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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한국은 축구역사상 처음으로 라트비아와 경기를 가진다. 발트 3국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쁘다. 라트비아는 국제축구연맹 순위로 발트 3국 중 제일 좋다. 이에 따르면 라트비아 45위, 리투아니아 62위, 에스토니아 102위이다. 한국은 52위이다. (사진: 기쁨조로 나선 라트비아 금발미인들 )

리투아니아도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 초반에는 유럽의 축구 강호인 루마니아와 오스트리아를 이기는 등 선전했지만, 세르비아와 프랑스 벽을 넘지 못하고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실 리투아니아와 경기한다면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은 데 아쉽다.

라트비아를 선택한 이유는 유럽 예선에 라트비아가 그리스와 한 조가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라트비아는 그리스와 두 번 싸워 각각 0:2, 2:5로 완패했다. 라트비아는 유럽 예선에서 5승2무3패로 스위스와 그리스에 이어 조3위를 차지했다. 이 경기는 그리스전에 대비한 라트비아와의 평가전이라 할 수 있다.  

라트비아 대표팀의 감독은 알렉산드르스 스타르코브스(Aleksandrs Starkovs)이다. 그는 1980년대 소련 최고 축구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부터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로 새대교체를 위해 20대 초, 중반의 선수들로 꾸려져 있다. 주목할 만한 선수는 예선경기 전부를 뛴 수비수이자 주장인 카스파르스 코르크스와 A매치 106경기에 10골을 넣은 미드필더 안드레이 루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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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도 리투아니아만큼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오늘 경기에 양국 모두 선전을 바라면서 라트비아를 소개한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 중 중앙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64,589km²이고, 인구는 230만명이다. 2008년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14,997이다. 수도는 리가이다. (사진: 리가)

현재의 라트비아 지역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발트인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 독일 기사들과 성직자와 상인들과 함께 발트해 다아가바강 하구에 정착했다. 1201년 리가가 세웠다. 1558년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 기사단은 이 지역을 리투아니아 보호령으로 양도했고, 1561년 리투아니아 보호를 받는 리보란드 공국과 쿠를란트 공국이 세워졌다.

1600년-1629년 이 지역을 둘러싼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간 오랜 전쟁이 있었다. 1629년 리보란드 공국은 스웨덴 지배를 받기 시작했고, 쿠를란트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향하에서 독립을 유지했다. 1700년-1721년 스웨덴과 러시아 전쟁으로 리보란드 지역이 먼저 러시아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어서 쿠를란트 역시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3국 분할로 러시아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에 패하자, 1918년 11월 18일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라트비아는 소련에 편입되고 말았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해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라트비아는 최초로 독립 국가를 형성한 1918년 11월 18일을 중요한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이날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아래 영상은 2007년 여름 리가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인구 73만여명인 리가는 다우가바강과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옛날부터 무역, 금융, 문화의 중심지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구시가지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배경음악은 안드류스 마몬토바스 (Andrius Mamontovas)의 노래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 (Išvaduok mane)의 앞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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