유는 할머니의 쌍둥이 여동생이니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다. 떠나는 마지막 길을 가까이에서 작별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여겼다. 살아있는 사람의 기념일은 다시 오지만, 돌아가신 분의 장례일은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다. 이렇게 식구들이 의견을 모으니 갈 수 없는 모든 이유가 사라졌다. 수업을 다른 날로 옮기고, 학교는 선생님에게 연락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88세이다. 지난 여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얼마 후 상태가 호전되어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장모님이 전하는 임종 순간은 이러했다. 성수(聖水)로 얼굴을 적시고, 임종을 지켜보는 딸에게 "나 이제 나간다"라고 말하고 아주 편하게 호흡을 멈추었다(한국 사람들은 '죽는다'를 '돌아간다'라고 표현하는 데 비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나간다'라고 표현한다). 크게 아프지 않고, 의식이 두렷한 채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목요일 저녁 무렵 장례예식장에 도착했다. 조화를 관 주위에 놓고 우리 가족은 묵념을 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아내는 상주에게 가서 조의금을 전달하고 위로했다. 관을 열어놓아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훤히 볼 수가 있다. 태어나서 장례식을 처음 경험해보는 8살 딸아이는 무섭다면서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일가친척과 지인들은 주로 묵상, 기도로 장례식장에서 보낸다.

그런데 가느다란 흐느낌은 종종 들리지만, 오열과 통곡소리는 전혀 없었다.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소리에 익숙한 귀에 장례식장의 적막함에는 얼핏 보기에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슬픈 감정을 느낄 수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 어떻게 통곡의 높낮이로 측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떠나가는 이가 통곡소리에 발이 묶여 쉽게 떠나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통곡 대신 회상, 묵상, 기도 등으로 떠나가는 이가 이승에 애착 없이 편히 떠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여긴다.

리투아니아도 3일장을 치룬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리투아니아 장례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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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신부의 발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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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를 들고 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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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명의 장정이 관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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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판 깊이가 약 2m. 중간 지점에 소나무 가지와 꽃을 매달아놓은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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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예식장에서 사용했던 초도 같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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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파묻고 있는 동안에도 통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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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봉문에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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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기도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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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덮힌 봉분 밑에 망자는 이제 영원한 육신의 안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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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를 뒤로한 채 살아있는 사람들은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돌아간다. 알았지?"라고 8살 딸아이에게 장례식장에서 소근거렸다.
"엄마, 아빠, 언니도?"
"당연하지."
"언제?"
"나이가 들면."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돼?" (요가일래 증조모는 88세로 건강함. 모두가 오래 산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오래 오래 같이 행복하게 살다가 헤어지고 또 만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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